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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식탁]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따스한 음식 전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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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금고 월간 매거진의 <인문학 식탁> 코너에
칼럼을 정기 연재하고 있습니다.

음식 속에 문학을 녹여내어 맛 뿐만 아니라
더욱 풍성하고 깊은 의미까지 담고자 합니다.

10월호 음식 주제는 '전골'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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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식탁>

/ 푸드 칼럼니스트 이주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따스한 음식 ‘전골’


대체로 비슷해 보이는 국물 요리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커다란 냄비를 가운데 놓고, 냄비 안의 재료들이 익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본다면 그건 ‘전골’이 분명하다. 가장 빨리 익는 부드러운 채소부터 단단한 고기까지, 투박한 냄비에 차례차례 넣는다. 가끔씩 국물을 끼얹으며 불의 강약을 섬세하게 조절한다. 사람들은 전골을 앞에 두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자연스럽게 일련의 과정을 이어나간다. 전골이란 음식은 단순히 맛과 영양을 뛰어 넘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된다. 사람이 전하는 따스한 온기와 보글보글 끓는 전골냄비의 후끈함에 추위가 들어올 틈이 없다.


전골하면 투박한 ‘전골냄비’를 빼놓을 수 없다. 예로부터 전골냄비의 모양에 대한 유래가 몇 가지 내려온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으로는 머리에 쓰는 투구나 모자의 모양을 본 따 만들었다고 한다. 음푹하게 패인 가운데에 육수를 붓고 채소를 익히며, 평평한 가장자리에는 얇게 썬 고기를 익혀 먹을 수 있다. 전쟁터에서 마땅한 용기가 없어 투구를 사용한 것 치고는 과학적으로도 완벽한 기능성을 갖춘 셈이다.


그렇다면 전골냄비가 아닌 일반 냄비를 이용해 끓인 ‘탕’과 ‘전골’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얼핏 분류하기 애매해 보인다. 탕이 진득하게 시간을 두고 우려낸 국물이라면, 전골은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졸인 자작한 국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역시나 가장 큰 차이점은 ‘주연급 재료’가 아닐까. 탕은 주재료가 확실하고 나머지는 부재료로 이루어져 하나의 통일된 맛을 지향한다. 한 마디로 한 명의 주연급 배우만이 열연을 펼친다. 하지만 전골은 서로의 맛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여러 개의 주재료가 동시에 들어간다. 투박한 냄비 안에서 개성 넘치는 공동 주연들이 불협화음 없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이 전골의 진짜 매력이다.


고독한 미식가라 자처하지만,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음식을 음미하는 모습이 절대 고독해보이지 않는 일본인이 있다.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 ‘고로상’이 한국을 찾았다. 그가 먹은 한국의 음식 중 단연코 눈에 띄는 것은 ‘낙곱새’이다. 낙지, 곱창, 새우가 한 자리에 모여 묵직하고 강렬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부산의 명물 전골이다.

자작하게 부은 육수 속에서 낙지, 곱창, 새우가 익기를 기다린다. 그동안 그는 ‘아직인가’를 몇 번이나 되뇌인다. 아예 탕처럼 부엌에서 완성된 채로 나왔다면 조금 덜 애탔을까, 그는 반찬으로 나온 부추 겉절이를 먹으며 ‘이건 나중에 전골에 넣어도 좋지 않을까’ 라며 기나긴 기다림을 버텨본다.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끓여먹는 전골이기에 가능한 귀여운 발상이다. 드디어 전골이 완성됐다. 그는 건더기를 숟가락으로 듬뿍 퍼 먹는다. 대미는 역시 하얀 쌀밥 위에 자작하게 졸인 전골 한 국자를 듬뿍 얹어 슥슥 비벼 먹는 것이 아니겠는가. 화면을 보는 내내 참아왔던 식욕에 결국 불을 붙이고 만다. 한국에서의 전골이 이토록 전투적이고 맹렬한 기세라면, 일본의 전골은 조금 더 온화하고 부드럽다. 그들에게 전골(나베)는 ‘화합’의 상징으로서 식탁에 자주 오른다.


일본의 전골(나베)을 떠올리면 영화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이 영화에는 엄마가 그리운 12살 어린이 ‘토모’와 외삼촌 ‘마키오’ 그의 다정한 연인 ‘린코짱’이 나온다. 토모는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아이지만, 그녀의 엄마는 토모를 놔둔 채 집을 나가기가 부지기수이다. 결국 외삼촌인 마키오의 집에서 지내게 되는데, 그의 연인 린코짱은 트랜스젠더로서 특별한 사연을 갖고 있다. 영화는 서로 다른 세 사람이 가족이 되어 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들은 4인용 식탁에 둘러 앉아 종종 전골을 끓여 먹는다. 여러 재료를 한 곳에 넣고 끓여먹는 전골은 처음에는 서로 제각각이지만, 결국에는 하나로 어우러져 근사한 맛을 내는 것이 토모, 마키오, 린코짱 세 사람과 닮았다. 서로 삐걱거리지만 결국에는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전골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이자, 세 가족을 상징하는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차가워진 바람에 마음까지 스산해지는 것이 전골의 계절이 돌아왔다. 함께 먹는 사람과 따스한 정을 나눌 수 있는 전골요리로 이 계절을 포근하게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 푸드 칼럼니스트 이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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