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먹는 엄마, 반찬으로 가득한 내 가방

엄마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야

by 이긍정

퇴근길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뭐해? 우리? 저녁 먹으려고 라면 끓였어! 또 라면이야?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매일 전화를 걸었다. 딱히 전화할 곳도 없었거니와 하루 일과의 마무리처럼 되어버린 탓이었다. 요즘 들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거 같아 라면 좀 줄이라며 잔소리를 했다.

평일은 자취방에서 보내고 주말이면 남양주로 향했다. 남자 친구와 헤어진 뒤 데이트가 없는 주말이 늘었기 때문이었다. 애처롭게 자취방에서 혼자 밥 먹는 일이 지겨워 자주 본가로 발길을 돌렸다. 주말에 집에 가면 엄마는 아침부터 한상 차림으로 나를 반겼다. 냉장고가 텅텅 빈 날이면 마트로 향했다. 지난번에는 엄마가 같이 마트에 가자기에 옷을 주워 입고 운전대를 잡았다.

마트에 도착한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 나섰다. 새콤달콤한 귤을 스무 개를 담을 때는 하나하나 만져보며 상처는 없는지 노오랗게 물들지 않았는지 살폈다. 내가 고른 엉성한 귤을 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해산물 코너에 가서는 내가 좋아하는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두 손에 12000원으로 후려쳐 버리는 엄마의 능숙함에 혀를 내둘렀다. 생선이면 됐겠지 싶었는데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오징어도 사고, 꼬막까지 담은 후에야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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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 샀나 싶었는데 엄마는 정육 코너에 머물렀다. 엄마는 큰 손을 자랑하며 돼지고기 앞다리를 덩어리째로 세 개인지 네 개를 담았다. 할인하는 소고기 한팩을 담은 뒤에야 엄마의 장보기는 끝을 맞이했다. 나는 엄마의 육지와 바다를 넘나드는 식재료 구입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엄마 오늘 파티해? 하고 묻자 엄마는 파티는? 우리 집 하고 할머니네 먹을 거 같이 장 보는 건데 뭘. 하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이렇게 사온 재료로 엄마는 뚝딱뚝딱 요리를 해냈다. 소고기를 넣고 장조림을 만들어내는가 하면 절여놓은 깻잎에 파와 양념장을 더해 깻잎 반찬을 만들었다. 엄마와 이모가 합심해서 요리를 하는 통에 집안은 습기로 가득 찼고 짭조름한 냄새로 가득했다. 다음날 새벽, 첫차 타고 출근하는 나를 위해 엄마는 밥상을 차렸다. 아침은 먹고 가야 한다며 전날 꼬막을 못 먹고 가서 어쩌냐며 꼬막을 금세 끓는 물에 익혀 그 위에 새초롬히 간장 양념을 부었다. 그날 점심 은 엄마가 싸준 꼬막이었다.

엄마와 전화할 때면 첫 질문은 늘 같았다. "밥 먹었어?" 엄마에겐 밥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딸이 집에 오는데 밥솥에 밥이 없거나 출근하는데 밥을 못 먹고 가는 일이란 날벼락 맞는 일과 흡사한 것 같았다. 또 손은 어찌나 큰지 대파나 반찬이 필요하다고 하면 한주먹씩 싸주어 출근길 내 가방을 무겁게 만들었다. 됐다고 조금만 필요하다고 손사래를 쳐도 나에게 조금과 엄마의 조금은 아주 많이 달랐다. 그렇게 내 가방은 엄마가 싸준 반찬으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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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점심시간, 엄마가 싸준 반찬통을 휴게실에서 열었다. 이번에는 깻잎 반찬과 겉절이, 멸치볶음이었다. 함께 도시락을 먹는 동료들은 "우와"하며 탄성을 내뱉었고 많은 양에 또 한 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거 다 뭐냐는 말에 "아 엄마가 싸준 거예요!" 하니까 다들 입맛을 다시곤 젓가락을 분주히 움직였다. 어제는 저녁에 엄마가 라면을 먹었다고 했다며 이야기를 꺼내자 "보영 씨 반찬은 이만큼이나 싸주시고 어머님은 라면을 드신다고요?"하고 놀려댔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나랑 밥을 먹을 땐 라면의 라자도 꺼내지 않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엄마가 직접 요리하는 걸 보아왔기 때문에 늘 엄마가 요리를 좋아한다고 믿었다. 내가 오면 한상차림으로 차려주고 자취방으로 가져간다고 하면 한 움큼씩 싸주기에 엄마의 챙김을 당연하게 여겼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없는 날이면 간단히 라면으로 때우는 게 좋다는 엄마의 말에 요리가 엄마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엄마가 나를 위해 기꺼이 요리할 수 있었던 건 전부 사랑하기 때문이었는데.

지난 주말에는 엄마가 떡볶이가 먹고 싶다기에 같이 마트에서 재료를 고심해서 골라왔다. 자취방에서 자주 떡볶이를 해 먹었던 요리 솜씨를 발휘해 떡볶이를 만들어 먹었다. 해사한 웃음을 짓던 엄마는 오랜만에 먹으니 너무 맛있다며 그릇을 싹싹 비워냈다. 이렇게 엄마가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먹는 모습을 볼 때면 밥 당번을 자주 자처해야지 싶다. 엄마도 요리가 즐겁기만 한 건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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