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서재 책 리뷰 <깨끗한 존경>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데도 출근은 매일 힘들었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잡지 에디터가 되면 안 그럴 줄 알았는데 힘든 건 매한가지였다. 늘 파김치가 된 채로 버스에 몸을 싣고 동공에서 영혼을 뺀 상태로 회사로 실려갔다. 종일 말없이 컴퓨터만 바라보고 나면 9시간이 흘렀고 입에선 단내가 났다. 퇴근 후 친구 앞에서 회사 가기 싫다고 말을 꺼낼 때마다 그녀는 어른스럽게 조언했다. 우리는 사회초년생이니 직업 훈련을 받고 있는 거라고. 현재는 2학년 째고 3학년에 올라가고 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그녀의 기발한 조언을 들으면 그나마 옴짝달싹 못하던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래 나는 학생이야. 돈 받고 학교 다닌다고 생각하자. 그렇게 친구의 조언에 기대어 하루를 버텨냈다.
2018년 졸업 후 2년 만에 나는 서비스직에서 사무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엄마는 내게 이렇게 조언했다. 하루 견디면 이틀 견딜 수 있고 일주일 버티면 한 달, 그렇게 일 년을 다닐 수 있어. 나는 그 위로가 듣고 싶어서 퇴근길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은 신발 화보 촬영을 했고 새로운 에디터가 들어왔어.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말미에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붙이면 엄마는 좀만 더 참고 다녀보라고. 엄마도 아가씨 때 너처럼 회사 가기 싫어 노래를 불렀다며 위로했다. 옆에서 이모는 회사 가서 돈 버는 게 좋아 매일 야근에 특근까지 마다하지 않았다며 말을 거들었다. 그러면 엄마는 맞장구치며 이모는 늘 연차를 안 쓰고 모아 전부 돈으로 받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엄마와 이모는 나처럼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갔다기보다 그 당시 대부분 사람들이 그랬듯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제지 공장에서 포장하는 일을 했고, 무역 회사에 경리로 취직했는가 하면 연구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녀들은 그 일이 본인의 역량을 잘 반영하는 업무인지 아닌지도 따지지 않은 채 열심히 묵묵히 일했다. 오히려 그녀들은 기꺼이 일했다. 그렇게 일한 돈을 차곡차곡 모았다. 5000원짜리 용우동의 돌솥 비빔밥도 9900원 하는 치즈 크러스트 피자도 피치 못하는 날이 아니면 지갑을 꺼내지 않았다. 엄마는 퇴근 후 배가 고픈날엔 한 손엔 붕어빵을 다른 한 손엔 장을 본 커다란 봉지를 들고 집으로 걸어왔다. 그렇게 그녀들은 악착같이 돈을 모아서 성남에 다가구 주택을 하나 매매할 만큼 돈을 모았다.
팍팍한 도시 살림을 접고 시골에 내려가 둘만의 가게를 열었을 땐 더욱 악착같이 변했다. 한여름에 닭백숙을 먹으려는 손님들이 해일처럼 몰려와도 땀으로 기름으로 온몸이 젖어 쉰내가 몸 구석구석을 덮어도 일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손님들이 먹고 떠난 자리를 자정이 되도록 치우고 새벽 3시가 넘도록 설거지를 하나하나 닦았다. 그렇게 설거지를 꼬박 10년 동안 하고 뒤늦게 식기세척기를 들여놓으면서도 진즉 사지 않은 걸 노여워하지 않았다.
여름 장사를 끝내고 가게가 비수기에 접어들 때면 그녀들은 산으로, 밭으로 향했다. 산에는 돈이 바닥에 깔렸다며 산나물과 버섯, 도토리를 주우러 온 산 골짜기를 굽이굽이 누볐다. 산에도 비수기가 찾아오면 비닐하우스에 가서 농작물을 심고 수확했다. 깨끗이 포장해 농협에 내다 팔았다. 개당 천 원, 이천 원 하는 걸 가벼이 여기지 않고 바지런히 움직였다. 아침부터 비타민을 챙겨 먹고 일을 했고, 소박한 밥상 앞에서도 “맛있다!”를 연발하며 밥그릇을 싹싹 비워냈다. 그녀들과 함께 밥을 먹을 때면 없던 입맛도 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녀들을 보고 배웠으면서도 그녀들 만큼 노력하지 않았다. 연차를 쓰고 멍하니 쉬고 싶었고 돌아오는 출근을 지겹다고 여겼다. 새벽 3시까지 고단한 설거지를 마치고 돌아오는 엄마의 굽은 등을, 저녁 내내 서서 설거지하느라 퉁퉁 부은 이모의 종아리를 봐왔으면서도 나는 그녀들이 쏟은 발톱만큼의 노력도 따라 하지 못했다. 내가 쏟은 노력은 그나마 그녀들이 곁에서 하는 응원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늘 “아이고 힘들어 죽겠다”며 별 거 아닌 일에도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얼마 전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집 <깨끗한 존경>에서 정혜윤 피디가 그런 말을 쉬이 내뱉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정혜윤 피디에게 그녀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연민이냐고 묻자 그녀는 존경하는 마음이라고 답했다. 당신은 이런 경험을 하지 않길 바란다며 자신의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에게 깊은 존경심을 느낀다고. 그녀가 느꼈다는 존경하는 마음을 나는 엄마와 이모의 삶에서 희미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일하느라 순식간에 사십 대를 건너버렸다고 이야기하는 이모와 엄마와 지난 주말 뒷산으로 산책을 나섰다. 돌아가신 그녀들의 아버지 이야기가 나왔다. 할아버지는 그녀들 몫의 재산을 땅으로 물려주었고 그녀들은 그 위에서 농사를 짓고, 가게를 열었다. 이모가 문득 말했다. "우리한테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나중에 우리가 다 죽고 나서 너희가 '아이고 엄마랑 이모 덕분에 이렇게 편하게 지낼 수 있구나' 했으면 좋겠네." 나는 그녀들의 존재가 너무나 방대해서 그녀들이 사라진 어느 날을 상상해보곤 눈 앞이 멍울졌다. "엄마와 이모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어"라고 답하며 나는 몰래 울음을 삼켰다. 나는 그녀들이 오래도록 건강해서 오래도록 나와 함께 산책길에 나서길 마음속으로 빌었다. 내가 힘들어 죽겠다고 할 때마다 곁에서 “진짜 그렇게 힘들어?”하고 온몸으로 되물어줄 그녀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