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직장인의 중요한 덕목입니다. 보고서, 메일, 매뉴얼, 회의록과 같이 글을 쓰는 일이 넘쳐나는 곳이 회사입니다. 전업작가가 아니지만 그들보다 더 많이 읽고 쓰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개발과 디자인으로 먹고사는 저 또한 글을 쓰고 읽습니다. 글쓰기는 직장인이라면 직군과 관계가 없이 필수교양이라 할 수 있어요.
글쓰기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메일 쓰기입니다. 정확하지만 조금은 부드럽고, 우리말스러운 메일 쓰기에 대해서요.
보통 어떤 마음으로 메일 쓰나요? 내용을 오해하지 않도록 잘 전달해야겠다는 마음? 책임 소제를 정확히 하고 싶은 마음? 공손하게 부탁하는 마음? 여러 상황이 있듯이 쓰는 마음 또한 제각기 다릅니다. 어떤 마음으로 쓰느냐가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메일을 읽는 사람은 메일을 쓰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메일에 쉽게 드러나요. '이 사람이 엄청 신경 써서 내용을 전달했구나', '자기 잘못이 없으니 책임을 우리에게 떠넘기려고 하는구나' 를 쉽게 느끼지 않나요?
가장 흔하면서 심각한 직장인의 메일 쓰는 마음은 '있어 보이기 위해 쓰는 마음'입니다. 평소 쓰지 않는 말을 사용하여 자신이 부족해 보이지 않을까 봐 걱정하는 마음. 그런 말을 사용함으로 내가 격식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픈 마음.
그러나 이러한 마음은 타인을 불편하게 만들때가 많습니다. 나의 유식함을 드러내기 위해 괜히 글을 어렵게 만드니까요.
'있어 보이기 위해' 또는 '적어도 안 무식해 보이기 위해' 써진 메일은 단어사용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금일', '유선으로', '유첨파일 확인', '취합', '송부'가 있습니다. 이 말들은 그리 어렵지는 않지만, 일상에서도 쓰지 않기 때문에 격식을 차린 느낌을 줍니다. 격식을 차리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말이죠. 금일 대신 오늘을 쓴다고 격식이 없는 것이 아니니까요.
1. 금일
금일, 작일, 명일과 같은 경우는 아예 없어져도 상관없는 말입니다. 평소 우리는 오늘. 어제, 내일을 더 자연스럽게 사용해요. 메일만 작성하면 꼭 이런 표현을 쓰게 됩니다.
명일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누구도 일상 대화에서 '명일'을 안 써요. 이런 표현으로 글을 딱딱하게 만들 필요 없어요. 그러니 '명일'이 아니라 '내일'을 쓰도록 권장합니다.
'하도록 하겠습니다'는 '한다'는 뜻이 두 번 들어간 문장입니다. 일본식 말투로 문장을 길게 만들어 요점과 주체를 흐리게 만듭니다.
[바꾼 문장]
내일 방문하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훨씬 읽기 쉬워졌습니다
2. 송부
금일 회의한 내용 송부드립니다
메일에서 '송부드립니다.'를 자주 봅니다. 송부에는 '보낸다'라는 의미가 이미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드립니다'를 붙여서 문장을 어색하게 만들어요. 그러니 '송부드립니다'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송부는 문장이 끝맺음에 사용되는게 좋아요. '6월 23일 회의록 송부' 이렇게요. 송부 대신 '보낸다'를 사용하면 좋으나, 한자를 모두 덜어낼 수는 없습니다. 어느 것은 오히려 한자가 나을 때도 있고 이 경우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저는 오히려 좋다고 봅니다
하지만 '송부'가 메일 본문에 쓰이는 것은 다릅니다. 저절로 공손모드가 되다 보니 '송부'라는 단어 뒤에 꼭 '드립니다'를 붙이게 됩니다. 그러게 쓰여진 '송부드립니다' 보낸다라는 뜻이 두번이나 들어간 말이 되어 문장이 길어집니다
[바꾼 문장]
오늘 회의한 내용 보냅니다
훨씬 깔끔한 문장이 됩니다.
