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적인 디자인을 객관화 하기
어쩌다 보니 회사에서 웹개발과 더불어 웹디자인까지 하게되었다. 회사가 바쁘면 다른 디자인업무도 도와줄때도 있었다. 물론 디자인에는 소질이 없다. 디자이너분들보다 더 오랜 업무시간이 필요했고, 내 눈에는 좋아보였던 디자인을 내놓았는데 촌스럽다는 말을 듣는 일은 다분했다. 그럴때마다 '내가 왜 디자인을 해야하지? 개발자로 들어왔는데' 생각하며, 못한다는 것에 대해 제대로 인정하기보다 체면치례하기 위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무엇이 좋은 디자인인지 몰랐다. 좋은 디자인이 무엇인지 모르니 디자인 방향성에 대한 부채가 쌓인채 디자인을 뽑아내야 했다. 그래서 디자인 업무는 더욱 지옥이었다.
과연 좋은 디자인은 무엇일까? 어느날 <파타고니아> 책을 읽고 디자인에는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글은 디자인에 대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서브 디자이너로 5년 동안 일한 사람이 쓴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지 고찰해본 글이다. 당연히 전문적인 식견은 없다. 그래서 전문가가 만들어낸 사례를 가지고 설명해보려고 한다
큐드럼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헨드릭스 형제의 아이디어로 개발했다.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식수를 구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무거운 물통을 머리에 이고 먼 거리를 걸어야 했다. 먹을 것도 부족한데 섭취한 음식의 에너지를 이동하는데 써야 했다. 물을 머리에 이고 걸으니 이동 중에 떨어져 소실되는 물도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한참 공부하고 놀아야 할 아이들의 시간이 물을 가져오는 데 사용되는 것이다.
이를 본 건축가였던 헨드릭스 형제는 굴리는 물통인 큐드럼(Q-drum)을 개발한다
가운데가 도넛처럼 뚫려 그 사이에 끈을 넣고 굴릴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굴리는 디자인이라 힘이 약한 아이라도 더 많은 양의 물을(50L) 운반할 수 있었다. 머리에 이고 올 때처럼 땅에 떨어지는 문제 또한 사라졌다.
큐드럼 내부는 정수 필터가 있어 굴리는 동안 물이 저절로 정수되는 시스템까지 갖추었다.
아이들은 큐드럼을 통해 목디스크로 고생하는 일도 줄어들었고 학교에 갈 수 있는 시간도 생겼다. 큐드럼은 하나의 디자인이 아이들의 삶을 개선하는 유명한 사례다.
웹 관련 일을 하다 보면 '웹 접근성' 작업을 할 때가 있다. 웹 접근성이란 장애인 비장애인 떠나 누구나 웹사이트에 노출된 정보를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지켜 주고,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웹사이트를 웹 접근성이 좋은 사이트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작업은 대부분 코딩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나 이미지 작업 또한 필요하다.
흔히 건물 위치나 단지 구성도 관련 이미지에서 색상을 기준으로 나누지만 색맹이나 색약을 가진 이들은 색 구분이 어려울 수 있다. 이들을 위해 서로 다른 패턴을 사용하여 구분도를 올리면 그들 또한 이미지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대구메디온 사이트에서 입주기업을 소개한 이미지다. 색 구분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이 이미지는 난해할 수 있다. 여기에 패턴을 입힌다면 아래와 같이 디자인된다
구분을 위한 색 사용은 채도 차이를 두고 패턴을 활용하면 바람직한 디자인이 된다
네이버 접근성 가이드(https://accessibility.naver.com/accessibility)는 접근성을 고려한 가이드 디자인을 보여준다. 그중 몇 가지만 예시로 보여주고 자세한 내용은 위 주소를 참고하면
(1) 색상 구분만이 아니라 색상이 의미하는 정보 노출
(2) 콘텐츠를 구분할 때는 색각이상자를 배려하여 색상뿐만 아니라 [구분선, 테두리, 밑줄, 볼드 처리]를 활용한다
네덜란드 VanMoof사는 자사의 전기 자전거를 배송하는데 25%에 육박하는 파손율을 보였다. 전기 자전거 특성상 일반 자전거보다 조심하게 배송이 다루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배송하고 있는 자전거가 일반 자전거인지 전기 자전거인지 배송직원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VanMoof 사는 고민 끝에 하나의 아이디어를 낸다. 포장지에 TV에 담긴 자전거를 넣어 파손율을 줄이는 방법이었다.
TV와 같은 배송품은 깨지기 쉬운 이미지를 가져 배송직원이 일반 배송보다 더 조심히 배송한다는 사실을 활용한 것이다. 덕분에 배달 중 파손사고량이 크게 감소했다고 한다. 사람의 심리를 이용한 패키지 디자인 사례 중 하나다
'퍼블릭 캡슐'은 기술적인 요소를 보았을 때 곡물에서 추출한 바이오 플라스틱을 활용하여 환경과 인체에 무해하도록 만들어진 제품이다. 디자인 특징은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물병의 입구가 다른 물병과 다르게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디자인된 이유는 물을 마실 때 높게 들 필요 없이 마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한마디로 사용자 편의를 위해 디자인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물병의 본체와 뚜껑의 색깔이 다르니 색을 구분하기 어려운 색약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친화적이다.
