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차 우리는 서로의 음악 취향으로 물들었다
벚꽃이 피는 4월이었다. S언니가 남자 소개를 받지 않겠냐고 물었다. 심심하고 외로웠던 나는 언니의 물음에 흔쾌히 응했다. 대부분 시험이 끝났을 무렵 S언니는 그가 학교로 놀러 왔다고, 인사하라며 술자리로 나를 불렀다. 술자리에서 번호를 교환한 뒤 그와 나는 매일매일 통화했다. 자정에서 새벽을 넘긴 긴 시간을 핸드폰을 부여잡고 서로를 알아갔다.
그는 백화점 내 의류 판매원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 곧바로 군대를 다녀왔고 힙합 음악을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힙합을 좋아했던 터라 그와 공통점이 있었다. 내가 남자를 소개받았다고 이야기하자 P언니는 "고졸이라며?" 하고 내게 말했다. 그녀는 그의 학력을 문제 삼았다. 나는 그녀에게 "결혼할 것도 아닌데 뭐 어때? 연애하는데 학력이 뭐가 중요해?"하고 그의 학력을 무시하려 애썼다.
대학 안에서 만난 남자들과는 다르다고 느꼈다. 그는 힙합 음악을 하고 싶어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꿈꿨지만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에 그의 꿈은 사치였다. 나는 한때 무명이었던, 지금은 유명해진 래퍼들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다. 친오빠는 내게 "네가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래퍼들이 지금 다 떴어! 네게 래퍼들을 알아보는 능력이 있나 봐"라고 종종 말했다. 친오빠의 칭찬은 나를 붕 뜨게 했다. 나는 그의 묵직하고도 안정감 있는 목소리가 좋았다. 비트 위에서 어우러지는 그의 리듬감은 스케이트 타듯 매끄러웠다. 나는 그에게 힙합 음악을 꼭 하라고, 재능이 있다고 응원했다.
그는 나와 사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음악을 제대로 시작했다. 한 달 월세를 내며 작업실을 빌렸고 일을 끝내면 작업실로 향했다. 랩 하는 친구들을 모아 크루를 만들기도 했다. (크루란 힙합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로 비슷한 음악을 하는 모임을 말한다.) 그는 때때로 나를 생각하며 곡을 만들었다고 선물해주곤 했다. 연애하면서 느끼는 감정을 곡에 담아 표현했다. 어떤 곡은 달콤했고 어떤 곡은 그 곡의 주인공이 내가 아닌 것 같았다. 또 요즘 작업 중인 곡인데 어떤지 궁금하다며 내게 곡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그와 나는 힙합 안에서 극과 극의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재즈 비트가 어우러진 힙합을 좋아했고 그는 당시 유행한 외설적인 가사와 트랩 비트를 즐겼다. 점차 우리는 서로의 음악 취향으로 물들었다.
그는 내게 "다른 남자가 만나고 싶거든 나와 헤어지고 만나. 나랑 만나는 중에 만나는 건 바람이야. 나는 네가 바람피운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헤어질 거야"라고 말했다. 내가 바람피울 일이 없대도 그 말을 믿기 어려워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의 전 여자 친구들은 그를 두고 바람피웠다. 그래서 그에게 트라우마가 생긴 듯 느껴졌다. 나만은 그러지 말자고, 그에게서 '바람피운 전 여자 친구'의 경험을 끊어내자고 다짐했다.
내가 일하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관계는 조금씩 변해갔다. 데이트보다 '밥 먹고 잠만 자는' 날이 잦아졌다. 나는 의류 판매 노동자에서 벗어나면 마냥 쉬고 싶었다. 수면만이 내 피로를 풀어줄 유일한 해결책으로 여겨졌다. 그와 만나면 고깃집에 들어가 고기와 소주를 시켰다. 알딸딸하게 취한 뒤 집에 들어가 씻고 잠이 들었다. 자려고 누운 나를 그가 만지면 짜증 냈다. 줄어든 스킨십과 관계에 그는 서운해했다. 내게 "어디 가서 다른 남자랑 자고 오는 거 아니야? 그러지 않고서 어떻게 욕구가 없을 수가 있냐"라고 물었다. 나는 그의 질문이 우스갯소리 같아 흘려들었다.
그는 올 2월 내게 헤어짐을 말했다. 그는 내게 변해도 너무 변했다고. 예전 순수하던 내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변한 게 아니라 발전한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넓고 깊어진 사유의 폭을 그가 이해하지 못하는 거라고, 조금씩 벌어진 그와 나의 틈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처럼 느꼈다. 우리는 한 달 동안 헤어졌다. 그의 물건을 상자에 담아 택배로 부쳤다. 택배를 보낸 지 한 달이 지나도록 그는 내게 택배를 보내지 않았다. 미련이 남았던 나는 택배 핑계로 연락을 했고 우리는 한 달 만에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한 달은 내게 미련과 아쉬움을 깨닫게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다짐한 것들이 있었다. 스킨십도 관계도 귀찮아하지 않겠다고. 연락도 꼬박꼬박 하겠다고. 헤어지기 일 년 전부터 그가 관심을 둔 백패킹도 함께 가겠다고 다짐했다. (백패킹이란 캠핑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을 갖추고 떠나는 1박 이상의 여행을 말한다.) 피곤해도 피곤하지 않은 척했다. 관심 없던 백패킹도 캠핑 카페에 가입하고 책도 읽으며 공부했다. 헤어진 뒤 미련이 남지 않으려면 내 곁에 있을 때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10월이었다. 길고 긴 추석 연휴가 지나고, 퇴근한 그와 만났다. 그날도 저녁 겸 술을 마셨다. 그는 전날 피곤했다며 일찍 잠들었다. 그가 자는 도중 진동이 여러 번 울렸고 그가 곤히 잠든 틈을 타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카카오톡 대화창에 못 보던 여자 이름이 눈에 띄었다. 카카오톡 대화를 읽어보니 나와 안 만난 추석 연휴 동안 그녀를 만났다. 나와 자기 전 메시지를 나눈 뒤 그는 그녀를 작업실로 불렀다. 그녀와 종종 집 앞 캠핑지로 백팩킹을 다녀왔다. 사진첩을 열어보니 그녀와 4월에 제주로 여행을 다녀왔다. 내게만 보여주는 줄 알았던 짓궂은 표정을 지은 그가 사진 속에 있었다. 그가 요즘 작업 중이라며 내게 보냈던 음악을 그녀도 알았다.
우리이기에 가능한 것들이라고 여겼던 것이 그는 새로운 그녀와도 가능했다. 4년 동안의 믿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다시 만나기 시작했을 무렵이 4월이었다. 그는 다시 만난 뒤 내게 우스갯소리로 “우리 사귀는 사이 아니잖아.”라고 말했다. 그는 그의 새 여자 친구를 합리화하는 말이 필요했으리라. 그가 아무리 "우리 다시 사귀자"라고 말은 안 했어도 우리는 헤어졌다가 다시 화해하고 만나는 4년 차 연인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음을 그의 새로운 여자 친구를 통해 깨달았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그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에 자책감이 몰려왔다. 잘하려고 노력했던 바보 같은 나를 떠올렸다. 한편으로 그의 매정함에 분노했다. 4년에 대한 예의라는 걸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그의 태도에 화가 났다. 배신감과 분노에 가득 차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충격적인 연애의 끝을 알렸다. 말할 때마다 스스로가 비참해졌지만 말하지 않고서는 억울함과 분노에 잠식당할 것 같았다. 그렇게 4년 6개월의 연애가 끝이 났다.
*과거에 <감응의 글쓰기> 수업 중 써두었던 글을 편집해서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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