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피니언 섹션에
<이주현의 맛있는 음식 인문학>이란 타이틀로
매달 칼럼을 연재합니다.
음식 속에 담긴 인문학적 이야기를
맛있는 요리와 함께 가볍게 풀어내고자 합니다.
22번째 칼럼의 주제는 '대하'입니다.
즐겁게 읽어 주세요 :)
산에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면 바다에도 가을이 온다. 바닷속 생물들도 덩달아 새로운 계절을 맞는다. 이때 산란기를 지난 꽃게와 새우의 맛은 최고조에 달한다. 게의 산란기는 6~10월이다. 지금은 알이 꽉 찬 5월의 암꽃게를 최고로 여긴다. 그러나 과거에는 늦가을 게가 근육이 단단하고 기름이 오른다 하여 최상급으로 쳐줬다. 제철 맞은 해산물에는 단맛 나는 살이 그득하게 채워져 있으니 이 계절 놓칠 수 없는 별미다.
게는 한자로 해(蟹)라고 쓰며 한글로는 '궤'라고 불렀다. 여기서 '게'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재미있는 점은 조선시대에 게는 시험 기간에는 절대 먹지 않았다는 것. 앞을 향해 똑바로 걸어도 시험에 붙기 어려운데 게처럼 옆으로 가면 떨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게의 한자어에 ‘풀어진다’는 뜻의 '해(解)' 글자가 들어있어 시험 기간에는 멀리하는 음식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게를 즐겨 먹었다. 과거에는 게를 어떻게 요리해 먹었을까. 궁중이나 반가에서는 게살을 발라서 전을 부치는 게전유화, 겟국, 게지짐이, 게찌개, 게찜 등을 즐겨 먹었다. 끓이고 찌는 것은 물론 기름에 지져서도 먹었다. 외국에서도 게 요리를 즐기지만 우리 민족처럼 다양하고 섬세하게 조리하는 나라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요리는 게장이었다. 지금은 게를 간장에 담근 것을 게장이라 부른다. 그러나 원래는 암게의 등딱지 안에 있는 내장을 일컫는다. 이 내장이 간장에 숙성되면서 감칠맛이 진해지고 밥도둑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예전에는 주로 참게로 게장을 담갔다. 이때 간장을 끓이고 붓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런 과정 때문에 참게장은 담그는 것이 아니라 '달인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렇게 달인 게장이 어찌나 맛있었던지, 선비들이 지켜야 할 예절을 기록한 '사소절'에는 게의 등딱지에 밥을 비벼 먹지 말라는 내용이 있다. 게장의 맛에 홀딱 빠진 선비들이 그만 체면을 잃고 게장을 먹어 치웠기 때문일 것이다.
게 못지않게 새우 역시 여러 요리법으로 즐겼다. '산림경제'에는 다양한 새우 조리법이 나와 있다. 그중 새우를 햇볕에 말려 가루를 내어 국에 뿌려 먹었다던 기록이 인상 깊다. 요즘 우리가 즐겨 먹는 건새우 조미료의 존재를 과거에도 이미 알고 있던 셈. 또한 새우젓에는 지방 분해 효소인 리파아제가 있어 돼지고기와 궁합이 잘 맞는데, 우리 조상들은 이를 이미 알고 있었는지 작은 새우로 담근 젓갈은 특히 돼지고기와 두붓국에 넣으면 좋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외에도 대하를 잘게 저며 표고버섯을 넣고 찐 대하찜, 말린 대하 가루를 기름, 후춧가루, 잣가루를 넣고 반죽하여 다식판에 박은 대하 다식 등을 즐겼다.
나라마다 대표적인 새우 요리가 있다. 일본은 바삭한 새우튀김, 중국은 튀겨서 매운 소스로 버무린 깐쇼새우, 서양에서는 빵가루를 소복하게 묻힌 새우튀김을 즐긴다. 사실 제철을 맞아 달큼한 속살의 새우는 어떻게 먹어도 맛있다. 가을에 잘 어울리는 마파소스를 활용한 대하 요리를 소개한다. 먼저 기름을 두른 팬에 다진 마늘, 파, 양파를 넣고 볶다가 대하를 넣는다. 잘 세척한 대하는 머리까지 넣으면 감칠맛이 진해진다. 여기에 두반장, 간장, 물, 올리고당을 넣은 마파소스를 붓고 졸인다. 되직한 농도는 전분물로 맞춘다. 칼칼한 청양고추까지 듬뿍 넣으면 매콤하면서 깊은 풍미의 대하덮밥이 완성된다. 여름과 겨울 사이 짧게 즐길 수 있는 가을의 맛이다.
한국일보 사이트에서 칼럼 전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10.17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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