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에 썼던 글
2018년 12월에 작성했던 글입니다. 본문에서 언급하는 모든 규정 또한 2018년 12월 기준입니다.
한국프로야구는 1982년에 출범한 이후 많은 인기를 누렸으나 이에 반해 선수들에 대한 구단의 대우가 매우 열악하였고, 매년 겨울마다 구단과의 연봉 협상 과정에서 구단의 박한 대우에 조금씩 불만이 쌓여갔던 프로야구선수들은 1988년 프로야구선수 김대현의 사망사고 이후 해태 타이거즈 구단에서 해당 선수의 유가족에게 아무런 지원도 해주지 않은 것을 계기로 프로야구선수협회(당시 선수회) 창단을 시도했으나 실패에 그치고 만다. 이로부터 약 10년 뒤인 1999년에는 결국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가 결성되었으며 이를 이어 일어난 프로야구계의 지각변동을 통해 FA(Free-Agent) 제도가 도입되었다.
FA 제도는 “구단으로부터의 일방적인 평과 결과를 바탕으로 연봉 계약이 체결되는 불합리한 과정을 감수하기만 해야 했던 선수들이, FA제도로 인해 팀 선택의 자유 속에서 자신의 성적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으며, 선수 활동 지속 가능성의 불확실성으로부터 최소한의 보호 수단”인 동시에, 구단으로서는 타 구단의 핵심 전력 혹은 자 구단의 약점인 포지션을 보강함으로써 성적 상승을 노릴 수 있는, 양측 모두에게 매력적인 제도로 다가왔다. 1999년 최초로 FA 제도가 시행된 이후 2017년 말 FA 시장까지 지난 19년간 총 201건의 FA 계약이 성사되었다는 점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특히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FA 시장이 매우 활성화되어, 처음 2년 동안에는 11건에 그쳤던 FA 계약이 지난 2년 동안에는 28회에 이르렀다.
시장 규모가 커짐에 따라 계약 금액 역시 꾸준히 팽창하였다. 1999년 스토브리그 때 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FA 시장에서 이강철이 3년 총액 8억으로 당시 최고액 계약을 체결한 것을 시작으로, 2001년 홍현우가 4년 20억에, 양준혁이 4년 27.2억에 계약하면서 3년 연속으로 FA 계약금 최고액 기록이 경신되었다. 또한 2014년 스토브리그 기간에는 강민호가 롯데 자이언츠와 4년 총액 75억원에 롯데 자이언츠와 계약을 맺음으로써 10년 간 깨지지 않았던 심정수의 4년 총액 60억원이라는 FA 최고액 계약 기록을 경신하였고, 이후 5년간 꾸준히 최고액을 경신하는 계약이 체결되기도 하였다.
단순 단일 계약 규모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계약 총액 역시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 중이다. 1999년 처음으로 FA 제도가 도입되었을 때 체결된 계약의 총액은 24억 2500만원에 불과하였으나, 2017년 스토브 리그 때 계약을 체결한 19명의 금액 총액은 631억 500만원에 이르렀다.
그러나 막상 FA 계약을 체결한 선수들이 소속 구단에서 금액 가치만큼의 활약을 펼쳤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많은 팬들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실정이다. FA 계약을 체결한 선수가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비해 불만족스러운 성적을 내며 돈값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FA 제도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부터 대두된 문제이다. 1999년 스토브리그 당시 최고액을 받고 계약했던 이강철은 해태 타이거즈 시절 10년 연속 10승 이상을 하면서 통산 132승이라는 빼어난 성적을 기록했으나, 삼성 라이온즈에 이적한 후에는 무릎 수술 후유증으로 인해 FA 계약 후 첫 시즌에 1승 7패로 부진하며 이듬해 다시 친정팀으로 트레이드되었다. 마찬가지로 3년 8억원에 FA 계약을 체결한 김동수 역시 FA 계약 전에는 LG 트윈스에서 최고의 포수로 활약했으나, 정작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한 후에는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모습만을 보여준 뒤 SK 와이번스로 트레이드되었다. FA 계약 직전 4년 간 85개의 홈런을 쳐냈던 홍현우는 LG 트윈스와 4년 20억에 계약한 뒤 5년 간 고작 15개의 홈런만을 기록한 뒤 은퇴하였다. 이밖에도 진필중, 이상목, 마해영, 정수근, 심정수 등 2000년대 초중반에 FA 계약을 체결해 타 구단으로 이적한 뒤 최악의 활약을 펼친 선수들은 숱하게 많았다.
