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살 첫 가출 기념 프로젝트: 가족 연구하기
[l♡ve or hate, 인간 lab]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엄마는 기타를 함께 배우는 아주머니들과 파티를 하고 돌아왔다. 기분이 좋아보였다.
그리고 밤 10시가 넘어서, 윗집과 아랫집에 들릴 정도로 엄마와 나는 언성을 높였다.
시작은 정말 사소했다.
늘 그렇듯, 대화는 본질에서 멀어진다.
내가 논리적으로 말하면 엄마는 사실관계를 다루기보다 위계를 세운다.
"니 잘났다." "너나 잘해." "싸가지 없다."
그 순간부터 쟁점은 사라지고, 말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감히 말하는 사람이 된다.
내가 계속 맞는 지점을 짚으면 엄마는 방식을 바꾼다.
"내가 언제 그랬어야?"라고 부정하다가, "내가 화난 건 다른 이유야."라고 판을 바꾸고, 마지막엔 승부수를 띄운다.
"여긴 내 집이니까 나가."
그날도 동생 1은 옆에 서 있었다.
엄마와 내 사이에.
다 불똥은 튀지 않을 거리에서. 이 싸움과는 무관한 사람의 거리에서.
말없이 그냥 보고 있었다.
동생 1은 늘 같은 공간에 있고, 같은 카톡방에 있고, 같은 장면을 본다. (나는 2남 2녀 중 첫째고, 동생들은 동생 1, 2, 3으로 칭하겠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동생 1은 그 자리에 없다.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만, 투명 인간이 된다.
가출이 발단이 된 갈등에서도 그랬다. 엄마는 말했다.
"여긴 '내' 집이니까 나가. (엄밀히 말하면 아빠 소유의 집이고, 가족들의 주거를 위해 아빠가 구매한 집이다.) 아빠랑 난 부부고, 넌 새끼니까 달라. 넌 얹혀사는 거야. 넌 나이가 들면 나갔어야 했어"
내가 동생 1에게 바랐던 건 논쟁도, 편 가르기도 아니었다.
그저 한 문장. "엄마, 언니 아픈데 어떻게 나가."
그런데 동생 1은 곁에 서서 바라보다가 "둘 다 그만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가 끝이었다.
"왜 동생이 껴들어야 해?"
이렇게 보면 동생 1의 투명 인간 모드(?)는 자연스러워진다.
하지만 우리 집에선 싸움이 엄마와 나, 둘만의 싸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엄마 vs 나.
엄마 vs 형제자매.
엄마 vs 우리를 대변하는 나.
나는 오지랖 넓은 k장녀로 자주 형제자매의 몫까지 말을 한다.
엄마가 선을 넘는 순간, 누군가는 엄마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흔히 말하는 '사서 욕먹기'
반면 이 모든 구도에서 동생 1은 늘 방관자가 된다. 엄마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때도, 말이 과할 때도, 분위기가 명백히 기울어져도 동생 1은 말하지 않는다.
그 침묵이 몇 년 간 반복되니 궁금해졌다. 솔직히 말하면 아무 말도 안 할 거면, 차라리 그 자리에 없었으면 덜 서운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동생 1의 투명 인간 모드는 무관심일까, 아니면 겁일까?
나는 동생 1에게 내 편을 들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엄마를 적으로 만들기를 바란 적도 없다.
그런데 동생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침묵이 중립으로 읽히지 않는다.
나에겐 엄마 쪽으로 기운 침묵처럼 들린다.
서운하다. 고립감이 든다.
나는 세상은 원래 혼자라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그래도 나를 제일 잘 아는 동생이면...'이라는 기대를 놓지 못한다.
엄마와의 싸움이 상처인 줄 알았는데, 때론 그 동생의 침묵이 더 아프다.
엄마와 부딪히면 대화가 내용으로 가지 않는다. 내가 맞는 지점을 짚으면, 엄마는 사실을 다루기보다 위계를 세운다.
