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살 첫 가출 기념 프로젝트: 가족 연구하기
[l♡ve or hate, 인간 lab]
결이 다른 건지, 내가 이상한 건지, 상대가 이상한 건지.
36살 첫 가출을 기념해, 늘 혼자 곱씹기만 했던 내 인생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애증의 대상 '엄마'에 대해 연구(?)해보기로 했다.
책 『방구석 미술관』에서 본 아티스트들처럼, 나의 경험과 스트레스를 글로 승화해보고 싶었다.
엄마가 보컬 선생님(기혼 남성)과 밤 10시 이후 통화를 하셨다.
타인에게 피해 주는 걸 공포스러워하는 나에게 공적 관계 + 밤 10시 이후 + 이성 + 기혼의 조합은 상상할 수 없는 조합이었다.
"엄마, 그건 실례일 수 있어. 선생님에게도, 선생님 와이프에게도."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걸 이해해주는 사람한테만 그러는 거야."
"선생님 와이프와도 잘 알아서 상관없어."
어지럽다. 그리고 늘 그렇듯, 엄마의 심리가 궁금해진다.
"다 이해해주는 사람한테만"= 이 행동이 실례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여기서 '이해'는 공감이나 배려가 아니다.
엄마에게 이해란 약한 경계, 불편을 감내하는 태도, 관계 유지를 위한 침묵에 가깝다.
그래서 불편함을 표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선을 넘는다.
경계가 없어서 넘는 게 아니라, 넘어도 되는 경계를 고르는 쪽에 가깝다.
엄마, 이거 강약약강 아니에요? ㅠㅠ
"상대 배우자랑도 잘 알아서 상관없다" = 결과가 불편으로 이어져도, 그건 내 책임이 아니다.
상황 설명이라기보다 책임을 바깥으로 전가하는 문장이다.
불편이 발생할 가능성을 인지하면서도, 그 이후는 관계 당사자들이 알아서 감당할 일로 둔다.
사실 말다툼과 가출의 원인이 된 밤 10시 통화 사건(?)은 예외가 아니었다.
비슷한 일이 계속 있었다.
아침 7시 세탁소 사장님 개인 휴대폰으로 세탁물 수거 요청하기
밤 9-10시 무렵 손해사정사님에게 연락하기
밤 10시에 수선집 사장님에게 수선 요청사항 전달하기
엄마에게는 시간, 사적 영역, 역할을 가르는 선이 희미해 보였다.
그래서 내 질문은 이것이었다.
엄마는 원래 무례한 사람인가?
아니면 경계를 세우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인가?
엄마에게 '나중'은 없다.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그건 엄마에게 아이디어가 아니라 미완료 과제가 된다.
과제가 머릿속에 떠 있는 상태가 지속되면 불안이 올라온다.
그래서 기다리지 못하고 당장 전화한다.
이 가설은 엄마의 '타이밍 무감각'을 무례가 아니라 불안을 낮추는 방식으로 보는 것이다
생각이 떠오름 → 불편해짐 → 전화함 → "나는 했다" → 긴장 하강.
엄마의 요청이 진행되거나 일이 해결되면 뇌는 학습한다. "생각날 때 바로 연락하면 돼."
몇 번만 성공해도 습관은 강화된다.
예의나 상대 사정 같은 논리는, 학습된 진정 루틴 앞에서 밀린다.
(다만 이 두 가설만으로는 '선별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은 시간을 두 층으로 인식한다.
내가 쓰는 시간, 그리고 타인의 경계를 존중해야 하는 사회적 시간.
엄마는 이 두 층에서 '사회적 시간'의 비중이 낮을 수 있다.
그래서 엄마는 업무 시간, 비업무 시간 구분 자체를 적용하지 않는다. 시간과 상관없이 그냥 전화한다.
무지라기보다 자기 규칙을 정당화하는 자기 합리화나 핑계에 가깝다.
가장 결정적인 가설이다.
엄마의 행동은 무작위가 아니다.
본인이 '위'라고 느끼는 대상에게 더 잘 발생
돈을 지불하는 관계에서 더 잘 발생
더 강한 사람에게는 덜 발생
정말 충동 문제라면, 누구에게나 비슷하게 튀어나와야 한다.
하지만 경계 침범은 선별적으로 나타났다.
엄마는 규칙을 모르는 게 아니라, 관계의 위계를 재고 '가능한 상대'에게만 주도권을 행사한다.
몇 달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엄마는 늦은 시간 손해사정사님(역시 기혼 남성)에게 전화를 했고, 그분이 "괜찮다", "언제든 연락하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문제없다고 결론 냈다.
하지만 서비스 제공자나 업무 관계자에게 "괜찮습니다"는 종종 관계 유지를 위한 완곡어법이지 않은가.