위와 같이 FA 계약 실패사례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였으나, 이는 야구를 모르는 독자가 읽었을 때에는 서술자의 주관적인 관점에 따라 선수들의 계약이 성공하였는지 실패하였는지에 대해 판단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때문에 2000년부터 2005년까지 FA 계약을 체결한 선수들의 계약 이전 3년간의 활약과 계약 이후 3년간의 활약을 대체 선수 대비 팀 승리 기여도(이하 WAR : Wins Above Replacement Level)로 수치화한 후 이에 대한 시각 자료를 작성하여 본 포스팅에 첨부하기로 하였다.
WAR은 선수의 가치를 평가하는 가장 대표적인 지표로써, 팀 승리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가상의 선수와 비교해 특정 선수가 팀에 몇 승을 더 가져다 줄 수 있는지 나타내는 지표이다. 예를 들면, A라는 선수가 특정 시즌 WAR 5.0을 기록했다면, 이는 해당 선수가 해당 시즌에 백업멤버나 2군에서 올라온 수준의 선수보다 5승을 더해주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 손성진, 「한국프로야구 선수의 FA 계약 전후 경기력 비교 연구」, 명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7, 8쪽.
WAR이 6을 넘기면 MVP급 선수로, 5~6 정도이면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4~5 정도이면 올스타급 선수로, 3~4 정도면 훌룡한 수준의 선수로, 2~3 정도면 주전 선수로 본다. 또한 0~2 정도의 WAR의 경우 백업 정도의 활약을 펼치는 것이며, 그 이하(마이너스)는 팀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선수로 파악한다. WAR에 대한 자료의 수집은 KBO 홈페이지와 각종 세부 기록을 제공하는 STATIZ 홈페이지에서 수집하였다.
계약 이후 3년간의 WAR이 계약 전 3년간의 WAR에 비해 높거나 2 이상의 차이가 나지 않는 선수들을 ‘기대치만큼 활약해준 선수들’이라고 가정했을 때, 6년간 타 구단으로 이적한 총 15명의 선수들 중 제 값을 해준 선수는 절반에 못 미치는 숫자인 6명에 불과하였다. 물론 FA 계약을 체결한 선수들 중에는 지난 3년간의 활약을 토대로 앞으로도 그런 활약을 펼쳐줄 것이라 믿고 계약하는 선수들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적잖은 나이를 고려했을 때 앞으로 예전과 같은 활약은 기대하기 어려우나 1~2년 정도 팀의 공백을 메워줄 것을 기대하고 영입하는 선수들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5년까지 총 15건의 FA 계약 중 조규제의 2년 4.5억원 계약을 제외하면 모두 4년 이상의 장기계약이었으며, 그 규모 또한 이강철과 김동수, 김민재를 제외하면 전부 20억 원을 넘길 정도로 컸다.
