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의 싹을 뽑아라

노화는 자연스러운 일인데 치매는 혐오스러운 일이다

by 이긍정

엄마가 말을 꺼내다 멈춘다. "잠깐만. 아이고 그새 까먹었네. 어제 본 거, 그거 이름이 뭐였더라?"라고 말하며 옆에 앉은 이모에게 도움을 청한다. 어제 본 걸 깜박하는 엄마를 보며 나는 속으로 '치매인가, 만날 저렇게 까먹기도 어려워'라고 생각했다. 자주 있는 일이었다. 엄마가 말하는 동시에 단어를 까먹는 일. 젊은 내게도 있는 일이긴 했다. 말하려다가 설명하려는 단어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아 대화하고 있던 상대와 단어를 맞추는 스무고개 게임을 한적 도 있다. 나보다 엄마는 수시로, 하루에도 몇 번씩 깜박했고 그럴 때마다 "치매인가 봐…어떡하니" 하며 걱정스러운 얼굴을 지어 보였다. 엄마는 53세다. 퇴사 후 엄마와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내면의 목소리는 퇴화한 엄마의 기억력을 자연스레 비난했다. 때때로 나도 잘 깜박하면서 엄마가 잊어버리면 "어이구" 하며 이모와 함께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를 타박했다.


엄마는 경기도 남양주 천마산 아래 위치한 농촌 마을에 산다. 산이 저수지를 품고 있는 듯한 이 마을에 일이 년 사이 요양원 세 곳이 들어섰다. 시골 마을에 들어선 요양원은 대형시설답게 삼사 층 건물이 단독으로 우뚝 서 있다. 요양원 바로 앞, 저수지 둘레를 따라 산책로가 만들어졌다. 요양원이 들어서기 전까진 마을 주민들이 운동 겸 산책하는 곳이었다. 이제는 휠체어를 미는 나이 든 자녀들과 휠체어에 몸을 맡긴 노인을 종종 마주친다.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마주치는 요양원.



몇 달 전, 이모와 이모부가 크게 싸웠다. 이모부는 어머니가 치매인 것 같다며 집으로 모셔오자고 했다. 이모는 40대 늦은 나이에 이모부와 결혼했다. 부부는 아이를 갖지 않기로 했고 강아지 두 마리를 자식이라 생각하며 산다. 이모부는 효심이 지극한 사람이었다. 여윳돈이 생기면 과일이나 고기를 사 들고 본인의 엄마를 찾았다. 이모는 외할머니의 선별적 사랑에 상처를 받았고 관계는 틀어졌다. 친정엄마에게도 있지 않은 효심이 시어머니에게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런 이모에게 83세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모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모부는 노모를 끔찍이 생각했지만, 노모를 위해 '돌봄 노동'을 할 사람은 못됐다. 그 돌봄 노동은 분명 이모에게 전가될 게 뻔했다.


이모부의 아버지는 3년 전 먼저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홀로 비닐하우스 안 컨테이너 집에서 농사를 지으며 지냈다. 자식은 일곱이나 되었다. 첫째 아들은 돈이 필요할 때 노모를 찾았고 어머니는 가진 돈을 긁어 장남에게만 주었다. 노모가 가진 돈이 바닥나자 장남은 발길을 끊었다. 다른 형제들은 딸린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또는 부모의 선별적 사랑으로 인한 상처를 이유로 노모를 외면했다. 상황은 자식이 없는 이모부 내외에게 노모를 떠미는 듯 굴러갔다. 이모는 "형제들이 3개월씩 돌아가며 모시는 집도 있다는데 왜 우리만 모셔야 해? 다른 형제들도 모시면 나도 모신다고 전해!"라고 이모부에게 말했다.