3. 취합
'취합'은 '모으다'로 대신하면 좋습니다. 사실 '취합'자체는 없어도 영향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문맥에 맞게 그냥 빼버리는 것도 좋아요
웹진 제작과 관련된 파일을 취합하여 송부드립니다
[바꾼 문장]
- 웹진 제작과 관련된 파일을 모아서 보냅니다(취합->모아서)
- 웹진 제작과 관련된 파일을 정리하여 보냅니다(취합->정리하여)
- 웹진 제작과 관련된 파일을 묶어 보냅니다(취합->묶어)
- 웹진 제작과 관련된 파일을 보냅니다.(취합->x)
한자어를 평소 사용하는 말로 사용해보세요. 더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글이 더 섬세해져서 글맛이 있습니다.
물론 취합을 전혀 쓰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파일을 묶은 알집파일의 이름을 '2023년 콘텐츠 취합본'으로 지으면 오히려 한글을 사용할 때보다 쉽게 정리할 수 있어요.
4. 유첨
유첨파일을 확인해 주세요
표준국어대사전에 없는 단어입니다. 어떻게 유래되었는지 알기 위해 두루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어요. 확실한 것은 표준어는 아니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업무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으니 아주 잘못된 상황입니다.
'유첨'은 평소 사용하지도 않는 단어로 괜히 검색하게 만듭니다. 전달력을 약하게 만드는 단어라는 뜻이죠. 소통을 흐리게 하여 우리말과 글을 병들도록 합니다
- 붙임파일을 확인해 주세요.
- 함께 보낸 파일을 확인해 주세요.
붙임을 사용한 이유는 국어국립원에서 단어의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유첨'을 '붙임'으로 순화하여 사용을 권해서 입니다.
이런 표현은 선배가 사용하면 신입이 보고 그대로 사용합니다. '회사에서는 이런 단어를 써야 하는구나!'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이런 단어는 지적하는 사람이 없으면 빠르게 퍼지게 됩니다. 있어 보이는 단어니까요.
메일은 상대가 쉽게 이해하게 써야 합니다. 그러면 잘 쓰는 것입니다. 전문적인 용어가 필요하면 써도 됩니다. 모든 말을 쉽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필요할 때 쓰는 것과 있어 보이도록 쓰는 것은 명백히 다릅니다. 어떤 글이든 글의 겉보기가 훌륭한 것보다 그 내용이 훌륭한 것이 좋고, 그 내용의 훌륭하려면 쓰는 마음이 정직해야 됩니다.
초등학생이 봐도 알 수 있도록! 이것을 습관화합시다.... 겉보기의 훌륭함과 내용 전달의 훌륭함은 별개의 것입니다
<일의 기본, 생활의 기본 100> 중에서
메일을 한 번 더 읽고 정리하는 습관
글 줄이기 연습은 글쓰기 실력을 올릴 수 있습니다. 회사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미생'을 보면, 장백기 사원(강하늘)은 상사에게 글 줄이는 미션을 받습니다. 그 장면을 본 김동식 대리(김대명)는 '저걸 한번 하고 나면 한눈에 보기 좋은 좋은 보고서가 나오기는 해'라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글을 줄이는 연습을 하면 글을 잘 쓴다는 것이죠.
제 경험을 미루어볼 때 확실히 맞습니다. 글을 줄이기 위해서는 필요한 내용이 무엇이고, 불필요한 내용인지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글의 논리를 생각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글을 잘 쓰려면 글 줄이는 연습을 조건 없이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글을 줄이는 과정을 실제 저의 메일함을 가져와 보여드리겠습니다. (중요한 정보가 노출될 수 있는 내용은 수정하였습니다)
2월 22일(수)에 진행한 회의 내용 토대로 회의록 작성 송부드립니다.
'진행한', '진행했던', '진행할'은 문장을 길게 만듭니다. '진행'과 '하다'가 중복되니까요.
