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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머즈 Jan 10. 2021

내 취미는 글쓰기입니다.

책 한번 써봅시다

한 때 문학소녀였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그냥 소녀였다. 책을 좋아하던 아빠가 서점에 들르면 꼭 내 책도 한 두 권씩 사 오셨는데 그 책들을 성실하게 읽으며 유년기를 보냈지만 나만의 시선으로 책에 깊이 빠져들지는 못했다. 6년을 다녔던 중고등학교는 교정이 꽤 컸는데 도서관은 아름다운 3층짜리 단독 건물이었다. 여름이면 초록의 담쟁이덩굴이 벽돌 건물 전체를 뒤덮었다. 책들이 촘촘하게 꽂힌 서가 사이를 돌아다니면 오래된 책 특유의 냄새가 났다. 어떤 건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도서관만의 독특한 공기를 책 자체보다 좋아했다. 그래서 도서관에 자주 드나들었지만 학업에 밀려 빌린 책을 채 읽지 못하고 반납하는 일이 더 많았다. 글쓰기와도 거리가 멀어서 흔한 백일장 대회 상도 한 번 못 받아봤다.     


얼마 전 장강명 작가님의 <책 한번 써봅시다>라는 책을 읽었다. 

장강명 작가는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하며, 형편없는 책을 발표해서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될까 봐 무서워 책을 쓰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 선택이 있다고 했다. 첫째, 책을 쓰지 않고 계속 후회하며 사는 것, 둘째, 졸작을 내고 후회하는 것, 셋째, 멋진 책을 쓰고 후회하지 않는 것.


물론 멋진 책을 쓰는 게 제일 좋지만, 어차피 후회할 바에는 형편없는 작품을 내고 괜히 썼다며 후회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졸작을 써도 실력과 경험이 쌓이고, ‘다음 책’이라는 기회가 또 있기 때문에. 책을 쓰지 않는다면 작가의 꿈은 버린 것과 버려지지 않은 것 사이에 평생 남아있게 된다 했다. 읽고 있던 책을 중단하고 이 책을 허겁지겁 읽게 된 것이 이런 깨달음을 얻으려고 그랬나 보다 싶은 대목이 몇 군데 있었는데, 이 부분 역시 그랬다. 내가 글을 쓰는데, 책을 쓰는데 관심이 있구나, 책의 저자가 되기를 조용히 남몰래 갈망하고 있었구나.     


코로나와 긴긴 장마로 기분마저 끈적끈적했던 지난여름. 그 여름에 활력이 되었던 건 온라인 글쓰기 모임이었다. 우연히 신청하게 된 100일 글쓰기 모임. 과연 해낼 수 있을까라는 처음의 의심과 달리 매일매일 소재를 찾으며 즐겁게 글을 쓰고 끝까지 완주했다. 친한 지인들과 교류하는 SNS에도 차마 쓰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써냈다. 첫사랑 이야기도, 이제 와서 뜬금없이 꺼내 보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도. 나의 정조를 형성하는데 분명히 영향을 미쳤을 일들을 어떤 식으로든 한 번은 풀어쓰고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듯하다. 조금 오버 해보자면 오래전 학교 도서관 서가 사이를 오가며 스며들었던 글자들이 이제야 비어져 나오는 것 같달까.


글쓰기는 즐거웠지만 익숙한 일이 아니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길든 짧든 한 편의 완성된 글을 쓰고 가다듬을 시간 확보를 위해서는 생활부터 정돈해야 했다. 손도 생각도 천천히 움직이는 편이라 더욱 그랬다. 쓰는건 재미있었지만 내가 작가가 될 것도 아닌데 글쓰기에 시간을 많이 쓰는 것이 조금 아깝게 여겨졌다. 차라리 그 시간에 운동을 더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글을 써서 뭐하지?     


내 생각을 꿰뚫은 듯 장강명 작가님은 이렇게 말한다. 골프가 취미인 사람에게 “골프를 뭐 하러 치세요? 프로가 되기엔 이미 늦었잖아요.”라고 묻지 않고, 방송 댄스를 배우는 직장동료에게 언제 아이돌로 데뷔할 건지 궁금해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유독 책 쓰기에 대해서는 편견과 자기 검열이 작동한다는 거다. “그거 써서 뭐 하려고? 내가 그런다고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이런 검열은 불필요하며 책 쓰기의 목적이 그저 나 자신, 내가 좋아서 쓰는 것이어도 괜찮다고 말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게 깨달음씩이나 필요한 일이었을까 싶다. 왜 글쓰기를 취미로 여길 생각을 못했을까. 왜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장강명 작가는 조금 모호할 수 있는 글쓰기보다는 단행본 분량인 ‘한 주제로 200자 원고지 600매 쓰기’를 목표로 잡기를 권한다. 구체적인 분량까지 가늠하고 나니 단행본 분량의 책 쓰기를 목표로 하는 글쓰기는 나를 위한 좋은 취미가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완성 이후는?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도 충분하다.     


할 말이 있었는데 손 들 용기가 없었던 나에게 마이크가 쥐어진 듯 후련하다.  

이제부턴 이렇게 말해볼까. 제 취미는 글쓰기입니다. 목표는 책을 출간하고 저자가 되어 나의 이야기가 필요했던 누군가와 소통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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