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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음식인문학] 밥과 반찬으로 변신한 여름과일들

한국일보 오피니언 섹션에
<이주현의 맛있는 음식 인문학>이란 타이틀로
매달 칼럼을 연재합니다.

음식 속에 담긴 인문학적 이야기를
맛있는 요리와 함께 가볍게 풀어내고자 합니다.

18번째 칼럼의 주제는 '여름 과일'입니다.
즐겁게 읽어 주세요 :) 


여름이 절정으로 치달을수록 과일의 색도 선명해진다. 아삭아삭 참외는 샛노랗게 익어가고 물기 가득한 수박은 새빨갛게 여물어간다. 달콤하고 시원한 과일을 맛보고 있자니 잠시나마 무더위가 잊힌다. 한국인에게 참외와 수박을 빼놓고 여름을 나기란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참외는 우리 민족을 대표한다. 단순한 이유로는 한국에서만 나는 토종 과일이기 때문이다. 참외(眞瓜)라는 이름 역시 순우리말로 '진실되다'라는 뜻의 '참'과 오이의 준말인 '외'가 합쳐졌다. 오이보다 맛과 향기가 좋은 과일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 먹을 것이 없던 서민들은 밥 대신 참외를 찾았다. 참외가 제철을 맞으면 한 사람당 20개씩은 거뜬히 해치웠다고 한다. 그야말로 조선인은 여름에 참외로 살아갔던 것. 이를 증명하듯 1909년 발행된 '조선 만화'에 "조선의 참외는 대단한 산물로 7월 초부터 8월 내내 '참외 사려' 하는 소리가 문 앞에서 끊이질 않는다. 참외가 나오면 한인가(韓人街)의 쌀집은 매상이 70%나 떨어진다"는 기록이 있다. 저렴하고 구하기 쉬웠던 참외는 보릿고개를 겨우 넘긴 가난한 백성들에게 생명줄 같은 존재였다.


참외가 밥을 대신했다면 반찬 역할을 한 과일이 있다. 바로 수박이다. 수박은 단시간에 신분이 급상승한 몸이다. 사실 조선 초기까지 수박은 천대받던 과일이었다. 오랑캐가 먹었던 과일이 반역자에 의해 전해졌다고 여겼기 때문. 그러던 수박이 곧 궁궐에서 먹는 음식이 되었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궁궐 주방 내시가 수박을 훔치려다 붙잡혀 곤장 80대를 맞고 귀양까지 갔다고 한다. 삼엄한 궁궐에서 수박을 훔칠 생각을 하다니, 당시 수박의 가치가 얼마나 높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선조실록에 따르면 선조가 먹을 수박을 철저히 관리하지 못한 죄로 관리를 엄격히 문책했다고 한다. 선조는 "잘 익은 수박은 모조리 왜적이 가져갔는가?"라며 분노까지 터뜨렸다. 왕이 애정한 수박은 이후 대중 과일로 자리 잡았다. 양반가였던 신사임당 그림에는 수박이 자주 등장한다. 이를 통해 16세기쯤에는 수박이 백성들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재배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전보다는 쉽게 먹을 수 있었지만 여전히 수박은 가격도 비싸고 귀한 과일에 속했다. 그래서인지 수박을 먹고 난 후 수박껍질의 하얀 속살까지 알뜰하게 먹곤 했다. 1970년대만 해도 수박껍질을 얇게 썰어 고추장, 식초를 넣고 버무려 반찬으로 먹었다. 지금도 '수박껍질 무침' '수박 나물'이라는 이름으로 레시피가 진화하고 있다. 사실 과거 수박은 지금보다 현저히 당도가 떨어졌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과일로서의 역할 외에 반찬으로 활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을까.


복숭아 역시 우리 민족이 선사시대부터 먹어온 역사 깊은 과일이다. 복숭아는 숙취 해소를 도우며 니코틴을 배출시킨다. 술과 담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복숭아와 친해지는 것을 추천한다.


수박 나물을 응용한 매콤한 과일 겉절이를 소개한다. 수박 대신 단단한 천도복숭아가 주인공이다. 여기에 제철을 맞은 토마토, 초당옥수수를 넣어 겉절이를 무쳐보자. 푸릇푸릇한 영양부추도 추가하면 색감이 더욱 화사해진다. 올리브유, 간장, 올리고당, 고춧가루, 참기름, 통깨를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한 입 크기로 썬 재료에 양념장을 조금씩 부어가며 가볍게 섞어주면 완성이다. 냉장고에 차갑게 보관하면 숙성되어 맛이 더욱 좋아진다. 무더운 계절 입맛이 없다면 과일 반찬을 눈여겨보자.




한국일보 사이트에서 칼럼 전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7.20 발행)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71811230003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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