결국 절반 이상의 선수들은 제 값을 하지 못하며 자신과 계약한 구단에 손해만 끼쳤던 셈이다. 하지만 “기업홍보의 일환으로 적자를 보면서도 모기업의 홍보효과를 위한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하면서 구단을 운영”하는 한국 프로야구단의 특성상 FA 시장에 소극적인 자세를 갖게 될지언정 큰 문제의식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FA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금액의 규모 또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짐으로써, FA 계약을 체결한 선수들이 몸값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했을 시의 위험성은 더 이상 가볍게 보고 지나갈 수 없게 되었다. FA 실패 사례가 나올 시 팀의 재정 및 성적 악화라는 결과가 초래하며 이로 인해 팬과 여론의 비난을 받게 됨으로써 모기업 및 스폰서 기업의 홍보 및 이미지 상승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게 되는데, FA 계약 비용이 클수록 이러한 상황에 대한 리스크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NC는 지난 2015년말 삼성 라이온즈 소속이던 FA 박석민을 4년 총액 96억원에 데려왔다.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는 선수였다. 2014년과 2015년, 2년 연속 3위에 머무른 NC 입장에선 내야와 타격을 동시에 보완함으로서 '대권'에 도전해볼 수 있는 기틀을 다지는 포석이었다. (중략) 2017년 2할4푼5리에 56타점, 14홈런, 2018년에 2할5푼5리 55타점 16홈런으로 연봉값을 하지 못했다. 그가 이렇게 하락세를 타는 동안 팀 순위도 떨어졌고 급기야 올해는 꼴찌에 머물기도 했다. 특히 올시즌에는 끊임없이 부상에 신음했다. 개막 엔트리에 들어갔던 박석민은 지난 5월 11일에 1군에서 제외됐다가 열흘 만인 22일에 돌아왔다. 그러나 26경기를 소화한 뒤 6월 24일자로 다시 엔트리 제외됐다가 26일 만에 1군에 복귀했다. 1군에서 빠진 이유는 모두 팔꿈치 통증 때문이었다. 그리고 9월 27일 옆구리 근육 부상으로 다시 엔트리에서 빠졌다. 병원 검진 결과 우측 옆구리 근육이 10㎝ 정도 찢어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결국 시즌아웃됐고 10월말에는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던 팔꿈치에 주두골 골극 제거술을 받았다. 이제 박석민과 NC의 계약은 1년만 남았다. 깔끔하게 재활을 마치고 내년 시즌 좋은 활약을 펼친다해도 그가 다시 FA대박을 터뜨리긴 쉽지 않다. 85년생이라는 나이와 내구성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FA거품은 서서히 빠지고 있는 상황이다. NC 창단 후 첫 대형 FA는 사실상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NC입장에서는 대형 FA에 선뜻 손대기 힘든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 고재완, 「NC, 창단 후 유일한 대형FA… 참사로 끝나나」, 『스포츠조선』, 2018년 12월 9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FA 시장을 통한 제대로 된 전력 보강을 꾀한다면, 최소한 100억 내외의 비용은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 현 한국 프로야구이다. 실제로 2017시즌 종료 후 FA 시장에서 4년 계약을 맺은 선수 여섯 명의 평균 계약 총액은 약 82억 원이었으며, 이마저도 4년 계약을 체결한 선수들 중 가장 낮은 금액을 받게 된 정의윤이 총액 29억 원으로 그 다음으로 낮은 금액을 받는 선수보다 51억 원을 덜 받음으로써 평균치를 한참 깎아먹은 수치이다. 이는 시장에서 A급이라고 평가받던 선수들이 기껏해야 40억 정도의 금액을 받을 때와 비교했을 때 훨씬 높은 위험부담을 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KBO는 지난여름에 선수협에 FA 제도 변경 관련 제안서를 보냈다. 이 제안서에 따르면 KBO는 FA 계약 총액을 4년간 최대 80억원으로 제한하고 계약금은 계약 총액을 30% 이내로 제한할 계획이었다. 이 밖에도 FA 자격 요건을 고졸 선수는 9년에서 8년, 대졸 선수는 8년에서 7년으로 1년씩 단축하며, FA 시장에 나오는 선수들을 최근 3년간 구단 평균 연봉 순위에 따라 3등급으로 나누는 FA 등급제를 시행할 것을 제안하였다.
FA 제도에 대한 개선 요구가 구단들로부터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FA 영입에 따른 비용 상승이다. 2017년 시즌 시작 전, 프로야구단 롯데 자이언츠는 2016년 미국의 프로야구단 시애틀 매리너스(Seattle Mariners) 소속이었던 이대호와 공식 발표 기준 4년 150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단순 계산으로만 봤을 때에는 매년 37억 5000만원, 연봉만 따지면 매년 25억원을 받는 계약이었다. 이 연봉은 이해에 롯데 구단이 KBO에 제출한 선수단 연봉 총액인 90억 5200만원의 27.6%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매우 비효율적인 투자였다. 이러한 대규모 계약을 체결한 이대호가 계약 첫 해인 2017시즌 기록한 WAR은 3.75로, 팀 전체 WAR인 44.48의 8.4%에 불과했다. 또한 리그 전체 선수들의 WAR을 계산했을 때, 이대호의 WAR은 리그 30위에 불과했다. 이대호보다 더 높은 승리기여를 한 선수들이 리그에 스물아홉명이나 더 존재했다는 의미이다. 그 29명의 선수들이 이대호보다 더 높은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었냐고 한다면 그것 또한 아니다. 당장 2017시즌 리그 WAR 29위를 기록했던 서건창만 해도 이대호의 연봉의 6분의 1도 되지 않는 금액(4억)을 받고 뛰었다. 2018시즌 역시 ‘연봉값을 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성적이었다.