퍼블릭 캡슐의 디자인 요소 두 번째는 알약을 모티브로 하였다는 점이다. 말라리아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해 제품이 한 개 팔리시 1일 치 말라리아 치료약을 제공된다고 한다. 퍼블릭 캡슐을 사용할 때 사용자가 말라리아 치료 후원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효과다. 이러한 디자인적 요소는 사용자 편의보다 제품의 스토리에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키보드를 자세히 보면 F와 J에 자판 하단에 작은 돌기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돌기는 키보드를 보지 않고 각 양손의 검기를 배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디자인되었다. F와 J에 검지를 두면 타이핑을 하기 위해 기본자세를 갖출 수 있다.
당신이 만약 바나나를 구입하는데 꺼리는 요소가 있다는 무엇이 있을까? 바나나는 보통 한 개씩 안 팔고 한송이로 판다. 요즘 같은 1인 가구에 그런 바나나는 부담스럽다. 왜냐하면 다 먹지도 못하는데 오래 두면 맛과 색이 변화기 때문이다. 이러한 바나나의 단점을 활용한 포장 디자인이 나왔다. 바로 이마트에서 파는 '하루 한 개 바나나'
한국의 이진표 바이어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이 패키지는 누구라도 쉽게 바나나 먹는 순서를 이해할 수 있다. 바나나의 시간을 고려하여 왼쪽부터 하루 하나씩 먹는다면 가장 오른쪽 바나나를 먹을 때쯤에는 초록색 바나나가 노랑빛이 되어 있을 것이다. 바나나의 시간과 사람의 시간이 부둥켜 앉는 디자인라고 할 수 있다. 이 디자인은 타임지가 극찬하기도 했다.
알약과 이모지를 합친 피모지다. 당시 산업디자인과 4학년이었던 최종훈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최종훈 디자이너는 노인분들이 교육의 기회가 없었던 분들이 있었을텐데 이런 장기 모양이 직관적으로 잘 와닿을 수 있을까? 라는 고민으로 시작되었다. 어느 알약이 어디에 영향을 주는지에 맞게 장기 모양을 이용하여 디자인된 알약이다. 너무 밝고 예쁜 색상을 사용하다가 자칫 아이들이 사탕인 줄 알고 먹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고민과 목넘김을 위해 둥근 모양을 갖추면 좋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통해 피모지가 탄생되었다. 하지만 약의 양을 배분하거나 포장지에 대한 문제가 아직 존재한다
앞에서 디자인 사례를 보았다. 앞의 디자인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디자인에 근거가 있어서다. 모두가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다.
아마추어 디자이너들은 어떤 디자인이 좋다고 하는 이유에 "그냥 예뻐서", "이게 멋져 보여서"식의 주관적인 '성향'을 말한다. 이유가 없다.
만약 당신이 디자인으로 돈을 벌고 있다면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클라이언트는 당신을 신뢰할 수 없고 당신의 디자인을 설득할 수가 없다. '이렇게 디자인하는 것이 예뻐서 디자인했다'. 주관적인 생각은 설득의 도구가 되기 어렵다. 클라이언트가 '난 안예쁜데요...'라고 말한다면 명분이 없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디자인은 폐기 처분할 수밖에 없다. 클라이언트가 안 예쁘다고 하면 디자이너 눈에만 이쁜 것이다. 그리고 드는 생각은 '그러면 니가 디자인하지' 뿐이다
프로는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영역을 객관화할 줄 알아야 한다. 펀드매니저에게 당신의 돈을 맡긴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펀드매니저가 내 돈을 가지고 투자를 감으로 한다고 하면 어떨 것 같은가? 절대 그 펀드매니저에게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능력 있는 펀드매니저는 자신의 감을 객관적인 논리로 만든다. 투자를 언어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디자인 또한 마찬가지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디자이너라면 자신의 디자인을 언어화하여 디자인의 근거를 남겨야 한다. 이러한 근거가 하나둘씩 쌓일수록 디자인은 명료해진다. 사람을 배려하기 위한 목적이 좋은 디자인의 첫 걸음이고, 목적에 맞는 근거를 언어화할 수 있는 디자인이 그 다음 걸음이다.
좋은 디자인 철학은 좋은 디자인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증명한 거장들이 있다. 그들은 어떤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인지 자기만의 정의를 세워났기 때문에 좋은 디자인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앞에서는 나같은 쪼렙 서브디자이너가 무엇도 모르고 지껄인 이야기였다면. 이 뒤에 이어질 글은 거장의 디자인 철학으로 마무리 하겠다.
