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생각에 상담소를 찾았다
지난 주말, 회사 생각만 하면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었다. 2년 연속 인사평가에서 최하위를 기록했기 때문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눈물이 멈추지 않아 상담소를 찾았다. 같이 글 모임을 하는 언니가 지도 앱에 상담소를 검색하면 심리 상담하는 곳이 많다고 하기에 급한 대로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어 가장 빠른 시간으로 예약을 잡고 집을 나섰다. 퉁퉁 부운 눈으로 버스를 탔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아 먼산을 바라보면서 계속 눈물을 닦아냈다.
낯선 공간을 스스로 찾아온 것이 신기했는지 선생님은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나는 검색을 통해 찾아왔다고 하면서, 회사 생활이 힘들어 찾아왔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선생님은 차분이 내 말을 들어주었다. 처음 만난 이에게 나의 내면을 이렇게나 깊숙이 보여준 적이 없어 낯설었지만, 동시에 시원한 기분도 들었다. 누군가 내 말을 침착히 들어주고 판단하지 않고 공감해줄 사람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가족이나 애인에게 말하면 “그래서 그때 뭐라고 답했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밀려오는 자책감에 괴로웠는데, 선생님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적절한 추임새를 넣을 뿐 쉽게 판단하거나 답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 어떤 마음이었나요?”같은 질문을 하면서 내 마음이 어떤 종류의 감정에 허우적대는지 궁금해했다.
나는 대화 내내 눈물로 손수건을 적셨고, 선생님은 대화 중간중간 내가 고양된 감정을 추스를 수 있도록 시간을 주었다. 종종 내게 숨은 잘 쉬어지냐고 묻거나, 일하는 시간 외에는 무얼 하냐고, 가족들하고 사는지, 평소에 감정을 잘 드러내는 편인지 물었다. 내가 평소엔 책읽고 등산하고 요가도 좋아한다고, 글쓰는 걸 좋아해 글쓰기 모임도 한다며 자랑스레 말하면 선생님은 “정말 좋아하는 걸 열심히 찾아 나서는 편이구나”하면서 응원해주었다. 길고 긴 내 말을 마치고 나면 선생님은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짧은 질문을 이었다. 가령 “그래서 그분들이 어떻게 해주길 바라세요?” 라던가, “그래서 이다음엔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라고 물음에 스스로 답을 하면서 해결책을 찾아가도록 이끄는 듯 느껴졌다.
첫날이라 그런지 순식간에 상담이 끝이 났고, 나는 이게 괜찮은 상담소인지 의아한 기분이었다. 긴 시간 말을 했을 뿐 이렇다 할 해결책이 없었다. 그저 선생님은 다음 상담이 예정되어 있어서 다음 주에 한번 더 오실래요? 하면서 우울증 테스트를 권했다. 나는 과연 이 상담을 통해 나아질 수 있을까 걱정이었다. 시간당 얼마인지, 상담은 몇 회를 진행해야 하는 건지 아무것도 모른 채 선생님이 주신 사과 주스를 챙기곤 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