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벨기에 맥덕이다.

벨기에 맥덕의, 맥덕에 의한, 맥덕을 위한 가이드 서론

by 정긍정

5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 한국의 크래프트 맥주 시장은 놀랍도록 크게 성장했다. 그만큼 크래프트 맥주로 자주 통칭되는 상면발효 맥주에 대한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여태 맥주시장을 독점해 왔던 (맛... 없는) 맥주를 만들어 쉽게 돈 벌던 대기업들을 생각하면, 이런 변화는 여러모로 좋은 전환점이 아닐 수가 없다.


하지만, 맥주의 맛을 막 알기 시작한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소규모 양조장들이 내놓은 맥주들과 수입 맥주들에 선택이 폭이 넓어져 기쁜 마음이 들면서도, 맥주 선택에 있어서 혼란스러움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혼란과 함께, 단순히 높은 가격의 맥주가 좋은 맥주일 거라는 판단을 하게 되지는 않을까 염려스럽기도 하다. 이런 염려는 나의 벨기에 맥주에 대한 사랑을 키우기도 한다.


벨기에에 정착하고 벨기에 맥주를 많이 접하게 되면서, 맥주 각각의 흥미로운 스토리에 관심을 가졌고, 그 스토리를 알게 되었을 때 그 맥주를 더 좋아하게 되는 나를 발견했다. 암시장을 형성해 가격을 덤핑하는 등의 악순환을 막고자 한정된 수량만 구매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오르발 맥주를 보면서, 맥주의 가격이 맥주의 질을 완전히 대변하지는 않는다는 확신도 들었다. 나에게 벨기에 맥주란, 단순히 마시고 음미하는 주류 이상의 "그 무언가"가 되었다. 선택지가 넓어질수록, 뭔가 확고한 맥주 취향을 가져야 할 것 만 같은, 그런 은근한 강요를 느낄 맥덕들을 위하여, 꼭 하나의 맥주 타입이 내 취향이 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흥미롭고 역사적인 스토리를 가진 다양한 양조장들이 세계 곳곳에 많기에 벨기에 맥주만 팔 (digging) 이유는 당연히 없고, 물론 벨기에 맥주 중에도 줘도 안 마실 만한 맥주들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벨기에 맥주 사랑을 조금이나마 전파해보고자 글을 써보려 한다. "벨기에 맥주 덕후"만을 위한 글이 아니라, 많은 맥덕들이 글을 통해 조금 더 벨기에 맥주의 매력을 알 수 있길 바라며. 벨기에 맥주는 그 가치에 비해 아직 제대로 빛을 못 받은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 들었기에, 열심히 써봐야지 싶다.


맥덕의 성지 벨기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