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음식으로 위로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며칠 전 친구들이 엄마 가게에 놀러 왔거든. 근데 나이 먹으니까 애들이 전부 아프고 얼굴이 안 좋더라고" 우리 엄마는 수다쟁이다. 자려고 불 끄고 눕기만 하면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수다는 어릴 적 엄마와 이모, 할머니와 함께 방에 나란히 누우면 시작되던 것이었다.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누워 세 모녀는 잘 생각을 않고 뻐꾸기의 울음소리를 벗 삼아 오래도록 떠들곤 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본가에서 엄마와 같이 잠을 자는 날. 이번엔 엄마와 나 둘만 이었고 주말이었다. 새벽까지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자려고 전원 코드를 뽑고 누웠다. 엄마는 자연스레 독백 연기를 하는 배우처럼 시작했다. "그런데 다들 하나씩 병을 앓고 있는 거야. 그 쌍둥이 아줌마 기억하지? 엄마 고등학교 친구 말이야" 쌍둥이 아줌마는 자주 본 적이 있는 엄마의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우리 가게에서 여름 방학 동안 일했던 쌍둥이 둘. 걔네는 나보다 세네 살 어렸던 걸로 기억했다.
엄마 말에 의하면 쌍둥이 아줌마는 남편이 아주 오래전 보증을 잘못 서 빚이 있다고 했다. 그 맘쯤부터 쌍둥이네 엄마는 식당에 나가 일을 시작했다. 마침 다른 가게 식당 일이 끊겼을 때, 엄마가 그녀에게 가게에 와서 일해달라고 부탁했다. 쌍둥이 엄마는 젊은 시절 힘든 일을 너무 많이 한 탓인지 근육이 마비되는 병을 앓고 있었다. 통원 치료를 받는 중이지만 여전히 아프다고.
함께 온 동창, 부잣집 아줌마도 사정이 낫진 않았다. 아줌마는 어릴 적 집이 아주 잘 살았는데 아버지가 고등학교에 보내주지 않았다. 여자가 배워서 어디다 써먹느냐고 하던 시절이었다. 그녀는 공장에서 일했고, 젊은 시절 교통사고를 당했다. 일이 바빠 쉴 수 없었는데 제때 치료하지 못한 몸에 오래도록 후유증이 남았다고. 그래서 양평으로 기 치료를 받으러 다닌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얼굴이 쏙 말라 건강을 잃은 사람 특유의 푸석푸석함이 얼굴에 배어 있었다며, 엄마의 말투에 안쓰러움 느껴졌다. 엄마의 말에는 어딘지 모르게 안도감이 배어 있기도 했다. 가게에서 17년째 서빙하느라 무릎 연골이 다 갈려 매해 병원에서 무릎뼈에 주사를 맞는 엄마였다. 엄마는 아픈 친구들을 보며 ‘그래도 나는 친구들만큼 아프진 않으니까’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 같았다.
친구들에게 “저녁 안 먹었지?” 하고 묻고는 엄마는 백숙을 해줄 테니 먹고 가라고 했다. 백숙과 오리를 주 메뉴로 하는 가든을 운영하는 엄마는 내 친구들이 가게에 놀러 와도 제 값을 받았었다.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니까. 그런 엄마도 홀쭉한 친구들의 얼굴을 외면할 수가 없었는지 금방 요리할 테니 닭백숙을 먹자고 제안을 했다. 친구들은 됐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엄마는 돈 안 받을 테니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다. 한 마리에 6만 원 돈 하는 음식을 평소 사 먹지 않을 친구들임을 엄마는 알고 있었다.
친구들은 밥상을 담당하는 사람이 늘 그렇듯 남편과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허락을 받았다. 엄마는 아낌없이 재료를 털어 넣었다. 인삼, 대추, 엄나무 등 몸에 좋은 것들을 가득 넣고 압력솥에 팔팔 끓였다. 직접 키운 대파와 당근, 부추를 썰어 데코레이션을 했고, 고소함을 담당하는 깨소금도 잊지 않았다. 엄마는 닭 뼈에서 우러나온 뽀얀 국물이 일품인 닭백숙을 친구들에게 대접했다. 그녀들은 정말 맛있다며 닭백숙을 싹싹 먹었다고 했다. 백숙 뒤에 나오는 닭죽까지 놓치지 않았다.
엄마는 독백 끝에 정말 뿌듯했다고, 엄마가 요리해줄 수 있어서 좋았다며 생기 가득 말했다. 엄마의 닭백숙을 17년째 먹고 자랐지만, 엄마가 그렇게 뿌듯해하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던 것 같았다. 엄마는 늘 그렇게 말했다. 엄마가 가장 힘들 때 엄마를 도와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그래서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을 때 엄마는 절대 도와주지 않을 거라고. 젊은 시절 아빠를 먼저 보내고, 한부모 가정의 가장이 되었을 때 엄마는 그렇게 다짐했다고 했다. 그런 다짐과 다르게 엄마는 그런 매몰찬 사람이 못 됐다. 엄마는 아픈 친구들을 위해 기꺼이 닭백숙을 대접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었다. 엄마는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따듯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그날 밤 엄마의 독백에서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