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선 Oct 26. 2022

콤플렉스를 비우는 달리기

‘맙소사! 눈썹이 없어!!!’ 눈썹연필을 찾던 손이 황급 해졌다. 손에 든 거울 속에는 하얀 파우더를 발라 더 희미해진 눈썹이 비쳤다. '와 하필이면 눈썹연필을 놓고 오다니... ...ㅠㅠ' 달리는 도로 위, 집에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타이밍이라는 게 너무 속상했다.


 정신없는 날이었다. 그날따라 아침부터 배가 너무 아파 아이고 하다 쓰러져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새로 수강을 시작한 교육에 늦을 뻔한 시간이 되었다. 콜택시를 부르고 로션과 파우더, 눈썹연필을 후루룩 챙겼다. 차에서 간단히 파우더를 바르고 눈썹을 그리려는 찰 나, 두둥!, 휘.둥.그.래! 눈썹연필을 놓고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악!!!'


 '없는 눈썹'은 내게 거대한 콤플렉스였다. 그리지 않으면 거의 눈썹이 없는 자, 모나리자인 나는 눈썹 없이는 밖에 돌아다니지 않았다. 결혼하고도 한동안은 집안에 머물 때에도 눈썹을 그리곤 했다. 눈썹이 있는 듯 없는 듯한 사람이라면 와닿겠지만 사람이 눈썹이 없으면 참 곤란할 때가 많다.


 '~님 다 하셨나요?' 일곱 명뿐인 강의장에서 선생님과 눈썹 없는 얼굴로 대면하고, 교육이 끝나고는 수업 5회차 만에 한 수강생과 나란히 집에 가면서 얼굴을 코앞에 대고 이야기를 나눴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반나절 동안이나 내 모습 중 가장 피하던 눈썹 없는 얼굴로 지냈는데 예상과는 달리 안절부절못하던 마음도 없어지고 별로 상관없는 일처럼 여겨졌다. 평소에는 피하던 모습으로 가장 많이 지낸 시간 덕분일까?


평소에는 피하던 모습으로, 살면서 가장 흐트러진 얼굴로 지낸 시간은 바로 달리는 시간이었다. 넓찍한 둥근 얼굴과 톡 나온 광대뼈를 커버하고 싶어서 늘 옆 머리를 최대한 내리고 다녔었는데 달리기를 하면서는 묶어 젖히기 시작했다. 각이 진 장군 이마를 보이기 싫어서 절대 올백은 하지 않았는데 달리면서 무수히 많이 앞머리를 뒤로 재차 넘겼다. 어울리지 않는 모자를 쓰는 일도 잦아졌고 짧은 다리를 커버하지 못해 잘 안 신던 운동화 바닥이 닳는 속도가 구두 굽 닳는 속도를 역전하기 시작했다.


 얼굴보다 달리기가 우선이 되었다. 때로는 갑자기 내린 비에 쫄딱 맞은 얼굴이 되고 매미 소리가 커지는 한 여름에는 얼굴이 아주 시뻘겋게 달아올라 머리까지 땀 벅벅이 되었다. 흐트러질 대로 흐트러진 얼굴이 수십 번 수백 번 되어 보면서, 나는 흐트러지지 않은 얼굴만 추구하던 외모 관계자와 멀어지게 되었다. 우연히 단발머리로 잘랐을 때에도 긴 머리 얼굴과 비교할 필요도 없이 무엇보다 달리기가 편해서 마음에 들었다.


 누가 뭐래도 달릴 때만큼은 실컷 흐트러지는 편이 자연스럽다. 그래서 좋아 보이지 않아도 되는 계기가 생긴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날의 무드를 달려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