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목표를 위해 목소리까지 팔 수 있는 용기
이 글의 BGM으로는 선우정아 님의 <Workaholic>을 권합니다.
바깥세상을 아아아아
난 더 원해 want more
아직 배고파 more more more
more money more
- Workaholic 가사 中
작년에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은 단연 <심리학이 이토록 재미있을 줄이야>가 아닐까 싶습니다. 내용 중 인어공주를 '소속 집단과 준거 집단'이라는 심리학 관점에서 바라본 대목이 있었는데요, 저는 프로덕트 매니저(PM)의 시각을 덧대어 'Culture Fit(컬처핏)'을 설명하기 좋은 소재가 아닐까 싶어 이렇게 글을 써봅니다. 이 글이 회사를 선택하는 기로에 놓인 사람들에게 이해를 돕는 작은 실타래가 되길 바라봅니다.
Trade-off (트레이드오프)
거래, 협정이라는 뜻으로 어느 것을 얻으려면 반드시 다른 것을 희생하여야 하는 경제 관계를 뜻한다.
호기심이 많던 인어공주는 15살이 되던 날 처음으로 바깥세상을 구경하게 됩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바다 위를 헤엄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마주하게 되었죠. 그동안 살던 곳 보다 더 멋진 세상이 있었다니! 밝은 달과 그런 달을 바라보는 꽃. 모든 풍경에 감탄했습니다.
한편 배 위에서는 왕자의 생일파티가 한창이었습니다. 인어공주는 배 위에 서있는 왕자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집니다. 거센 파도가 몰아치고 배가 부서지며 왕자를 구할 수 있는 건 인어공주뿐이었습니다. 물에 빠진 왕자님을 안고 모래밭으로 나왔지만 느껴지는 인기척에 바위 뒤로 몸을 숨깁니다. 그 사이 성과(?)를 가로채는 건 이웃나라 공주였죠. 왕자는 이웃나라 공주가 본인을 구한 줄 알고 착각하게 되고, 그런 왕자를 잊지 못한 인어공주는 어두운 바다동굴을 지나 무시무시한 바다마녀를 찾아갑니다.
두 다리를 얻고 왕자를 만날 수 있는 대신 목소리를 잃어 말을 할 수 없는 트레이드오프 앞에서 그녀는 어떤 결정을 하게 될까요? 심지어 왕자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되면 본인은 물거품이 된다는 악소조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왕자를 만난다'라는 단기목표를 중요시 한 인어공주는 물약을 마시는 결정을 내립니다.
꿈에서 깬 인어공주는 우연히 왕자를 만나게 되지만 목소리를 잃어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도 함께 성으로 가 왕자와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죠. 그러던 어느 날, 왕자는 곧 이웃나라 공주와 결혼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실 왕자를 구한 건 인어공주였지만 이를 알릴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인어 언니들이 찾아와 왕자의 심장을 찌르면 다른 여자와 결혼할 수 없기에, 다시 인어가 될 수 있다며 마지막 기회를 알려줍니다. 칼을 쥔 인어공주는 차마 왕자를 해칠 수 없어 그 자리에서 포기합니다. 다시 인어공주로 돌아갈 수 없어도 함께 있었던 시간들을 마음속에 간직하며 그렇게 물거품이 되어 사라집니다.
함께 바다에서 지낸 다른 인어 언니들은 인어공주가 이해되지 않을 겁니다.
예쁜 목소리가 강점인 막내공주는 바다에서 충분히 말미잘들과 편하게 지낼 수 있는데, 두 다리를 얻기 위해 목소리까지 포기해야 했으니까요. 마녀한테 목소리까지 팔아가며 노력했는데도 왕자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물론 인어로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순간에서도 그를 해치지 않은 선택을 한 것도 이해가 어려울 것입니다. 이런 선택을 한 인어공주는 과연 행복했을까요?
인어공주가 태어난 '소속 집단'은 바닷속 세상입니다. 하지만 인어공주가 속하고 싶은 집단은 바다 밖 인간 세상인 '준거 집단'이었죠. 어떤 사람은 소속 집단과 준거 집단이 일치하지만,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인어공주는 바다세계를 소속 집단으로 하면서 바다 밖 세계를 준거 집단으로 삼고 있으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어공주의 언니들은 인어 사회에 소속되어 있고, 생각의 기준도 인어 사회에 있으니 소속 집단과 준거 집단이 일치합니다. 이런 언니들에게 인간이 되기로 한 인어공주의 여러 선택들은 당연히 무모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어 언니들 입장에서는 인어 사회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왕자라도 칼로 찔러야 한다고 조언을 해 준 셈이지요.
197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심리학자인 허버트 사이먼은 선택하는 방식에 따라 사람을 크게 '극대화자'와 '만족자'로 구분했다고 합니다. 극대화자란 어떤 상황에서든 '최고'의 선택만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말하고, 극대화자는 선택하기 전 선택 가능한 모든 영역을 확인하며 선택의 폭을 극대화한다고 합니다.
반면 만족자란 '이 정도면 괜찮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야'처럼 생각하는 사람을 말하며, 대체로 만족자는 일단 선택하면 다른 것을 더 알아볼 필요를 느끼지 않는 사람을 뜻합니다. 최고보다 자신만의 확실한 기준과 조건에 들어맞는 정도만을 추구하며, 그래서 만족자는 선택할 때 극대화자보다 적은 시간과 비용이 듭니다.
만족자는 극대화자보다 언제나 행복합니다.
극대화자는 '더 좋은 대안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선택하고 나서도 불안해하는 반면, 만족자는 물론 자신이 한 선택보다 더 나은 선택이 있을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그 선택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함으로써 만족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결국 인어공주는 목소리도 잃고 사랑도 못 이룬 채 물거품이 된 비극적인 결말이지만, 인어공주는 만족자이기 때문에 물거품이 되어도 왕자와의 행복했던 시간을 기억하며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책에서는 추론합니다.
책에서 말하는 '소속 집단과 준거 집단'의 차이가 있을 때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저는 컬처핏과 유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최선을 선택하며 안주하고 유지하는 것에 의의를 두는 조직이 있는 반면, 더 큰 목표를 갈망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뼈를 깎는 최고의 노력을 요구하는 조직도 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인어공주 같은 사람만 가득한 바다에 다른 인어 언니들이 홀로 남겨져 있었다면 그 바다에 적응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 인어공주를 다시 읽으며 조금 더 주인공이 전략적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마녀에게 목소리 대신 다른 걸 팔아보겠다고 협상을 할 수도 있었고, 왕자와 이웃나라 공주가 있는 앞에서 타임라인을 짚어가며 '사실은 내가 널 구했어' 라며 스스로를 증명해 보일 순 없었을까? 싶었죠.
결국 제가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저는 최고를 선택하는 '극대화자'이고,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은 '인어공주'는 만족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소속 집단과 준거 집단', '극대화자와 만족자' 두 개념을 배우고 나서 조금 더 다른 팀원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혹시 내가 속한 집단 또는 타인이 이해하기 어렵다면 이 개념을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타인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그의 소속 집단과 준거 집단이 일치하는지, 그는 만족자인데 내가 극대화자의 생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고 말입니다.
사랑이란 목표를 위해
해볼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도전해 본
그녀의 용기에 작은 박수를 보내며
기나긴 동화일기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