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직후 중환자실에 있을 때 간호사님이 내게 펜과 종이를 주셨더랬다.
"퇴원하고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적어 보세요."
아마도 섬망으로 오락가락하고 있던 나에게 삶을 붙들 동기 부여를 해주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멍하니 종이를 응시하던 중 질문과는 다르게 내가 유산으로 남길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졌다.
'적금 OO원, 예금 OO원..'
소박한 금액이지만 그 금액을 모으기 위해 아끼고 포기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뭐하러 그렇게까지 열심히 참았을까. 결국 남 좋으라고 두고 갈 것을.. 퇴원하면 내가 해야 하는 것만 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것도 꼭 해야지.'
힘없는 손으로 삐뚤빼뚤 써가며 결심했더랬다.
퇴원 후 어느덧 5년 차, 나는 예전과 다름없이 책임감에 갇혀 살고 있었다. 퇴직할 때에도 기회가 있었지만 이내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개인 사업자가 되고 나선 일과 생활의 경계가 사라졌다. 유난히 일이 몰릴 때는 저녁, 주말까지 일했다. 과호흡으로 응급실에 누워있을 때에도 의뢰받은 일을 끝내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욱 최악인 것은 나에 대해 더 이상 꿈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전의 나는 '안될 거야' 보다는 '해봐야 알지'가 더 익숙했다. 배우고 도전하는 것에 설레었다. 그러나 나는 예전 같지 않은 체력, 연례행사가 된 응급실행, 코로나19 등으로 현저하게 위축되어 있었다. 돈을 모으는 것에도 나를 가꾸는 것에도 소홀해졌다. 나는 그저 오늘 해야 할 일을 처리하는 것에 안도하며 살고 있었다.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 이러다 두 배로 후회하며 죽으면 어쩌려고!! 딱 1년만 다르게 살아보자. 나, 일 안 해!!'
과감하게 책임감의 일부를 도려내고 하던 업무를 멈췄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않아 당신은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폴 부르제, '한낮의 악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