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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라르 Aug 08. 2022

<데미안> 해석하기


* 데이안 발췌문의 쪽수와 워딩은 위즈덤 하우스에서 출간한 책을 기준으로 했다. (위 사진의 책)

* 개인적 해석임 = 이 해석은 어떠한 권위도 없음

* 데미안을 읽고 '뭔 개소리지?'라고 느낀 사람들을 생각하며 씀



1장. 두 세계

 두 세계는 '선'만 있는 세계'악'만이 있는 세계, 즉 양 극단의 세계를 말한다. 이 둘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 열 살의 싱클레어의 시각이다.


 이런 시각은 어린아이가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틀이다. 보통 '이것은 나쁜거야~', '이렇게 해야해' 라고 어른들에게 배운다. 그래서 아이의 가치판단은 나쁜 것과 좋은 것 둘 뿐이다.


 그러나 선과 악과 같이 이분법적인 사고는 복잡미묘한 세상을 이해할 수 있게 해석하기 어렵다. 선과 악이 정확하게 딱딱 구분되어 있다? 그런 곳은 잘 없다


 이분법적인 싱클레어의 시각은 허점이 많아 아슬아슬하다. 열 살의 싱클레어는 이분법적 사고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려고 하지만 이해되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가장 기이한 것은 이 두 세계의 경계가 맞닿아 있고 너무나 가까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데미안 15P


선 과 악, 분명 전혀 다른 것인데 현실에서는 너무나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 싱클레어에게는 아주 기이한 것이었다.


2장. 카인과 아벨

 

이번 장에는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서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찾아보았다.


 카인은 형, 아벨은 동생이다. 이들은 하느님께 각자 제물을 바쳤다. 하느님은 아벨 것만 반겼다. 이에 화가 난 카인은 아벨을 죽인다. 이 사건은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이라고 불리는데, 이 사건의 계기로 카인은 죄책감을 느끼고 후회한다. 하느님은 카인을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이지 못하도록 이마에 표식을 찍어준다.


 이 이야기는 싱클레어 뿐만아니라 많은 사람이 아는 이야기다. 카인은 죄인이며 나쁜 사람이었고, 아벨은 나쁜사람에게 당한 희생자였다


 하지만 데미안은 생각해보지 못한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사실 카인은 비범한 존재라는 것! 강력하고 재능 있는 존재라는 것. 그런 경외감에 열등감이나 무서움을 느낀 다른이들이 자신의 열등감을 정당화하도록 카인이 ‘표’가 있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다른 책 번역을 보니 '표'가 아닌 '표식'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우리가 배우는 대부분의 것들은 분명 진실이고 옳지만 선생님의 설명과 다르게 볼 수도 있어. 그러면 대개 훨씬 나은 의미를 갖게 되지

데미안 52P


  비슷한 예로 흥부와 놀부를 생각해보자.


 흥부는 능력 없고 게으르지만 놀부는 열심히 살아서 자수성가 한것이 아닌가? 둘은 형제이니 금수저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흥부가 착하고 놀부가 나쁘다고 생각하도록 배운다. 누군가 잘 살고 능력이 있고 돈이 많은 것을 자기 탓이 아니라고 합리화해야 살만한 세상이 된다. 나의 부족함을 걸고 넘어지는 것은 어렵고 남을 탓하는 것은 쉽고도 즐거운 일이다.

크로머는 어른들의 시각에서 별거 없다. 하지만 ‘일진’이라는 이름에 싱클레어는 두려워하고 있다.


그 누구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야. 누군가를 두려워하는 것은 그 누군가에게 자신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내주었기 때문이야

데미안 67P

 

 스스로 생각해야한다. 그러면 일진이라는 표식에 두려워할 필요 없을 수 있다. 아니면 이 점을 이용해 자신에게 유리한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데미안이 크로머 사건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소설 속에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상상해볼 수 있다. 크로머가 싱클레어에게 했던 것처럼 데미안 또한 크로머의 더 큰 잘못을 잡아 협박하여 '다시는 이러지 마'라고 말하면 이 사건을 해결했을 수도 있다.