엄마에게 논리는 곧 버릇없음이고, 할 말을 하는 것은 곧 후레자식의 태도가 된다.
엄마의 단골 멘트는 대체로 이렇다.
"그래. 니 잘나서 좋겠다." "니 똑똑해서 좋겠다.“ ”싸가지 없이." "따박따박 말대꾸하네." "한 마디를 안 져."
내 말이 맞을 때, 대화가 논점으로 좁혀질 때, 엄마는 갑자기 갈등과 상관없는 과거를 끌고 와 나를 공격한다.
그리고 대화가 엄마에게 불리해지는 순간(특히 어릴 때 엄마가 우리 감정을 받아주기보다 쏟아냈던 시간, 그 방식이 지금의 상처로 이어진다는 얘기가 나오려 하면)이 오면 "그만 좀 해!"라는 말과 함께 대화를 끊어버린다.
우리 집에서 말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오히려 말을 꺼내는 순간, 말한 사람만 손해 본다.
내용이 아니라 말하려는 시도 자체로 공격받는다.
“넌 조용히 해.” “넌 가만히 있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래서 결국 말해도 소용 없다는 걸 학습한다.
이런 우리 집의 구조를 빼고 동생 1의 침묵만 보면, 원래 무기력한 성격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는 한 마디를 보태는 건 의견을 내는 일이 아니다.
그 순간, 말한 사람도 같이 혼나는 대상이 된다.
이런 환경에서 사람은 안전한 행동을 예측하기가 어렵다. 말하면 혼나고, 말 안 하면 답답하고, 어떻게 말해야 덜 욕을 먹는지도 애매하다.
그러면 사람은 보통 둘 중 하나가 된다.
싸워서 밀어붙이는 쪽(=나), 존재감을 낮춰 살아남는 쪽(=동생 1)
그러니 동생 1의 투명 인간 모드는 무관심이 아니라, 가장 덜 다치는 생존 방식일 가능성이 크다. 그 생존이 나에겐 이기심처럼 느껴진다.
동생 1은 개입한 적이 거의 없다. 내가 기억하는 최대치는 두 번이다.
최근 "둘 다 그만해."라는 말 한 문장.
2년 전, 엄마가 내 머리끄덩이를 잡고 흔들던 날, 울면서 말린 것.
이 외에는 거의 항상 가만히 있다.
사람들은 이걸 도덕으로 재단한다. "무관심하다." "냉담하다."
하지 우리 집의 규칙을 생각하면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말하는 순간 처벌받는 구조에서 동생이 배운 건 '나서면 손해'였을 수 있다.
가족 갈등이 반복되면 각자의 역할이 고착된다.
엄마: 감정 폭발과 권력의 중심. 규칙이 아니라 감정으로 통치
나: 항의자. 부당함을 말하다가 (사서) 욕먹는 사람
동생 1: 위험 반경 밖으로 후퇴. 회피, 동결로 충격을 줄이는 사람
이 구조가 굳어지면 동생 1의 판단은 단순해진다.
내가 끼면 커진다 → 그러면 내가 위험해진다 → 그러니 투명 인간이 된다.
이건 착하다, 나쁘다의 문제가 아니다. 역할의 문제다.
역할이 굳어질수록 동생 1은 선택한다기보다 '작동'하게 된다. 갈등이 생기면 자동으로 투명 인간 모드가 켜지는 것이다.
동생은 엄마와 나의 싸움에 말을 보태는 순간, 엄마의 공격이 나에게서 동생에게 옮겨올 수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동생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안정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게 전부는 아닐 수 있다.
가설 1이 동생의 전략이라면, 가설 2는 반사에 가깝다.
인간의 자동 방어 반응은 보통 네 가지로 말한다.
싸움, 도망, 얼어붙음(동결), 비위 맞춤.
동생 1은 이중 동결·회피 쪽이 강화된 쪽에 가깝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이 나오기 전에 몸이 얼어버린다.
