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끼니를 걱정하던 이 하나가 줄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고작 그 열 글자를 이해하는 데에만 십 초가 걸렸다. 물기 어린 아버지의 목소리를 한 번 더 곱씹고서야 이해했다. 그가 영영 떠나버렸음을.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이어져 있던 강력하고도 튼튼한 끈이 투둑-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할아버지는 호랑이 같은 사람이었다. 워낙 성격이 급한 데다 다혈질이기까지 해서, 어떤 일로든 할아버지와 대거리를 한 번 해본 어른들은 할아버지와 단둘이 있을 자리가 생기기만 하면 눈치부터 봤다. 무슨 말이든 잘못 꺼내면 당장이라도 집어삼켜질까 봐 겁이라도 내는 사람들처럼. 심지어 가족조차도 그랬다. 할아버지의 빠르고도 퉁명스러운 사투리는 자식들을 기겁하게 하기는 물론 손주들까지도 겁에 질리게 하기는 충분했고, 나는 그런 할아버지의 옆에서 도망치지 않고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가장 자랑스러운 손녀딸이 될 수 있었다.
엄마는 두고두고 그 사실을 신기해했다. 고리타분하고 구시대적으로 유명한 마을에서도 온갖 감투를 쓴 채 남에게 명령하길 좋아했던 어른이던 그가, 내가 갓 태어났을 때 사내아이가 아닌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와보지도 않았다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는 나를 가장 먼저 찾고 아낀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 할아버지의 사랑은 당신의 성격만큼 억센 면이 있어서, 오랜만에 뵌 자리에서도 난 할아버지로부터 왜 이렇게 몸집이 커졌냐는 타박 같은 인사를 들으며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도, 식사가 끝나자마자 그의 낡은 자전거 뒤에 타 읍내까지 가는 호사를 누리곤 했다. 그가 나를 태우고 그곳까지 간 이유는 하나였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은 읍내까지 가야만 있는 큰 슈퍼에서만 파는 것이고, 그는 단 것만 좋아한다며 성을 내면서도 내가 그 아이스크림을 눈 깜짝할 새에 해치우는 걸 끝까지 지켜보며 허허 웃음을 터뜨리곤 했으니까.
초등학생 때부터 벌써 키가 자신만 했던 손녀를 뒤에 태우고 비포장도로를 자전거로 삼십 분 넘게 달리던 할아버지가 쏟던 애정의 크기는 머리가 조금 더 크고 나서야 닿아 오더라. 그가 더는 자전거를 타지 못하고, 어딘가를 제 의지로 가지도 못할 때가 되어서야.
내가 약과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명절마다 약과를 세트로 준비해놓고, 어쩌다 엘에이 갈비를 맛있게 먹었다는 이유로 그의 기준에는 너무 비싸던 고기를 몇 근씩이나 쟁여놓던 그의 애정이 있어 내 삶이 조금 더 든든했다. 날 지탱하고 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등을 받쳐주곤 했다.
구두쇠로 유명한 할아버지가 내가 대학을 갈 때 선물해준 노트북은 자그마치 8년이란 시간을 나와 함께 했다. 그가 내게 선물한 애정들이 대체로 그랬던 것처럼 심지 굳고 단단하게 내 곁을 지켰다.
오일 간의 장례는 이제 더는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없음을 인지시키는 것 같았다. 이제는 내가 서울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서울의 날씨를 챙겨 보고, 내가 한 끼를 걸렀다고 해서 전국의 곡기가 마르지는 않았나 걱정할 사람이 없다는 걸. 이제 '할아버지'란 이름으로 온 전화는 평생 받을 수 없겠지. '서울이냐?'로 시작해 '그려'로 끝나는 길어야 사분 가량의 통화를 할 수도 없을 테다. 내가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끼니를 걱정하던 이 하나가 줄었다. 그 눈에 보이는 상실이 마치 내 목구멍을 틀어막는 듯해 장례 기간 내내 침묵했다.
예고된 이별은 있대도 준비된 슬픔이란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으며 그를 보냈다. 출근하지 않아 이 시기에 그만을 온전히 신경 쓸 수 있음에 감사하다는 현실적인 생각을 하는 날 보며, 그래도 할아버지는 이런 날 자랑스러워하리라 생각했다. 오래도록 암과 싸우면서도 새벽같이 일어나 운동을 하고 쓰레기를 태우던 그러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당도한 그곳에서는 즐겨 드시던 질긴 쇠고기와 삶은 문어를 실컷 드실 수 있길. 반주를 즐겨도 그 누구도 건강을 이유로 당신에게 잔소리하지 않는 곳에서, 행복하고 건강하게만 사시다가 문득 손녀가 생각나면 꿈에 놀러 와 주시길. 그때까지도 당신이 안긴 사랑은 손녀를 튼튼히 먹여 살리고 있을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