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연 효녀일까?

by 이긍정

“뽀영아 이번 주말에 뭐하니?” 엄마의 물음에 피곤한 목소리로 “나 이번 주말에 바빠” 하고 말했다. 엄마는 다급하다는 목소리로 “한 번만 도와줘. 진짜 일할 애들이 없어서 그래. 한 번만!” 하고 말했다. 나는 다시는 엄마의 꾀에 넘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엄마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했다. 엄마는 “으이구. 엄마 죽어버리고 나서 후회해봤자 하나도 소용없어!”하며 듣기 싫은 극단적인 말을 토해냈다.



엄마와 이모는 남양주 산속, 계곡 옆에서 15년째 닭, 오리가 주메뉴인 식당 ‘고은가든’을 운영 중이다. 초등학생 5학년부터 매해 여름이면 나는 서빙 아르바이트 차출돼 가게에서 엄마를 도왔다. 열두 살이었던 꼬마는 어느덧 스물일곱 살이 되었고 어엿한 8개월 차 직장인이 되었다. 하지만 올해는 비껴갈 줄 알았던 나의 소망과 다르게 가장 바쁜 성수기에 또다시 전화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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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부탁을 거절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엄마는 여름이면 극도로 예민해졌다. 지난해 퇴사 후 7월부터 엄마의 가게 일을 도왔을 때였다. 엄마는 피아노 음계의 솔 톤으로 일을 지시하지 않으면 안 들리는 줄 아는지 매번 소리를 질렀고 그럴 때마다 자주 다퉜다. 깨어 있을 때는 일에 찌들어 정신없는 모습이었고 유일하게 다른 모습은 피곤함에 찌들어 가만 눈을 감고 잠든 모습이었다. 나는 웃음끼 많고 수다스러운 평상시 엄마의 모습을 사랑하는데, 여름 장사를 할 때 모습은 내가 싫어하는 엄마의 모습만 가득했다.



함께 일할 때마다 엄마는 나를 작아지게 하는 비교의 말을 서슴없이 뱉었다. “내가 너한테 돈도 주는데 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어야 되겠니? 아침에 청소도 안 하고 일도 안 하면 어떡해? 차라리 고등학생 애들을 부르면 내가 마음이라도 편하지. 야 게네는 8시부터 와서 청소해" 그렇다고 내가 일을 안 한 것도 아니었다. 예민한 엄마가 보기에 게을러 보이는 딸이 못마땅했던 것이 이유라면 이유였다.



엄마는 나와 오빠가 자라는 동안 자식이라면, 엄마가 일을 도와달라고 할 때면 무조건 도와주어야 한다고 교육했다. 나는 엄마가 내게 요구하는 게 사랑인지 복종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방학 중 친구들이랑 약속이라도 잡을라 하면 엄마는 늘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는데!” 하면서 소리쳤다. 그러면 나는 친구들이 놀자고 하는 전화에 우울한 목소리로 “나 오늘은 못 나갈 거 같아” 하고 말해야만 했다.



나는 오랫동안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과 책임감을 구분하지 못해 괴로웠다. 가게는 늘 일손이 부족해 일을 도울 수밖에 없었고, 엄마 곁에서 여름 내내 일을 도우면서는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의 역할을 했다. 그럴 때면 부모를 존중하고 섬기는 마음마저 모두 사라질 것 같았다. 독립을 하고 물리적인 거리가 생기자 객관적인 시선으로 사랑과 책임을 따로 분리해 생각하게 된 듯했다. 결국 올해도 나는 일을 도왔지만,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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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월요일, 주말 동안 뭐 했냐는 상사의 질문에 엄마 가게 일을 도왔다고 했다. 그러자 상사는 “보영이 효녀구나?” 하며 칭찬했다. 그의 말에 나는 “아니에요. 이제 그냥 의무 같은 거라서”라고 냉소적인 목소리로 대답하며 구분하기 어려웠던 두 가지 감정을 떼어내려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