구단과 모기업이 프로야구단에 투자할 수 있는 비용은 한정되어 있다. 특정 선수에게 효율성을 무시한 비용이 집행되면 나머지 선수들이 불이익을 보게 된다. 결국 현재의 FA 시장 상황은 구단으로서도, 선수 전체 집단으로서도 좋은 일이 결코 아니다. 때문에 현행 FA 제도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현재 각 구단들과 KBO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제시한 안인 연봉 상한제 설정은 결국 제도상의 규제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현 한국 프로야구의 FA 시장에 나오는 선수들의 몸값이 과도하게 높은 현상 역시 KBO 협회 차원에서 선수들의 몸값을 하락시키기 위해 선수들의 이적의 자유도를 떨어뜨리는 과정에서 나타났다는 것이다.
2018년 2월 14일 KBO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8시즌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는 롯데 자이언츠의 이대호(25억)였다. 이는 평균 연봉의 선수보다 16.6배 많은 돈을 받는 셈이었다. 이에 반해 일본 프로야구의 최고연봉/평균연봉 비율은 13.99배, 메이저리그는 6.48배였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FA 계약의 자유도와는 반비례하는 수치였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이하 MLB)의 선수들은 풀타임 3년차에 연봉조정 신청 자격을 얻을 수 있으며, 6년차가 되면 FA 자격을 취득하게 된다. 일본 프로야구는 8년이다. 반면 한국 프로야구는 최초 자격 취득 기간이 9년이며, 대졸 선수의 경우 8년이다. 이는 겉으로만 봤을 때에는 일본 프로야구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이나, 한국 선수들의 경우 군 복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년의 기간을 통으로 날리기 때문에 FA 시장에 나오기까지 사실상 10년 이상의 기간이 걸리게 된다.
결국 이렇게 까다로운 규정을 뚫고 FA 시장에 나오는 선수들의 수는 전체 프로야구 선수들의 중에서도 매우 극소수라고 할 수 있다. 일본 프로야구, 미국 프로야구와 달리 FA 시장에 나오는 공급되는 선수의 수가 매우 적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FA 시장에 나온 선수들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게 된다. 하나는 확실한 기량을 인정받아 오랜 시간을 주전으로 뛰었던 A급 선수들, 그리고 다른 하나는 A급 선수들에 비해 실력은 떨어지나 구단의 전력 사정상 오랜 시간을 뛸 수 있었던 B급 선수들이다. B급 선수들의 경우 현재 KBO 리그에 존재하는 보상 선수 제도의 문제로 인해 타 구단과의 계약에 난항을 겪거나 원 소속 구단과 헐값에 계약하게 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겪게 되지만, 본 포스팅은 FA 상한제의 문제점에 대해 다루므로 이는 상세히 서술하지 않는다. A급 선수들의 경우 앞에서 서술했다시피 시장에 나오는 수가 매우 적은데, 이를 필요로 하는 구단들은(수요) 공급에 비해 크기 때문에 ‘우수선수들을 영입하기 위한 구단들의 지나친 경쟁으로 선수들의 몸값은 폭등’하게 되는 것이다.