싸움이 시작되면 머리가 하얘지고, 목이 막힌다. 한 문장을 꺼내는 게 어렵다.
그래서 동생 1의 안정은 '중재'가 아니라 그 순간을 그냥 버티는 침묵으로 나타난다.
엄마의 공격이 1차 상처라면, 동생 1의 침묵은 2차 상처가 된다.
"나는 맞고 있는데, 옆 사람이 가만히 있다."
뇌는 쉽게 이렇게 결론 낸다. "나는 보호받을 가치가 없어."
배신감, 고립감, 존재 부정감.
이건 감정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애석하게도 구조는 이렇게 굴러간다.
1. 엄마가 폭발한다
2. 동생 1이 투명 인간이 된다
3. 갈등 부담이 나에게 집중된다
4. 나는 더 크게 맞서거나, 아예 입을 닫는다.
5. 엄마는 “다른 애들은 안 그런데 너만 그래”라며 더 쉽게 나를 문제의 원인으로 고정한다
6. 동생 1은 “내가 끼는 순간, 불똥이 나한테도 튄다”를 또 학습한다
한 번의 싸움이 아니라, 피드백 루프다.
그리고 이 루프에서 동생의 투명 인간 모드는 중립이 아니라, 종종 현상을 유지시키는 힘이 된다. 저항이 줄면 사람은 보통 더 강한 방식으로 밀어붙이거나 "봐라, 내가 맞다"는 확신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동생 1은 도덕, 의리 프레임에서는 움직이지 않는다.
"엄마랑 같이 싸워줘." → 투명 인간
"내 편 들어줘." → 투명 인간
그래서 요구의 형태를 바꿔야 한다.
행동을 '아주 작게' 쪼개고, 책임을 제거하는 것이다.
1. 행동을 한 문장으로 제한하기
동생 1에게 필요한 건 용기가 아니라 짧은 한 문장이다.
예를 들어 엄마가 "나가."라고 하면, 이 문장만 말해줘. '지금 언니 아프잖아. 말 그렇게 하지 마.'"
2. 책임을 요구하지 않기
"누가 맞아?" "네가 결론 내줘." "중재해." 금지.
동생 1의 역할은 중재자가 아니라 1번의 한 문장을 말하는 사람으로 제한해야 한다.
3. 성공 기준 낮추기
10번 중 2번만 해도 진전으로 간주해야 지속된다.
동생 1이 100% 변화하는 게 목표가 아니다. 투명도를 95%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나는 관계를 이렇게 정의해 왔다.
사랑 = 함께 맞서는 것
가족 = 보호가 필요한 순간 앞에 서는 것
곁에 있음 =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
그래서 '마음은 있지만 행동하지 않음'은 내 세계관에서 잘 성립하지 않는다.
반면 동생 1은 이렇게 정의하는 사람에 가깝다.
사랑 = 감정은 느끼되, 책임은 분리
가족 = 연대보다 각자 생존
곁에 있음 = 정서적 거리 속 최소 접촉
그래서 동생에게 '다 하지 않는 것'은 배신이 아니라, 정상일 수 있다.
나는 상처를 덜 받기 위해서 '36살 첫 가출 기념 프로젝트: 가족 연구하기'를 시작했다. 가족을 이해하기 위함이지만, 쓰면 쓸수록 더 상처받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엔 이 질문으로 돌아온다.
그들은, 나를 이만큼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 있을까?
To. 독자
당신의 가족에도 '투명 인간'이 있나요? 그 사람은 보통 어떤 순간에 투명해지나요?
p.osh
동생에게도 "너는 왜 늘 그러냐"라고 화를 냈어요.
동생은 "엄마와 언니 모두를 사랑하니까 아무도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착한 그 말이 더 저를 화나게 했어요.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 사랑이 아무 행동도 만들지 않아서요.
"사랑해서 아무도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은 정말 중립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