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인물 분석
20권이나 되는 박경리의 <토지> 속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중 개인적으로 최고의 악인이라고 생각되는 인물은 '조준구'이다. 인간의 온갖 나쁘고 악한 마음,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 잘못된 복수심, 자격지심, 허영심, 이기심의 집합체이다. 다른 빌런으로 언급했던 김두수는 이해할만한 구석이라도 있고, 그에게는 김한복이라는 사랑하는 동생도 존재했다. 하지만 조준구는 자신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않고 믿지도 않는다. 심지어 자신의 아들까지도 필요하면 가져다 쓰는 수단일 뿐이었다.
그의 어린 시절이나 집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다. 그저 서희의 아버지, 최치수의 육촌형이라는 사실과 최치수의 할머니가 조 씨 가문의 사람인데 최 씨 가문에 시집을 왔다는 사실만 언급이 되어 있다. 하지만 양반가라고 해서 모두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는 않다. 아마도 조준구의 집은 과거에는 떵떵거리며 살았을지라도 현재는 그렇지 못한 듯하다. 그래서인지 조준구는 양반이라는 지위는 있지만 늘 돈에 목매다는 돈에 끌려다니는 인생을 살게 된다.
그의 외모는 독특하다. 얼굴이 번들번들하니 꾸미면 괜찮을 외모지만 작품 곳곳에서 그는 '머리가 크고 다리가 짧다'는 것을 강조한다. 게다가 그의 첫 등장에서도 자신의 체형에 맞지 않게 유행만 따라가는 신식 옷차림을 하고 나타나 어떤 사람일지 대충 짐작하게 한다. 학식이 높은 것도 아니고 부유하지도 않았던 조준구는 어떡하든 부와 명예를 얻으려고 일본에 빌붙는다. 친일파들 속에 들어가 일본을 찬양하며 일본인들과 교류하며 뭔가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노렸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그래서 찾아온 곳이 서희네 집, 평사리의 최참판가였다. 부자라고 하니 돈 좀 얻어가며 며칠 머물려고 왔던 것인데 하늘이 도운 것이었는지 그 집 재산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욕심에 눈이 먼 동네 사람 둘을 사주하여 최치수를 암살하게 했고 연이어 닥친 호열자(콜레라) 유행으로 최치수의 어머니, 윤 씨 부인까지 죽게 되자 어린 서희만 남게 되었으니 먼 친척벌인 자신이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다. 서희가 클 때까지 대신 이 집 재산을 관리하겠다고 하면 끝 아닌가? 조준구는 서울에 있던 가족까지 데리고 와서 평사리에 눌러앉는다.
김평산에게 최치수의 살해를 암시하고 부랴부랴 서울로 떠날 때 조준구는 머지않은 장래에 행운이 굴러올 것을 믿었다. 치수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행운은 바로 지척에 있음을 느꼈다.
마로니에북스 <토지 3권> p. 132
아직 어린 서희는 집과 재산을 지키지 못했고 마을 사람들과 간도로 이주한다. 그 후 조준구는 꼽추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자식으로 취급하지도 않는 아들, 조병수를 평사리에 버려두고 서울로 이사한다. 서울에서는 역시 돈을 펑펑 써가며 방탕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이어간다. 하지만 탐욕에 눈이 먼 조준구는 서희의 치밀한 계략에 빠져 모든 재산을 잃고 재산은 서희에게로 다시 돌아간다.
삶의 어느 순간에도 조준구의 인생에는 자신 밖에 없었다. 아들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고 부인은 관심에도 없었다.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재산을 다시 서희에게 빼앗기고 서희가 준 적지 않은 돈으로 살아가는 조준구. 하지만 이는 사치스러웠던 그에게는 부족할 뿐이다. 말년에는 몸에 좋다는 것들을 먹으면서 젊음과 건강을 유지하려 하지만 늙음은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중풍에 걸린 몸으로 자신이 버린 아들 병수를 찾아가서 죽을 때까지 아들을 괴롭히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 처음에는 정신은 말짱하여 기세 좋게 아비를 모시라 하며 소리를 지르고 중풍에 좋다는 온갖 약재를 가져오라 하는 등 발버둥을 쳤지만 끝내는 정신까지 온전치 못하게 되며 고통스럽게 끝을 맞이한다.
눈을 부릅뜨고 죽은 조준구의 형상은 끔찍했다.
몽치는 부릅뜬 조준구의 눈을 쓸어서 감겨 주었다.
끔찍했을 뿐만 아니라 삶의 기능, 존재했던 육체의 한 오리 한 방울까지 흝어내고 짜내버린 종말의 모습은 너무나 처참했고 머리끝이 치솟는 것 같은 공포감을 안겨 주었지만 한편으로는 깊은 연민을 느끼게 했다. 생명에 대한, 인생의 덧없음에 대한 연민이었다. <토지>18권 p. 176-177
- 조준구는 '욕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욕망'이란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탐하는 것을 말한다. 이 풀이에서 중요한 단어는 '부족'이다. 화수분처럼 채워도 채워도 채울 수 없는 그 욕망의 근원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목마름이다. 이런 타입은 가진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 양반이었고 먹고살기 어렵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조준구가 바라본 것은 다른 세상이다. 화려해 보이는 저 먼 세상을 동경하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꿈의 세상을 위해 남의 것을 탐하고 빼앗고 그것에 대한 죄책감도 전혀 없고 성취하려는 올바른 노력은 전혀 하지 않는다면 범죄에 가깝다.
- 콤플렉스 덩어리(외모, 집안, 지식, 능력 등)이다. 이를 감추기 위해서 최고급으로 꾸미는 것에 집착하고 평생 돈만을 추구하며 살았다.
- 지극히 이기적, 세상의 중심은 '나': 그를 보면 '어떻게 하면 저렇게까지 이기적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타입이지만 존재한다. 자신 밖에 모르는 유형이 그 첫 번째이고 자신과 가족 밖에 모르는 유형이 그 아류이다. 이런 존재는 어떤 식으로든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런 사람은 죄의식이라는 것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해도 전혀 깨닫지 못하고 늘 남 탓만 한다.
조준구는 인간의 악한 점들을 거의 모두 모아 놓은 집약체이다. 그의 말과 행동 그리고 생각을 읽으며 속으로 수없이 욕도 하고 화도 났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과연 나는 떳떳한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나쁜 심성 중에, 남을 해하는 행동 중에 나의 것이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차이는 그저 실행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