[1차 바꿈]
2월 22일(수)에 했던 회의 내용 토대로 회의록 작성 송부드립니다.
'진행'과 같은 한자어는 보통 문장을 끝맺음 할 때 어울립니다. 예를 들면 "금요일 회의 진행." 이렇게 간결한 문장을 만들때요. 파일명, 안내문, 메일명 과 같은 곳에 좋아요. 하지만 "금요일에 회의 진행을 할 예정입니다." 와 같이 글이 늘어나면 쓸모가 없습니다. 빼는게 좋아요 "금요일에 회의를 할 예정입니다." 처럼요.
앞의 문장을 다시 보니 '했던'도 필요 없을 것 같네요
[2차 바꿈]
2월 22일(수) 회의 내용 토대로 회의록 작성 송부드립니다.
한결 좋아졌습니다. 조금만 더 고쳐볼게요. 우리는 회의 내용 토대로 작성한 것을 '회의록'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대부분 이 뜻을 압니다. 그러니 '회의 내용 토대로 회의록 작성' 은 이상한 말이 됩니다. 회의록에 대한 뜻을 설명하니까요. 회의록에 대한 뜻을 전달하는 메일이 아니기에 '회의 내용 토대로'와 '회의록' 둘 중 하나는 빼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회의록을 빼겠습니다.
2월 22일(수) 회의를 정리해서 작성 송부드립니다.
'회의록 작성 송부'도 말에 순서가 이상합니다. 작성은 굳이 없어도 되는 말이니 뺍니다, 그리고 '송부'는 '보냅니다'로 바꿀게요.
2월 22일(수) 회의를 정리해서 보냅니다
치렁치렁했던 문장이 깔끔해졌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줄여나가다 보면 메일 전체가 줄어듭니다. 당연히 읽는 사람은 군더더기 없는 내용을 보고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다음은 홈페이지 메뉴가 바뀐 이유를 설명하는 메일을 가져왔습니다
희망 -> 희망 알림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공익 법인 재단 소개와 청년들에게 도움 되는 정책 또는 재단 사업을 소개함으로 대상들에게 희망을 알린다라는 뜻으로 대 카테고리명 변경.
이 글이 잘 읽히나요? 읽기 어려운 글을 쓰는데 가장 큰 역할은 같은 의미를 지닌 단어 반복입니다. '알린다'와 '소개'는 같은 뜻이니 하나만 사용하도록 문장을 바꿉니다. '학생들', '청년들', '대상들'은 여기서는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 하나만 사용하겠습니다.
희망 -> 희망알림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공익 법인 재단의 정책과 사업을 소개하기 위해, '희망을 알린다'라는 의미를 표현
'희망을 알린다'를 강조하기 위해서 '도움이 되는'을 '희망이 되는'으로 고치면 문장의 앞과 뒤가 더 잘 연결이 되겠군요.
희망 -> 희망알림
학생들에게 희망이 되는 공익 법인 재단의 정책과 사업을 소개하기 위해, '희망을 알린다'라는 의미를 표현
정책과 사업은 묶을 수 있고, 뒤에 이어질 '소개하기 위해'는 하기를 빼면 더 자연스러운 문장이 될 것 같습니다.
희망 -> 희망알림
학생들에게 희망이 되는 공익 법인 재단의 정책사업 소개를 위해, '희망을 알린다'라는 의미를 표현
머리에서 정확하게 정리되지 않으면 이렇게 같은 뜻을 가진 단어를 나열하게 됩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읽기 어려워도 일단 쓰고 나서 정리하면 되니까요
이처럼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가장 먼저 글을 줄이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무엇이완벽한 문장인지는 잘 모르지만, 글 줄이기를 통해 이전 보다 나은 문장을 만들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있어보이는 단어보는 잘 읽어지는 단어를 사용하는게 좋겠죠. 뜻을 확실히 전달하면서 읽기 쉬운 글이 좋은 글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