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푸드칼럼니스트 이주현입니다.
지난 24년도에 수많은 원고 작업을 진행했는데요,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작업이
바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행하는
<KOREA>에 특별 기고한 글 입니다 !
월간 <KOREA>는
대한민국 정부(문체부)에서 발행하는
영문 매거진 입니다.
매월 해외 182여개국에 배포되어
한국의 전통 문화, 예술 등을
소개하고 있답니다!
24년도는 K-Culture 특집으로
특히 10월호에는 "k-푸드"에 대해 다뤘는데요,
저는 한식을 주제로 칼럼을 기고했습니다 :)
최근 한식이 세계에 널리 퍼지고 있는
현상을 바라보면서
그 이유와 원동력이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하다가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5000여년 동안 쌓아왔던
무구한 역사 속에서
세계가 반응할 수 밖에 없는
보석같은 문화 요소들을 만나봅니다!
한국의 매운 맛이 세계적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엽기 떡볶이, 불닭 볶음면 등 한국의 매운 음식을 맛보는 챌린지가 유행중이다. 한국 MZ세대는 매우면 매울수록 더 열광한다. 외국인들은 눈물 콧물을 쏙 빼면서 기꺼이 한국의 매운 맛을 경험한다. 그들은 k-매운맛의 시초가 ‘고추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깜깜한 독 안에서 오랜 시간 깊은 맛을 쌓아온 한국의 장(醬). 그 속에 세계적인 열풍을 이끄는 k-푸드의 저력이 숨겨져 있다.
고추장에서 시작된 K-매운맛
외국인들이 사랑하는 k푸드 메뉴 중 하나가 떡볶이다. 다른 첨가물 없이 고추장 본연의 맛을 고스란히 살린 한국 대표 분식이다. ‘떡복이=고추장’이라는 공식처럼 고추장이 없는 떡볶이는 상상하기 어렵다. 고추장 맛으로 먹는 요리가 떡볶이기 때문이다. 세계가 인정하는 웰빙 푸드 비빔밥에도 고추장을 빼놓을 수 없다. 밥 위에 올린 각종 나물과 육류를 조화롭게 어우르는 역할을 한다. 적은 양이지만 강력한 한 방으로 고추장은 비빔밥에서 화룡점정 역할을 한다.
고추를 발효시켜 장으로 만든 민족은 한국이 유일하다. 우리 민족은 어떻게 고추로 장을 담글 생각을 했을까. 별도의 냉장 시설이 없던 과거에는 음식을 장기간 보존하기 위해 ‘건조’를 택했다. 다른 건나물과 마찬가지로 고추 역시 햇볕에 말렸을 것이다. 그러나 고추는 수분이 증발하면 ‘파사삭’하는 소리와 함께 부서져 버린다. 우리 선조들은 이 때 고춧가루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된장을 담그듯 여러 장과 섞어보면서 지금의 고추장으로 발전해 왔을 가능성이 높다.
간장이나 된장에 비해 고추장은 뒤늦게 만들어졌다. 왜래 작물인 고추는 임진왜란 이후에 한국에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놀라운 점은 출발이 한참이나 뒤쳐졌음에도 고추가 한식 문화에 끼친 영향은 엄청나다는 것이다. 고춧가루를 넣어서 잘 어울리는 음식은 살아남고 잘 어울리지 않는 음식은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한국인의 급한 성질도 바로 화끈한 고추 맛에서 비롯되었다는 우스갯소리도 전해진다. 이런 이유로 한식에 있어 고추장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양념으로 자리 잡았다.
고추장만의 복합적인 매운 맛
매운 맛은 천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세계에는 수 백 가지의 매운 향신료가 존재한다. 후추는 칼칼하고 매캐한 맛을 지녔다. 덕분에 유럽에서는 고기의 잡내를 없애기 위해 후추를 필수품으로 갖고 다녔다. 한국을 강타한 마라는 어떠한가. 입 안이 얼얼할 정도로 극도의 매운맛을 자랑한다. 통각에 가까운 묵직한 매운맛이다. 이에 반해 서양 요리에 자주 쓰이는 타바스코 소스는 톡 쏘는 매운맛을 선사한다. 좀 더 가볍고 발랄한 느낌이다.
그렇다면 한국 고추장은 어떤가. 고추장에는 다른 매운 소스와 차별화되는 특징이 있다. 바로 매운 맛 못지않게 단 맛이 강하다는 점이다. 일차원적인 단 맛이 아니다. 고추장을 만들 때 넣는 메주의 구수함, 곡식을 삭힌 단 맛, 고추의 매운 맛이 녹아들어 있다. 여기서 나오는 입체적인 단 맛은 혀에 착 달라붙는 감칠맛으로 다가온다. 한 마디로 고추장의 매운 맛은 ‘단 맛이 강한 복합적인 매운 맛’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우리는 음식을 먹을 때 다섯 가지의 맛(五味)을 느낀다. 신 맛, 쓴 맛, 단 맛, 매운 맛, 짠 맛이다. 이 5가지 맛 중에서 인간이 가장 빨리 맛을 알아차리는 것이 단 맛이다. 그리고 가장 쉽게 중독되는 맛이기도 하다. 바로 여기에서 한국의 고추장이 세계적인 소스로 발전할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고추장으로 만든 떡볶이에 외국인들이 매워하면서도 손길을 멈추지 못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분명 고추장의 깊은 단 맛에 속수무책으로 끌렸던 것이 아닐까. 세계의 여러 매운 맛 중에서도 한국의 매운 맛은 강력한 중독성을 자랑한다.
k-바베큐 불고기의 숨은 주역
한국에 방문한 외국인들이 빼놓지 않고 먹는 음식 중 하나가 ‘불고기’다. 달짝지근하며 짭짤한 k-바베큐. 새하얀 쌀밥 위에 불고기 한 점 올리면 이 감칠맛을 싫어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실제로 외국인들이 호불호가 가장 적은 k푸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양념이 촉촉하게 밴 불고기는 풍성한 쌈 채소와 곁들여도 그 맛이 일품이다. 쌀과 함께 먹어도 채소에 싸서 먹어도 불고기의 깊은 감칠맛은 모난 구석 없이 잘 어우러진다.