파타고니아의 유명한 카피다. 이 카피는 환경생태계와 낭비소비를 막기 위한 카피다. 자주 사입는 옷이 아닌 튼튼하고 오래 입을 수 있어서 버려지는 옷을 최소화 하기를 바라는 슬로우 패션 철학을 담았다. "깊게 생각하고 적게 소비하세요"
파타고니아의 제품은 친환경제품으로 유명하다. 창업자 이본쉬나드의 목적이 사업이 아니라 지구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낸 책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때는 서핑을>은 그의 경영철학과 디자인 철학을 잘 보여준다. 이 책에서 언급된 디자인 철학은 아래와 같다
필요한 기능을 갖추었는가?
다기능적인가?
내구성이 있는가?
수선이 가능한가?
고객에게 잘 맞는가?
단순한 디자인인가?
제품 라인이 단순한가?
혁신인가 발명인가?
글로벌한 디자인인가?
관리와 세탁이 쉬운가?
부가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진짜인가?
아름다운가?
패션을 쫓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핵심 고객을 위해 디자인하고 있는가?
해악을 끼치고 있지는 않은가?
유기농 목화인가?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는 원료 생산은 가능한가?
독성이 적은 염료를 사용하고 있는가?
파타고니아가 생각하는 좋은 디자인을 위한 질문인데, 어느 하나도 빼기 어려울 정도로 정직한 디자인 요소다. 정직하다는 것은 양심을 저버릴 필요가 없다는 뜻이며, 정직한 디자인은 옳은 디자인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영역이다.
독일 출신의 디자이너로 조나단 아이브(애플의 디자이너였던)가 영감을 받은 디자이너로 유명하다. 그의 다큐영상을 보면 40여년 동안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좋은 디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치열한 고민을 알 수 있다. 그가 말한 좋은 디자인은 무엇일까?
좋은 디자인을 위한 10 원칙
(1) 좋은 디자인은 혁신적이다.
디자인은 항상 기술과 함께 한다. 기술이 동일한 수준에 있지 않으면 좋은 디자인은 될 수 없다
(2) 좋은 디자인은 제품을 유용하게 한다.
좋은 디자인은 반대하는 모든 요소를 무시하고 유용성을 극대화한다
(3) 좋은 디자인은 심미적이다.
매일 사용하는 물건은 개인 환경과 생활에 큰 영향을 준다. 잘 만들어 진 것만이 아름다울 수 있다.
(4) 좋은 디자인은 제품을 이해 가능하게 한다
제품이 스스로 어떤 제품인지 말할 수 있게 한다. 디자인 그 자체로 설명되어야 한다
(5) 좋은 디자인은 과시하며 드러내지 않는다.
목적은 명확한 제품에는 도구의 특성이 드러난다
제품의 디자인은 중립적이어야 하며 사용자가 알아서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6) 좋은 디자인은 정직하다
정직이란 제품을 실제보다 혁신적이고 강력하며 더 가치 있게 보이도록 하지 않는 것은 의미한다
(7) 좋은 디자인은 오래 지속된다
유행을 떠나 버려지는 것이 흔한 현댜사회에서도 오래 지속된다
(8) 좋은 디자인은 마지막 디테일까지 철저하다
임의적이거나 우연이 아니어야한다. 철저함과 신중함은 곧 사용자를 존중하는 곳이다
(9) 좋은 디자인은 환경친화적이다.
디자인은 환경보호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 자원을 보존하고, 물리적이고 시각적인 오염을 최소화한다
(10) 좋은 디자인은 최소한의 디자인이다.
단순함으로 돌아가라. Less, but better
팅커 햇필드는 나이키와 계약을 끝마치고 싶었던 마이클 조던의 마음을 돌려 에어조던3을 디자인한 디자이너다. 아디다스 관계자와 골프치고 일부러 미팅에 늦게 온 마이클 조던에게 먼저 신발에 대한 스토리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신발을 공개했고 신발과 조던이 어울리는 다양한 옷을 보여주며 조던을 설득했다. 도착하자마자 신발부터 보자고 했던 조던이었지만 좋은 디자인에는 스토리가 담긴다는 생각을 가진 팅커였기에 가능한 설득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마이클 조던은 아디다스가 아닌 나이키와 계약하게 된다
그는 디자인에는 예술이 개입되지만, 디자인은 예술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의 시선은 궁극적으로 개인의 창의력을 발휘한 자기표현을 예술이라고 하지만 디자인은 자기표현이 목표여서는 안 되었다. 디자이너의 최종 목표, 그러니까 좋은 디자인은 타인의 문제를 해결하고, 잘 어울리고, 멋져 보여야 한다.
참고자료
https://www.huffington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79536
https://product.29cm.co.kr/catalog/1259211
https://www.insider.com/bananas-sold-in-ripeness-variety-problem-solved-2018-8
https://accessibility.naver.com/accessibility
https://reviewheeya.tistory.com/45
디자인 성공사례, 디자인, UX디자인, 기발한 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