 이 장은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통해 비판적 사고를 배우는 장면이 있다. 어떠한 사실에 대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정말 그 말이 맞는지 의심을 해보고 조금 더 설득력 있는 해석이 있지 않을지 상상해보는 것.

 이러한 생각은 굉장히 불편하다. 이제껏 가진 생각을 부정하는 것은 나를 부정하고 세상을 부정하는 느낌을 준다. 아직 어린  싱클레어는 자신에게 무릎으로 짓누른 사람은 크로머가 아니라 데미안이라고 말할 정도로 데미안의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불편했다.


 싱클레어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해야했고 그것은 아주 불편한 일이고, 인정하는 순간 하나의 세계를 부서야했다.



3장.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


하지만 내 관심을 사로잡는 것은 내 삶에서 나 자신에게 이르기 위해 내디딘 발걸음들뿐이다.

데미안 83P


 싱클레어는 안락한 휴식처와 행복의 섬과 낙원의 매력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그곳에서 열망을 품지 않았다. 데미안의 영향으로 자신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싱클레어, 싱클레어는 집의 편안함과 부모아래에서의 보호를 열망하지 않는다. 그곳을 벗어난 곳에 열망을 품게 되었다. 이제 행복보다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



하느님은 선하고 고귀하고 아버지 같이 아름답고 높고 다감한 존재라는 것은 아주 옳은 말이야! 하지만 세상에는 또 다른 것들이 존재해. 그런 것은 모조리 악마의 것으로 취급해 버리지. 세상의 이러한 부분, 즉 세상의 절반이 은폐되고 묵살되어 버리는 거야. 하느님이 모든 생명의 아버지라고 찬양하면서도 생명의 근원이 되는 성생활은 그냥 묵살해 버리고 걸핏하면 악마적인 것이라거나 죄악이라고 치부하고 잇어!.... 아니면 악마까지도 내재된 하느님, 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 앞에서 눈을 질끈 감아 버리지 않아도 되는 그런 신을 창조해야만 한다고 생각해

데미안 105P


 아마 여기서 데미안이 말한 신은 뒤에서 언급될 아브락사스일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며 자기 자신의 재판관이 되지 못하는 안일한 사람은 그냥 기존의 금지된 것에 순응하고 말지.

데미안 108P


그리고 계속해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스스로 생각해야한다고 말한다.



4장. 베아트리체

 

 자기 파괴적으로 흥청망청 생활했을 정도로 싱클레어는 완전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밤늦게 돌아 다니고 술도 퍼마셨다.


개꿀잼이었다. 악한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너무나 달콤했다.


 그러던 싱클레어는 어느 한 여성을 우연히 보았다. 그녀와 어떠한 대화도 나누지 않았지만 사랑에 빠졌다. 싱클레어는 그녀를 베아트리체라고 불렀다.

 사랑하는 대상이 생긴 소년은 밤거리와 술을 멀리하며 밝은 세계를 구축하려 노력했다. 여기서 밝은 세계는 1장에서 언급된 어머니와 아버지에서 쉽게 받은 것이 아닌, 어느 정도 자신이 구축한 세계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밝은 세계가 1장의 밝은 세계라고 하면, 여기서의 밝은 세계는 스스로 만들어내고 원하는 직무와 함께 책임감과 자기절제가 따른 세계라는 점이다.

 싱클레어는 베아트리체를 사랑과 더불어 숭배의 대상이었다. 그런 대상은 싱클레어에게 이미 존재했다. 바로 데미안이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싱클레어는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였다.

 싱클레어는 사랑하는 대상인 베아트리체를 그렸다가 그림 앞에 앉아 있자니 기이한 인상을 받았다. 절반은 남자, 절반은 여자, 절반은 남자였고 의지가 굳세면서도 몽상적이며 굳어 있으면서도 남모르게 생명력 있어 보였다. 그리고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누군가와 비슷했다. 바로 데미안이었다.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로망이었던 것이다.


