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간장게장

작년을 보내며, 엄마가 나를 낳은 나이를 지났다

by 이달팽

엄마도 사람이구나. 그녀가 엄마이기 전에 사람인 것을 몰랐던 멍청한 사람이 아닌데도 가끔 그런 생각에 아득해지곤 한다.


엄마의 취향을 알게 될 때가 보통 그렇다. 나는 어려서부터 쭉 엄마랑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행운아였는데, 그래서 그녀가 어떤 상황에 어떤 행동을 할지는 기가 막히게 잘 맞추는 딸이 됐다. 그럼에도 가끔은 엄마의 취향이 낯설다. 그녀를 잘 앎에도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어떤 작가를 좋아하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같은 것들은 모른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누군가를 알아갈 때 당연히 상대방에게 물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질문들은 엄마를 피해 가는 경우가 많았다. 엄마와 싱가포르 여행을 갔을 때, 내가 가장 놀랐던 것 중 하나는 엄마가 호텔 숙박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3000원짜리 어묵과 2000원짜리 어묵의 차이점을 비교해가며 꼼꼼히 고르던 엄마가 하루 숙박비로만 삼십만 원이 훌쩍 넘는 호텔을 그 자체로 즐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아서였다. 굳이 손조차 댈 필요가 없게 잘 정리된 호텔 침대에 천천히 누우며 미소 짓던 엄마. 그 호텔에서 머무르는 내내 즐거워 보이던 엄마의 모습은 그동안 내가 엄마를 엄마라는 틀에 가두지는 않았는지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부모님이 준 돈이 아닌 내가 번 돈으로 효도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나로 하여금 엄마의 취향을 담은 물건을 선물할 수 있게 만들었다. 처음에만 해도 필요 없다며 손을 내젓던 엄마는 이제는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으면 쿠팡이나 네이버 링크부터 보낸다. 난 더 묻지 않고 잔말 없이 결제한다. 오늘은 그게 게장이었다. 작년 여수에 여행 갔을 때 들렀던 게장집에서 나오며, 엄마가 간장게장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바로 본가로 게장을 보냈었다. 바깥 음식에 인색한 엄마가 맛있다고 이야기를 하길래 뿌듯했었는데, 엄마는 오랜만에 그 게장이 생각난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양념게장이 먹고 싶다고 하는 그녀의 요청사항까지 챙겨 바로 칠만 원을 결제했다. 이로서 이번 주 내 생활비는 줄었지만, 이런 금액은 정말이지 하나도 아깝지 않다.


작년을 보내며, 엄마가 나를 낳은 나이를 지났다. 이 나이가 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누군가를 잘 키울 수 있는 어른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만 깨달은 나는 그 사실이 자주 미안하고 또 고맙다. 나는 이 나이 먹고도 나 자신조차 감당하지 못해 자주 주저앉는데, 엄마는 그 나이부터 몇 명을 책임지고 키워야 했으니까.


엄마한테 더 잘해야지. 간장게장이 먹고 싶다고 하면, 양념게장은 안 먹고 싶냐고 물어봐야지. 그 외에도 요새 무슨 책을 읽냐고, 어떤 운동을 하냐고 엄마가 아닌 그녀의 일상을 궁금해해야지. 그러면서 책을 주문해줄까, 운동화는 필요하지 않냐 물어봐야지.


엄마 이야기는 세줄만 써도 눈물이 난다. 아마 그녀가 간장게장을 좋아한다는 걸 너무 늦게 눈치챈 딸이 조바심을 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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