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푸드칼럼니스트이자 요리연구가로
활동하는 이주현입니다!
이번 봄부터
<로타리 코리아> 매거진에
"한식 인문학"을 주제로
3회동안 칼럼을 연재했습니다 :)
전 세계 115만명이 활동하는
세계 최초 봉사 연합체 "국제 로타리 클럽
<로타리 코리아>는 6만 4천여명의
한국 회원을 대상으로 발행하는
한국어 공식 잡지 입니다 !
두 번째 칼럼은
"떡"에 대해 다뤘습니다 :)
5월에는 유독 떡을 찾는 손길이 분주해진다. 가정의 달을 맞아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귀한 마음을 전할 때면 떡을 찾았다. 축하할 일이 생기면 떡을 ‘먹는다’고 말하는 대신에 ‘돌린다’는 표현을 쓴다. 그만큼 떡은 한국인에게 있어 끈끈한 정을 나누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어왔다. 2021년에 ‘떡 만들기’가 국가 무형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떡은 우리 민족의 정서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무형적 자산이기에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쌀밥이 끼니를 책임지는 일상 음식라면, 떡은 인생을 함께 걷는 동반자에 비유되곤 한다. 우리는 태어난 지 백 일째 되는 날 신성함을 상징하는 새하얀 백설기와 함께 하고, 평생의 반려자를 맞이하는 혼례 날에는 봉치떡을 준비하며, 회갑과 제사 때는 높이 괴어 올리는 고임떡으로 돌아가신 분의 은덕을 기린다. 매년 돌아오는 절기와 명절에는 자연의 형상을 닮은 떡을 먹으며 풍요로운 삶을 염원한다. 떡을 먹는 행위 안에는 단순히 맛과 영양의 기능적인 측면을 넘어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의미까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언제부터 떡을 먹기 시작했을까. 그 시작은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의 떡은 지금 우리가 먹는 형태가 아니었다. 토기에 곡물가루와 물을 섞어서 찐 것이 떡의 초기 형태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쌀, 조, 수수 같은 곡물을 찌거나 갈아서 반죽형태로 먹었다고 볼 수 있다. 시간이 흘러 청동기 시대에야 떡을 찌는 도구인 시루가 등장했다. 이후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 불교의 영향을 받아 제사와 명절에 올리는 필수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떡 문화가 절정으로 꽃피운 시기는 조선시대부터이다. 이 때는 한국 식문화가 전체적으로 발전한 시기였다. 다양한 종류의 떡이 개발되고 지역마다 특색을 담은 이색 떡이 등장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떡은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동시에 공동체의 화합과 풍요를 기원하는 상징적인 음식이 되었다.
한국인에게 떡은 단순히 음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찹쌀을 치대고 뭉쳐 떡을 만드는 과정에 단합과 협력의 가치가 담겨 있다고 믿었다. 또한 쫀득쫀득한 떡의 식감은 장수와 번영을 상징했다. 이런 떡의 상징 덕분에 잔칫날 가족과 이웃이 떡을 나눠 먹는 행위가 자연스럽게 공동체 문화로 자리 잡았다. 지금도 굳이 감사와 축하의 마음을 말로 건네지 않더라도 떡으로 충분히 대신 할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제사와 의례에 올리는 떡은 조상님에게 감사와 공경의 뜻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제사상에는 으레 귀한 음식을 올려왔고 그 중 하나가 떡이었다. 밥도 제대로 못 먹던 어려운 시절 쌀로 만든 떡은 귀한 손님에게만 대접하는 음식이던 것. 또한 떡은 하늘과 땅의 기운을 하나로 모은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떡의 주재료인 쌀은 땅에서 나는 음식이다. 떡의 소로 들어가는 콩, 깨, 팥 등은 하늘에 떠 있는 열매다. 이 모든 재료를 섞어 하나의 음식으로 탄생한 떡은 하늘과 땅을 아우르는 완전함을 상징한다고 여겼다.
조선시대부터 유교의 영향을 받아 식문화에도 계급 차이가 뚜렷해졌다. 떡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왕가, 반가(양반집안), 서민 모두가 즐겨 먹다 보니 각 계층마다 주로 먹는 떡이 달랐다. 크게 보면 재료에 따른 차이, 떡을 만드는 방식, 먹는 목적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왕가와 양반층에서는 떡을 의례용 음식이나 호화로운 간식으로 여겼다. 떡의 재료로 쌀 외에 고급음식인 찹쌀, 팥, 대추, 밤, 잣, 꿀 등을 사용했다. 대표적으로 약과, 다식, 경단, 수수부꾸미 등이 있었다. 떡의 외관 역시 굉장히 화려했다. 의례나 축제에서는 오색송편, 무늬설기 등 시각적으로 세련되고 아름다운 떡이 등장했다. 또한 떡을 칠 때면 찌고 다지는 기본적인 기술뿐만 아니라 정교한 색과 모양을 내는 기법을 사용했다. 이 모든 것들이 왕가의 위엄과 부를 과시하는 상징으로 여겨졌다.
반면 서민들은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나 떡을 먹을 수 있었다. 떡의 재료도 간소했다. 쌀이 없으면 좁쌀, 보리, 수수, 옥수수 등의 잡곡으로 대체했다. 떡 위에 올리는 고명으로 대추, 콩고물, 참깨 등을 사용했다. 주로 실용적이고 소박한 떡이 대부분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농민들에게 떡은 힙을 합쳐 농사를 지은 후 나눠 먹는 음식이었다. 쫀득한 식감과 높은 열량 덕분에 고된 노동 후 에너지를 보충하는데 적합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떡은 먹는 사람에 따라 모습은 각기 달랐어도 우리 민족의 삶에서 빠질 수 없었다. 희로애락의 감정이 깃들어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음식. 떡 안에는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한국인이라면 공유할 수 있는 정서가 담겨있다.
처음으로 떡을 먹기 시작한 청동기 시대부터 수 천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떡 안 에는 사랑, 위로, 감사와 같은 변치 않는 가치가 존재한다. 온갖 미디어에 둘러싸여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진심을 전하는 것이 서투른 시대다. 5월에는 미처 전하지 못한 크고 작은 마음을 떡에 담아 건네 보는 것은 어떨까.
* 소개글
이주현 푸드칼럼니스트
성신여대 식품영양학과와 르코르동블루 출신으로, 다양한 매체에서 음식과 인문학을 융합한 특별한 시각을 펼치고 있다. 한국일보 ‘이주현의 맛있는 음식인문학’을 비롯해 방송 촬영, 대학 강의, 심사 등을 통해 그녀의 전문성과 열정을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