5장. 새는 힘겹게 알을 깨고 나온다


새는 힙겹게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데미안 156P


 책 사이에 있던 쪽지에 이해하지 못할 말이 쓰여 있다. 싱클레어는 무슨 말인지 생각했다. 알은 세계다? 아브락사스?. 그리고 그날 수업에서 선생님을 통해 아브락사스라는 신이 어떤 신인지 알게 되었다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하는 상징성을 지닌 신성을 가리키는 이름"


싱클레어는 생각이 깊어졌다.


 싱클레어는 길을 걷다 어느 한 건물에서 오르간 연주소리를 들려왔다. 저 곳을 연주하는 사람은 그 음악 속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고 마치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그 보물을 얻으려고 애쓰며 두드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연주하는 곳으로 이끌려 갔다.

 연주자의 이름은 피스토리우스. 그 와의 대화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대화였다. 또 다른 조언자 피스토리우스는 싱클레어와의 대화에서 '아브락사스'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아브락사스, 선과 악이 함께 공존하는 신인 것이다.

선이었다가 악이었다가 하는 것. 나는 아브락사스를 보고 이 두 세계를 왔다가며 성장한 싱클레어가 오버랩 되었다.


우리의 영혼에도 지금까지 인간의 영혼이 지니고 있던 모든 것이 들어 있어요. 지금껏 존재했던 모든 신과 악마들, 그것들이 설령 그리스인들의 것이건, 중국인들의 것이건 아니면 줄루족이나 카피르족의 것이건 간에 모두 가능성으로서, 소망으로서, 탈출구로서 전부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는 거죠. 만약 모든 인류가 멸망하고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중간 정도의 재능을 가진 단 한 아이만 살아남게 되더라도, 그 아이는 사물의 모든 과정을 다시 발견하게 될 겁니다.

데미안 180P



 우리 안에는 선과 악 모두 공존하고 있다. 어쩔 때는 선이었다가 악이 되기도 한다. 데미안이 이야기 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며 피스토리우스는 그것을 넘어 다양한 모든 것들이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다 설명한다


 모든 것은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뛰어난 사람이 아닌 어느 한 아이가 세상에 홀로 남더라도 사물의 모든 과정을 다시 발견 할 수 있다. 언제든 알이라는 세계를 깨고 날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는 그런 존재다.


당신을 날게 만든 그 힘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우리 인간들의 크나큰 특전이죠

데미안 182P

 우리는 언제든 무엇이라도 될 수 있고,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선이 있듯이 악 또한 있기에, 마찬가지로 언제든 악을 향해 걸을 수 있다. 문제는 그 길이 꽤나 달콤할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길을 옳은 길로 계속해서 가는 것이 어려워 보일 수 있다. 여기에 피스토리우스는 차츰 나는 것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경이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는 것을 포기하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보도를 걸어가는 편을 택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유능한 청년답게 계속 날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당신은 차츰 나는 것을 스스로 통제 할 수 있다는 경이로운 사실을 깨닫습니다.

데미안 183P


 현재 데미안이 하고 있는 성장은 자신에게는 악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럼에도 선의 힘을 존중하여 스스로를 선의 길로 이끌려는 과정 중에 있다.


6장. 야곱의 시름

(다른 출판사 책에는 '야곱의 싸움'이라 적혀있다.)


어떠한 이유로 야곱은 천사와 씨름을 했는데 이때 야곱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저를 축복하지 않으시면 못 갑니다"

나는 이 문장이 마치 스스로를 축복하거나 믿지 못하면 나아가지 못할거라는 의미로 느껴졌다


이 장에는 크나우어가 등장하는데 금지되는 것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따르는 인물이다. 한마디로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바로 받아들이는 인물이다.


 크나우어는 싱클레어와의 대화에서 이러한 자신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겨 내적 고통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 우연히 한 건물로 들어간 싱클레어는 자살을 시도 중인 크나우어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의 자살을 막는다. 싱클레어가 크나우어에게 데미안과 같은 역활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크나우어는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갈망하듯 싱클레어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얼마 가지 못하고 서서히 떨어지게 된다.