직장인이라면 안다. 퇴근 후, 주말의 공적 연락은 전화 한 통에서 끝나지 않는다. 나의 퇴근 무드를 다시 출근으로 만든다. 내 시간을 공짜로 만든다.
직접적인 피드백이 오지 않으면 학습은 수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에게 "불편한 사람은 드물다 → 불편하면 말했겠지 → 난 무례한 게 아니다"라는 확신이 쌓인다.
표면적 결론은 이렇다.
엄마는 시간 예절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타인이 불편해질 수 있다는 개념도 이해한다.
그런데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
이건 예절이 아니라 관계를 운영하는 방식, 더 정확히는 위계의 문제에 가깝다.
엄마는 불편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지금 내 필요가 더 급하다는 쪽으로 관계의 규칙을 정한다. 그 순간 타인의 시간과 경계는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필요하면 넘어도 되는 선이 된다.
말하자면 무례라기보다 권한 행사에 가깝다.
나는 한동안 이걸 '인지 부족'과 '공감 결여'로 착각하고, 엄마를 말로 납득시키려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하지만 엄마에게 설명은 종종 설득이 아니라 지위 도전으로 읽힌다.
결국 "너나 잘해."라는 반발로 돌아온다.
저처럼 설명해서 싸우지 마세요.
경계는 없어서 넘는 게 아니라, 넘을 수 있는 사람을 가려서 선을 넘는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분석이 아니라 내 경계를 설정하고 실행하는 일이다.
같은 일이 생겼을 때 엄마를 말로 설득하려 애쓰기보다, 내가 감당 가능한 거리와 규칙을 정하고 그 선을 지키는 것.
엄마가 바뀔 수 있는 조건은 나의 설명이 아니라, 엄마의 방식이 실제로 손해가 되는 순간이다. 관계가 틀어지거나, 협조가 끊기거나, 평판에 손상을 받거나.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건, 엄마의 속사정이 아니라 내가 치르는 비용이다.
나는 '엄마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말로 엄마를 규정짓고 싶지 않아 여기까지 왔다. 이해가 끝이 아니라, 이제는 내 삶에서 시작돼야 한다.
오늘의 교훈: 오지랖 부리지 말자. 엄마는 자신이 왜 그런지 궁금하지 않다. 나만 궁금하다. 이해시키려 애쓰기보다, 디스턴싱을 하자.
To. 독자
당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 편인가요, 자주 듣는 편인가요?
당신의 경험에서 경계를 넘는 행동은 무지, 습관, 위계 중 어디에 가장 가깝다고 느끼나요?
우리 집에 오는 CJ 택배 기사님은 한때 오전 7시-7시 30분 무렵 반품 택배 수거 연락을 하시곤 했다.
엄마는 "상식이 없다"고 분노했다.
겉으로는 모순 같지만, 내부 논리는 일관될 수 있다.
"내가 불편해지면 상대가 예의를 어긴 것이고, 상대가 불편해지면 그건 그 사람이 감수할 일이다."
엄마의 짜증의 핵심은 이른 시간이 아니라, 통제권의 상실인 것이다.
[연재 안내]
l♡ve or hate, 인간 lab: 관계를 감정으로만 보지 않고, 구조를 분석합니다.
진상進上이 아니고, 진상眞相입니다: 전직 마케터·호텔리어의 시선으로 브랜드와 서비스의 진상을 기록합니다.
'왜'로운 사람의 '왜'노트: 일상에서 튀어나온 수많은 "왜?"를 인과로 정리해 기록합니다.
To. 독자
당신 인생에서 가장 경계 침범으로 남은 장면은 무엇이었나요?
당신이 정한 연락 가능 시간은 언제인가요?
경계 설정에 죄책감을 느낄 때, 당신은 그 죄책감을 어떻게 처리하나요?
p.osh
쓰고 지우고, 올렸다가 삭제하고, 다시 썼어요.
서른여섯에 처음으로 '가출(독립 아니고…)'을 했습니다. 가족으로부터의 이탈이랄까요? 지금은 병원에 머물고 있습니다.
학교생활도, 직장생활도 쉽지 않았지만 제게 가장 큰 어려움은 늘 '가족 안의 나'였어요.
그래서 [l♡ve or hate, 인간 lab]의 시리즈로 <36살 첫 가출 기념 프로젝트: 가족 연구하기>를 기록해보려 합니다.
이 시리즈는 가족을 평가하려는 글이나 제 자신 혹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글이 아닙니다. 제가 이해되지 않았던 장면들을 구조로 다시 읽고, 제 삶에서 반복되는 규칙을 찾아보는 실험 노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