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피니언 섹션에
<이주현의 맛있는 음식 인문학>이란 타이틀로
매달 칼럼을 연재합니다.
음식 속에 담긴 인문학적 이야기를
맛있는 요리와 함께 가볍게 풀어내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한국인의 음식 문화에서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유난히 쌈을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잎이 크고 질기지 않으면 어떤 채소든 쌈으로 즐긴다. 심지어 바다의 해조류인 김, 미역까지 쌈으로 싸 먹으며 공고한 쌈 문화를 형성해왔다.
여러 쌈 채소 중에서도 상추는 모나지 않은 맛과 향으로 어느 요리에나 잘 어울린다. 그래서인지 옛 선조들로부터도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예로부터 ‘눈칫밥 먹는 주제에 상추쌈까지 먹는다’는 속담이 있다. 살림이 궁핍해서 밥을 얻어먹는 처지에도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상추에 밥을 싸먹어야 직성이 풀렸던 것이다. 쌈을 향한 애정은 신분의 격차를 가리지 않았다. <승정원일기> 기록에 따르면 대왕대비였던 장렬왕후의 수라상에는 조리 하지 않은 상추가 올랐다고 한다. 이는 상추를 신선하게 쌈으로 싸 먹은 증거이다. 또한 수라상을 차리는 과정에서 실수로 상추에 담뱃잎이 섞여 올라가자 상궁을 엄중하게 처벌했다고 한다. 밭일을 하던 농부들이 그 자리에서 채소를 따다가 고추장과 된장을 발라 한 입 가득 쌈을 싸 먹는 풍경은 낯설지 않지만, 왕실의 가장 높은 어르신인 대왕대비조차도 상추쌈을 즐겼다는 사실이 꽤나 인상 깊다.
상추쌈은 입을 크게 벌리고 먹어야 하다 보니 과거에는 그 모습이 흉해 보였던지 다소 억울한 일화도 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덕무는 상추쌈을 즐겨 먹는 아낙네는 게으른 부인이라 칭했다. 더 나아가 ‘상추쌈을 입에 넣을 수 없을 만큼 크게 싸서 먹으면 부인의 태도가 크게 아름답지 못하게 매우 경계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상추쌈과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 민족이 얼마나 상추를 즐겨 먹었는지를 나타내는 증거가 아닐까. 왕실의 최고 어른부터 아낙네까지 모두 즐겨 먹은 상추쌈을 한 마디로 조선시대의 ‘국민 음식’이었다.
상추는 그 영양성분이 풍부하여 예로부터 ‘복을 싸 먹는다’고 표현하였다. 특히 산성식품인 육류와 함께 먹으면 알칼리성 식품인 상추가 체내에서 중화시켜 맛뿐만 아니라 영양학적으로도 궁합이 잘 맞는다. 상추쌈하면 손이 많이 가는 요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참치캔 하나면 뚝딱 완성되는 웰빙 상추쌈밥도 있다. 간소한 살림의 자취생부터 요리 초보자까지 쉽고 맛있게 만들 수 있는 ‘참치 쌈장을 곁들인 상추쌈밥’이다. 먼저 양파, 마늘, 표고버섯, 대파를 잘게 다져 팬에서 볶는다. 여기에 된장과 고추장을 동량으로 넣고 기호에 따라 고춧가루나 청양고추를 추가한다. 자작해질 정도로 물을 넣어 농도를 조절하다가 참치캔을 넣고 잘 섞는다. 마지막으로 고소한 참기름을 한 숟가락 두르고, 통깨를 뿌리면 간단한 참치쌈장이 완성된다. 이제 밥에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을 하여 상추쌈을 싸 먹는다. 여건이 된다면 밥을 작은 원형으로 굴려서 상추 잎 중간에 쏙 넣고 감싸듯 모양을 잡아보자. 밥 위에 참치쌈장을 한 숟가락씩 얹어 커다란 그릇에 차곡차곡 놓으면 화사한 꽃송이가 피어난다. 한 해의 복까지 듬뿍 먹을 수 있는 건강식 상추쌈 요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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