이모부의 어머니인, 할머니는 전에도 치매가 의심돼 요양원에서 테스트를 받았다고 했다. 덧셈 뺄셈 등 기본 사칙연산 질문에 할머니는 답을 정확히 맞혔고 치매가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다. 이모는 시어머니가 요양원만은 가기 싫어서 온 정신을 집중해서 답을 맞혔다며 "요양원에서 그런 질문을 하면 되니? 자식, 손자 이름도 모르는데?" 하고 말했다. 이모부의 형제들은 할머니에게 원룸을 하나 얻어드리는 게 어떻냐고 제안했는지, 엄마와 이모는 이모부가 없는 자리에서 둘만의 대화를 했다. "치매 걸린 할머니가 어떻게 혼자 사니?" 하고 이모가 말하면 엄마는 "요양원에서 지내는 게 남는 거지" 하고 대답했다. 엄마와 이모의 대화에서 할머니는 타자화되어 있었고 어른들의 노년기와 요양원은 분리된 듯 들렸다.


결국, 이모부는 노모를 요양원으로 보내기로 타협했다. 며칠 뒤 이모부는 할머니네로 출근했다. 할머니 살림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이모부는 버릴 것과 쓸만한 것을 분리했다. 버릴 물건들을 내다 놓으면 할머니는 버릴 게 아니라며 다시 물건들을 주워왔다. 갖다 버리면 다시 가져오는 일의 반복이었다. 정리에 진척이 없자 이모부는 이모에게 도움을 청했다. 할머니의 눈을 피해 멀리 짐을 내다 버렸고 자정이 가까울 무렵 쓰레기를 태웠다. 아침부터 시작해 자정까지 정리해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막바지엔 엄마도 투입됐다. 할머니의 살림살이를 정리하는 데 꼬박 한 달이 걸렸다. 그 사이 이모부 안색은 어두워졌다. 상심이 큰 듯 보였다. 요양원을 알아보던 이모부에게 집 근처에 있는 요양원은 어떠냐고 물었다. 이모부는 "가까이 있으면 오히려 복잡해. 차라리 먼 데 계시는 게 나아" 하며 경기도 이천에 있는 요양원으로 할머니를 모시기로 했다.


엄마는 하루만 짐 정리하는 걸 도와준 것인데도 힘들어했다. 평소 식욕이 좋던 엄마가 음식을 넘기기 어려워했다. 육체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고통이 큰 듯 보였다. 할머니가 혼자 살던 컨테이너 집은 엉망이었다. 널브러진 옷가지와 텅텅 빈 냉장고, 치매 걸린 할머니의 생활을 보고 오자 마음이 어지러운 듯했다. 할머니는 전기밥솥도 가스레인지도 쓰는 방법을 잊었다. 할머니는 밥을 하기 위해 나무로 불을 지폈다.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했는지, 엄마가 소고기 뭇국과 밥을 차려드리자 오랜만에 맛있는 밥을 먹는다며 아이처럼 좋아했다. 엄마는 할머니를 보며 자신의 노년기를 그려본 것 같았다. 늙어도 치매만은 걸리면 안 되겠다며 도서관에서 <치매의 싹을 뽑아라>라는 제목의 책을 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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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요양원 시설에 적응하기 어려운지 매일 집에 가고 싶다고 투정을 부렸다. 이모부가 처음 전한 할머니의 요양원 소식이었다. 며칠 전 이모부는 요양원에서 노래자랑을 했다며 할머니와 함께 노래를 불러 화과자 한 갑을 상으로 타왔다. 화과자 자태는 알록달록했다. 반짝반짝한 윤기가 매력적이었지만 어른들이 보여 준 모습은 화과자를 한입 물었을 때처럼 퍽퍽했다. 엄마가 드라마를 보다 내게 말했다. "아들은 장가가면 다 소용없어. 네 오빠는 자기 부인만 알 애야. 나중에 엄마 늙으면 뽀영이가 엄마 잘 챙겨줘 알았지?" 엄마의 '잘' 챙겨달라는 말속엔 '돌봄 노동'이 포함된 걸까. 모순적인 엄마의 말들이 머릿속에서 떠다녔다. 엄마는 요양원에 간 할머니를 보며 안쓰러운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때로는 무서운 얼굴을 하고선 노인을 혐오했다. 노화는 자연스러운 일인데, 혐오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지금은 말짱한 엄마가 30년 뒤 치매에 걸린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엄마를 바라볼까. 자연스레 돌봄 노동을 받아들일까 아니면 무서운 얼굴을 하고선 요양원으로 엄마를 데려갈까. 지금도 그녀의 퇴화한 기억력을 멸시하는데, 30년이 지나도 지금과 꼭 같을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