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그때

매장에서 의류를 판매하는 서비스업 노동자였습니다

by 이긍정

매장에 입사한 뒤 나는 2주 동안 멘토로부터 교육받았다. 매장 오픈·마감부터 계산 업무와 고객 서비스까지 짧은 시간 동안 모든 업무를 익혀야 했다. 교육을 마친 뒤 매장에 본격적으로 투입되었다.


매니저는 매장에 고객이 들어오면 큰 소리로 인사하고 눈을 마주친 후 미소를 지으라고 교육했다. 매장의 업무는 시간마다 하는 일이 바뀌는 로테이션제였다. 업무는 매장 입구, 탈의실, 계산대, 창고로 나뉘어 있었고 그날의 스케줄표를 보고 시간마다 어떤 근무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입구를 지키는 시간에는 들어오고 나가는 고객을 향해 크고 단정한 목소리로 인사를 해야 했다. 가끔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는 고객도 있었지만 대체로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해도 못 본 체 무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럴 때면 아무리 직원이라지만 내가 사람이 아닌 기계처럼 느껴졌고 무안함에 속으로 욕지거리했다. 일하는 동안 직원은 미소를 머금고 있어야 했다. 언제든 고객과 눈이 마주치면 '난 널 도와줄 준비가 되어있어'라는 분위기를 풍겨야 했다.


매니저는 미팅 때 말을 많이 하는 직원을 좋아했다. 말을 많이 한다는 건 나대는 일이었다. 동시에 다른 직원들을 깎아내리면서 자신은 올바르게 일하고 있음을 은근히 드러내는 일이었다. 매니저는 직원들에게 일곱 개의 사내 윤리를 몸소 실천하는지를 종종 물었다. 기업을 내 회사처럼 여기는 이를 선호했고 주도성을 가지고 일하라는 말을 귀에 박히도록 했다. 매분기마다 일곱 개의 사내 윤리를 바탕으로 직원의 점수를 매겼다. 직원은 스스로 자신의 점수를 매겨야 했고 왜 그렇게 점수를 매겼는지 매니저와 이야기해야 했다.


한 달에 두 번 ‘미스터리 쇼퍼’라는 제도로 각 매장의 서비스 정도를 측정했다. 미스터리 쇼퍼란 고객으로 가장한 일반인이 체크리스트를 가지고 매장에 방문해 쇼핑하며 직원의 서비스를 평가하는 제도였다. 웃음은 몇 점인지, 제품에 대한 지식은 어떤지, 직원들끼리 떠들지는 않았는지 등 해당 매장 직원들의 서비스를 평가했다. 그 점수는 매장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했다. 점수가 낮게 나올 때면 고객 서비스를 높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시때때로 직원을 감시했다.


판매원으로서 업무는 간단했지만 일 잘하는 판매원이 되는 것은 간단하지 않았다. 매주 새롭게 올라오는 정보를 숙지하고 있는지 미팅 때마다 물었고 모르는 직원에게는 면박을 주었다. 소재의 장단점을 외우게끔 했고 고객이 물었을 때 바로 그 소재에 관해 설명할 수 있기를 바랐다. <일하지 않을 권리>에서 저자가 이야기한 “그리 대단치 않은 취급을 받는 저임금 일자리 노동자”였지만 전문가주의를 확실히 드러내는 능력을 똑같이 요구받았다.


어느 날 퇴근 후 스타벅스에 들렀다. 그 무렵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의 노동이 눈에 들어왔다. 상냥한 인사와 반듯한 예의가 노동으로 보였다. 나는 그 직원들의 노동에 마음이 쓰여 퇴근 후 소비자가 되었을 때도 상냥함을 잃지 않았다. 스타벅스 직원이 기계적으로 하는 인사에 의식적으로 대답했고 그들이 웃으며 말하면 나도 미소 짓고 화답했다. 그러자 '원래 나는 이러지 않았었는데…'하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어디를 가든 직원의 인사를 의식하지 않았고 필요한 말만 경제적으로 썼다. 그랬던 내가 퇴근 후 소비자가 되었음에도 상냥한 말투와 웃음으로 커피를 주문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서비스업에 몸담게 된 뒤로 내 성격에 변화가 생긴 건가 싶었다. 일하는 직원들에겐 착한 손님으로 비칠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내 일할 때 고객 앞에서 쓴 가면이 퇴근 이후에도 이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이나 문서가 이전의 것에서 새로운 것으로 동기화되어버리듯,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성격에서 이보영이라는 직원이 지닌 성격으로 나도 모르게 동기화되어버린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계산대에서는 높임말을 달고 일했다.

"사이즈는 괜찮으셨나요?", "한 벌 하셔서 10만 원이십니다", "그 옷은 품절되셨어요", "오늘 더 필요한 건 없으셨나요?"

높여 말하면서도 이상하다고 생각은 들었지만, 자꾸만 입에 높임말이 붙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에서 김정선 작가는 이런 현상에 대해 '그만큼 이 사회에 감정 노동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 강도 또한 세졌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나는 서비스업과 감정노동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퇴사를 결정했다.


*과거에 <감응의 글쓰기> 수업 중 써두었던 글을 편집해서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