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좋아서 하는 게 아니야

혼자 살면서 알게 된 것들

by 이긍정

달콤한 신혼 생활을 만끽하던 연예인 부부의 결별 소식이 SNS를 통해 알려졌다. 부부의 사정이 세상에 알려지자 그들의 달콤한 신혼생활을 찍은 지난 예능 프로그램이 다시 재조명되었다. 여자는 결혼 후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일을 하며 보낸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그녀의 고백에서 한때 집안의 자질구레한 일은 모두 엄마의 몫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떠올랐다.


현재 나는 경기도의 작은 도시에서 홀로 자취 중이다. 일 인분의 작은 원룸에서 생겨나는 모든 집안일은 전부 나의 몫이다. 고작 일 인분의 삶인데도 버거울 때가 있다. 밥을 안치고 요리를 할 때. 쌓여가는 음식물 쓰레기를 볼 때. 쓸만한 수건이 하나도 없을 때. 공교롭게도 짠 것처럼 한 날, 한 시에 눈에 들어올 때. 그럼 나는 이불속으로 들어가 잠시 휴식을 취한다. 그리곤 종종걸음으로 집안을 누빈다. 그렇게 일 인분의 삶을 온전히 책임지면서 엄마는 너무 오랫동안 삼 인분의 삶을 맡아왔다는 사실이 문득 새삼스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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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한가한 날이면 청소를 했다. 휴일 없이 식당 문을 연 엄마는 손님이 없을 때만 집에 일찍 들어왔다. 그런 날이면 흰 빨래를 삶는 것부터 시작해 방바닥이 광이 나도록 닦았다. 내가 엄마의 비질과 걸레질을 요리조리 피하며 가만있어도 엄마는 묵묵히 입력을 실행하는 로봇처럼 방을 쓸고 닦았다. 종종걸음으로 집안을 누비는 엄마를 모로 누워 바라보았다.


그런데 대학생이 되면서 모든 일은 내 몫으로 변했다. 기숙사, 1인 고시원, 원룸에는 엄마가 없었다. 공동으로 살 때는 내 자리만 치우면 됐는데 원룸으로 옮길수록 해야 하는 자질구레한 일들이 늘었다. 화장실 변기 닦기, 분리수거, 각종 공과금을 내는 일까지. 잡다한 일들이 내 몫으로 온전히 배당되었다. 그렇게 한 주를 보내고, 주말이면 본가에 내려갔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은 편안했고, 맛있었다. 아기새처럼 입을 벌려 먹노라면 어릴 적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집안에 밀린 설거지와 수북이 쌓인 빨래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혼자 살아보니 이제야 엄마의 노동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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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집안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오로지 엄마 일이라고 못 박아 두었다. 집안일 자체가 내 것이었던 적이 없었으니 당연히 엄마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세탁기에 돌리면 안 되는 카디건이 줄어들어 옷이 망가져도, 먹을 반찬이 없어 냉장고가 텅텅 비어도 오로지 그건 엄마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집안일은 엄마의 일만이 아니었는데.


이제 더 이상 어린 존재가 아닌 우리 남매는 자기 몫을 스스로 다한다. 엄마와 함께 사는 오빠는 본인의 빨래 바구니를 따로 마련해 자신의 세탁물은 본인이 빨고, 널고, 갠다. 나는 주말 동안이지만 먹은 건 치우고 닦고, 정리한다. 둘 다 자취를 통해 일 인분의 몫을 해결해본 경험 덕분이다. 어쩌면 한 집에 함께 산다는 건 이런 자질구레한 집안일을 나누고 각자의 몫을 다하는 일이 아닐까? 엄마도 좋아서 집안일을 했던 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