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옷장엔 후줄근한 티셔츠가 전부였다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

by 이긍정

엄마는 출근하는 내 등에 대고 말했다. 청바지 좀 예쁜 걸로다가 하나 사 입어. 이거 새로 산 건데? 하고 답하자 그래? 요즘엔 엄마가 90년대 입었던 게 유행이니? 하고 말했다. 주말이면 본가에서 쉬고 월요일 새벽, 서울로 출근하는 스케줄 덕분에 일주일에 한 번 출근길 엄마의 배웅을 받는다. 엄마는 내 신발도 늘 마음에 안 들어했는데 볼 때마다 털부츠를 사 신으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했다. 그런 거 신지 말구 안에 털 있는 부츠 사 신어. 이거 부츠야. 첼시 부츠! 그러면 엄마는 엄마도 그런 신발 다 신어봐서 아는데 하나도 안 따뜻해. 하고 대꾸한다. 부츠 하나 따듯한 걸로다가 사 신으라는 말이 마을버스 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엄마는 내게 늘 겉 옷은 비싼 걸로다 사 입으라고 말했다. 그래야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거라면서. 볼 때마다 내게 늘 새 옷을 사 입느라고 말하는 엄마의 옷장은 허접하다. 서른둘에 아빠를 보내고 쉰셋이 되는 동안 잘 보일만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는지 엄마는 옷 사는데 돈을 아꼈다. 늘 내가 자라는 동안 입고 버린 옷들로 엄마의 옷장은 가득했고 양말은 늘 동그란 구멍이 뚫려있었다. 가게를 하는 엄마는 여름이면 아무 옷이나 걸쳐 입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동네 옷가게에서 산 티셔츠부터 중학교 때 지마켓에서 산 싸구려 목폴라 그리고 대학 때 구입한 과잠바까지 엄마는 내가 안 입는 옷은 죄다 주워 입었다. 그렇게 엄마는 나잇대와는 별개의 젊은 옷들로 매일매일 갈아입었다.

엄마가 난감할 때는 오빠와 나의 졸업식 때였다. 정장을 입어야 하는데 마땅한 게 없어 한참 동안 고민에 빠졌다. 결국 집어 든 건 어른다워 보이는 90년대 보라색 바바리에 칙칙한 정장이었다. 졸업 사진 속 엄마는 어색한 정장을 입고 환하게 웃었다. 지난 3월 방콕으로 처음 해외여행을 떠날 때는 집에서 패션쇼를 한 번 열었다. 말이 패션 쇼지 여름에 여행을 떠나본 적도, 해외로 여행을 떠나본 적도 없어 난감했던 엄마는 온갖 여름옷을 꺼냈다. 꺼낸 여름옷의 대부분은 가게 일할 때마다 입었던, 땀에 전 후줄근한 티셔츠가 전부였다. 목이 다 늘어나거나 색이 바래 입을만한 옷이 없었고 90년대에 샀던 정장 비스무리한 옷들은 사이즈가 맞지 않았다. 옷을 좋아하는 오빠와 내가 장롱 두 개를 빼곡히 채우는 동안 엄마의 옷장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입을만한 옷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엄마의 옷가지를 바라보며 오빠와 나는 놀러 갈 때 입을만한 옷 좀 사야겠다며 입을 모았다.

최근엔 오빠가 안 입는 겨울 외투들을 버리겠다며 내놓았다. 옷 하나를 사도 색깔별로 다양한 스타일로 사는 걸 좋아하는 오빠는 해마다 옷장을 정리했다. 새 아이템을 들여놓기 위한 공간 정리였다. 엄마와 이모는 그 안에서 너무 크거나 긴 옷을 입어보곤 새 옷이 생겼다며 이 옷 저 옷 입고 벗으며 버린 옷을 챙기기 바빴다.

지난 10월 초, 휴가를 내 엄마와 이모 오빠와 함께 당일치기로 여행을 떠났다. 그날도 말이 여행이지 코스모스 보러 철원에 가자는 내 제안에 농사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가까운 구리 한강 시민 공원을 향했다. 하필 당일치기 여행 당일 비가 추적추적 내렸고, 계획을 수정해 하남 스타 필드로 옮겼다. 나는 엄마랑 이모가 쇼핑이라면 싫어할 줄로만 알았는데 가는 옷가게마다 좋아하는 옷을 하나씩 골랐다. 동창들과 떠나는 여행을 앞두고 아줌마 둘 다 설레 하는 모습이 귀엽게까지 느껴졌다. 오빠와 나는 새로운 아줌마들 모습에 하나씩 옷을 사주기로 했다. 우리는 젊은 우리만 옷 입어보고 고르는 쇼핑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막상 옷을 신나게 고르는 엄마와 이모를 보자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엄마도, 이모도 싫어서 옷을 안산 게 아니었구나. 그 간단한 사실을 나는 오래도록 오해하고 있었구나.

지난 주말부터 엄마는 내게 누누이 부탁했다. 할머니 파카 좀 알아봐 줘. 할머니 옷이 없어서 사줘야 돼. 나는 건성으로 알았다고 대답했다. 엄마는 당신 옷도 없으면서 자꾸 할머니 겨울 옷 걱정을 했다. 나는 엄마 걱정을 하고 엄마는 엄마의 엄마인 할머니를 걱정한다. 그렇게 엄마는 옷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한다. 올해는 일단 할머니를 위한 엄마의 바람을 들어주고, 조만간 엄마를 위해 세련된 코트 하나 장만해주기로 했다. 엄마의 방식으로 엄마를 사랑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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