방황했던 싱클레어 또한 방황하는 누군가에게 길을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7장. 에바부인


베아트리체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사랑의 대상이 등장했다. 바로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부인이다. 에바부인은 그동안 많은 방황을 겪은 싱클레어를 아끼고 위로해주었다. 더불어 싱클레어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당신의 운명은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언젠가 당신이 꿈꾸는 대로 운명은 완전히 당신 것이 될 거예요. 당신이 계속 충실하다면 말이죠.

데미안 246P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집에서 데미안에게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배우고, 에바부인에게은 사랑과 용기와 같은 내적인 힘에 대해 배웠다


8장. 끝의 시작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싱클레어 또한 군인으로 전쟁에 위치했다. 여기서는 예전 크나우어와 같이 맹목적으로 기성세대의 관념을 받아드리며 전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그려내고 있다.


 싱클레어는 큰 부상을 입었다. 말을 할 수 없었고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런 싱클레어가 주위를 둘러봤는데 또 다른 매트리스에 누군가 누워 있었다. 그 사람은 싱클레어 쪽으로 몸을 기울었다. 그는 이마에 표를 지니고 있었다. 바로 막스 데미안이었다.


 미소를 지으며 데미안이 다가와 소삭이듯 말했다. "어린친구!"


"싱클레어, 내 말 잘 들어 봐! 나는 이제 그만 가봐야 해. 너는 어쩌면 언젠가 나를 다시 필요로 할지도 몰라. 크로머나 아니면 다른 일들 때문에 말이야. 네가 나를 부른다고 해도 이제 나는 말을 타거나 기차를 타고 무작정 올 수는 없을 거야. 그러면 너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러면 내가 네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알겠지? 그리고 한 가지 더! 에바 부인이 나에게 당부한 말이 있어. 혹시 너한테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그녀가 내게 보내 준 입맞춤을 너에게 전해 주라거... 눈을 감아 봐, 싱클레어!"



 이 이야기에 큰 역할을 한 데미안이 떠났다. 그러나 소설은 결코 슬프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동안 주인공의 마음을 따라간 독자들은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방황을 잡아주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에 충분히 고마워서다. 이 만큼 성장한 싱클레어는 시련을 겪더라도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데미안이 없이도 말이다. 모든 것은 내 안에 있으니까. 소설에 끝에 희망이 느껴진다



번외. 선과 악, 그리고 주체적 사고

 이 이야기는 선과 악을 다루는 이야기다.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싱클레어의 상태는 '선' 만이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선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선한 상태는 고작 10대 양아치였던 크로머에게 쉽게 무너질 정도로 악에 취약하다. 악에 대해 무지해서 그렇다.


 크로머 사건이 끝난 후 싱클레어는 나이가 들면서 어른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술을 마시거나 밤늦게 돌아다니는 등 '악'한것들을 배운다. 이러한 악의 공통점은 자괴파괴적이다.


 어쩌면 어른이 되는 과정은 악을 배워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악을 알게되어' 악할 수 있고, 가지고 있던 '선을 알고'있으니 언제든 선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어떠한 사람도 자신의 내면에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다.


어른으로서 진정한 성장은 세상에 존재하는 '악'을 배워가지만 '선'을 믿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떠한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주체적 사고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기 쉽고, 자신이 하는 행동이 악인지도 모른다. 선과 악이 내면에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누구든지 악인이 될 수 있다.


 스스로 생각하여 만든 '선'은 1장에서 언급된 부모 아래에서 안전하고 행복한 '선'과는 조금 다르다. 전자는 책임이 필요지만 후자는 책임질 필요가 없다. 전자는 누군가에게 이끌려 갈 필요 없지만 후자는 누군가에게 이끌려 가야한다. 하지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어떤 선이 인간에게 더 나은지를 안다. 책임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방황을 잠재우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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