불고기의 감칠맛 뒤에는 ‘간장’이 버티고 있다. 불고기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숙성을 거치는 한국 대표 장(醬)의 한 종류이다. 간장은 콩을 주재료로 오랜 시간 발효를 거친다. 시간이 겹겹이 쌓인 만큼 간장의 깊은 맛이 더해진다. 그리고 그 안에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 강력한 힘이 존재한다. 불고기를 세계에 알리고 외국인들에게 대중적으로 다가가게 만든 힘이기도 하다.
된장에 비하여 간장은 외국인들에게 진입장벽이 낮다. 된장은 고유의 강한 향과 맛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곤 한다. 이에 반해 간장은 비교적 냄새가 적고 맛이 무난하다. 그만큼 여러 요리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으며 취향을 덜 타기도 한다. 우리 민족은 과거부터 소금 대신에 간장으로 간을 맞춰왔다. 간장은 단순히 짠 맛만 내는 것이 아니라 풍부한 감칠맛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간장으로 양념을 한 불고기가 한국을 대표하는 하나의 요리로 자리매김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도 이러한 이유 덕분이다.
장(醬), 음식 그 이상의 의미
고추장, 간장, 된장은 한국의 대표 발효음식이다. 발효 음식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스트를 이용한 서양의 빵, 유제품을 발효시킨 요구르트나 치즈 등이 그렇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만큼 요리에 발효음식을 많이 사용하는 나라도 드물다는 것이다. 우리가 먹는 수많은 한식 중 약 80%정도에 발효음식이 들어간다.(삭제) 찌개, 국부터 시작하여 일품요리를 넘어 밑반찬까지.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요리에는 고추장, 간장, 된장이 사용된다. 오히려 안 들어가는 한식을 찾는 게 어려울 정도이다. 이처럼 발효음식을 광범위하게 다양한 조리법으로 사용하는 나라는 드물다. 주로 양념의 개념으로 사용하는 만큼 각 가정마다 고추장, 간장, 된장은 필수로 구비해두고 있다. 한국 역사 약 5000여 년 동안 장(醬)은 끊임없는 진화과정을 거치며 한국 음식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 잡았다.
과거에 장은 음식 맛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였다. 그렇다보니 우리 민족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로 여겨졌다. 음식의 간을 맞추는 역할을 넘어 집 안의 길흉화복을 예측하는 기준으로 여겨졌다. 한식의 80%에 장이 사용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삭제) -> 대부분의 한국 요리에 장이 사용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장이 맛있으면 집 안의 전체적인 음식 맛이 좋아진다. 자연스럽게 식구들이 밥을 잘 먹어 건강하고 집 안이 잘 돌아간다. 반대로 장이 맛이 없으면 모든 반찬 맛이 안 좋아지고 결국 가족의 건강이 나빠진다고 여겼다. 외식의 개념이 없던 과거에는 충분히 일리가 있는 이야기다.
이런 이유로 우리 민족은 장을 담글 때 매우 진지한 태도로 임했다. 장 담그는 날은 심사숙고하여 골랐고 고사를 지내기도 했다. 장을 담글 때는 수 십 여개의 금기사항을 엄격히 지켜야 했다. ‘장맛이 달면 복이 든다’ 또는 ‘장맛이 변하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그만큼 우리 민족은 장(醬), 발효음식에 진심이었다. 이렇게 성심성의껏 만든 장은 시간이 겹겹이 쌓이며 음식에 깊은 맛을 부여했다. 다른 어떤 조미료로 대체할 수 없는 묵직한 감칠 맛이다. 고추장, 간장, 된장이 한식의 정체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가장 한국다운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이 있다. 장으로 만든 한국 요리들이 세계인의 입맛을 끄는 것도 결국 ‘우리다움’을 잃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입맛’만큼 주관적인 영역이 또 있을까. 누군가에게는 산해진미인 음식도 누군가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정답이 없는 세계여서 더욱 흥미진진하다. 앞으로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갖춰야 할 자세는 무엇일까. 바로 ‘끊임없는 도전’이라 생각한다. 어떤 이의 마음을 못 훔친 음식이라도 또 다른 이의 가슴을 세차게 두드릴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한 명, 두 명의 입을 통해 한식의 맛이 퍼져나가면서 우리 음식 문화가 세계적으로 더욱 각광받기를 기대해본다.
이주현 푸드칼럼니스트 / 요리연구가
성신여대 식품영양학과와 르코르동블루 출신으로 식품공기업 기획팀원, 영양사를 거쳤다. 다양한 매체에서 음식과 문학을 융합한 특별한 시각을 펼치고 있다. 한국일보의 ‘이주현의 맛있는 음식인문학’을 비롯해 방송 촬영, 대학 강의, 도서관 특강 등을 틍해 그녀의 전문성과 열정을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