프로야구단이 FA를 통한 영입 외에 A급 선수를 수급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외국인 선수제도를 활용해 수준급의 외인 선수를 영입하는 것, 둘째는 트레이드를 통해 타 구단의 A급 선수나 유망주 선수를 영입하는 것, 그리고 셋째는 구단 내의 유망한 선수를 육성해 A급 선수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외인 선수 영입 문제의 경우 가면 갈수록 비싼 몸값을 주고 외인 선수를 영입함으로써 FA와 같은 문제점을 일부 공유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며, 트레이드의 경우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LG 트윈스에서 넥센 히어로즈로 이적한 박병호가 잠재력을 터뜨리며 4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하는 등의 사건도 있었으나 일반적으로는 유망주 내지 B급 자원들을 중심으로 한 소소한 트레이드가 주된 편이다. 육성의 경우 넥센 히어로즈, SK 와이번스, 두산 베어스 등의 구단이 대표적인 육성 야구를 표방하는 구단이며 다른 구단들 역시 리빌딩, 육성을 외치고 있으나 성과는 매우 지지부진하다. 그리고 유망주의 더딘 성장을 메꿔줄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카드가 바로 FA 선수의 영입이기 때문에, 지금의 FA 시장 과열 현상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더 많은 돈을 주기 싫어서 미국, 일본보다 더 선수에게 불리하게 만들었던 FA 관련 규정이,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선수들의 과열된 몸값을 내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A급 선수의 수급을 늘리면 되는 것이다. 고교·대학야구의 인프라를 확장시켜 수준급 선수의 수급을 늘리든, 2012년 이택근과 4년 50억 계약을 맺은 것 외에는 아무런 외부 FA 영입이 없음에도 창단 후 11년 간 5번이나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넥센 히어로즈처럼 A급 선수를 직접 육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든 방법은 상관없다. 하지만 그동안 단기간동안의 뚜렷한 성적 상승을 노리기 위해 시장에 나온 우수한 기량의 선수들을 비싼 값에 영입해놓고, 이제 와서 가격이 부담스러우니 FA 상한제를 부르짖는 것은 좋은 모습으로 비쳐지지 않는다.
앞서 서술했다시피, KBO가 제시한 FA 상한제는 FA 계약 총액을 4년간 최대 80억원으로 제한하고 계약금을 계약 총액의 30% 이내로 제한하는 제도이다. 또한 FA 규정을 위반할 시 해당 계약을 무효로 하며, 해당 선수는 1년간 참가 활동을 정지하고 해당 구단에는 1차 지명권 박탈 및 제재금 10억원을 부과한다. 선수에게 있어 이점은 하나도 없는, 그저 구단에게만 좋은 내용뿐이다.
메이저리그에서도 FA 제도가 없던 시절, 선수들은 1879년 최초로 등장한 ‘보류조항’에 의해 오직 한 구단과만 계약이 가능했다. ‘보류조항’이란 오프 시즌 일정 기간 동안 계약에 합의하지 못하면 구단이 전년도와 같은 조건으로 1년 계약을 갱신할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으로, 이 조항으로 구단은 선수에 대한 영구독점계약교섭권(보류권)을 가졌다. 프로야구 노동시장을 경제학으로 설명한 최초의 인물인 경제학자 사이먼 로텐버그는 이 보류권을 구단이 누리는 지대(rent) 지대란 특정 권리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서 발생하는 보상으로, 구단주들이 지대를 누리면 선수를 본다. 결국 만성적으로 MRP(Meterial Requirement Planning)> 연봉인 상황에 놓인다. 이는 로텐버그에 따르면 수요독점착취(monopsonistic exploitation)이다.
로텐버그의 기념비적인 논문 이후 후속 연구들이 뒤따랐다. 제럴드 스컬리와 마샬 메도프는 각각 1973년과 1975년 ‘수요독점착취율(RME)’을 계산했다. MRP의 계산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기본 공식은 다음과 같다.
● RME = (1-(연봉/MRP)
● MRP = 연봉/(1-MRE)
1977년 시즌을 앞두고 메이저리그 노사는 100년 가까운 대립 끝에 FA 제도 도입에 합의했다. 메이저리그에서 6년을 뛴 선수는 보류권에서 벗어나 모든 구단과 자유롭게 협상을 할 수 있다는 게 골자다. FA 도입 6년 뒤인 1983년 러트거스대학의 헨리 라이무도는 선행 연구를 바탕으로 FA 전후 RME(착취율)의 변화를 추적했다.
타자와 투수를 상(Star) 중(Average) 하(Mediocre) 세 등급으로 나눈 뒤 1976년 이전(Previous Estimaes)과 1977년의 선수 전체(Total Players), 비FA, FA로 나눠 분석했다. FA 이전 하급 타자의 착취율은 88%(스컬리), 70%(메도프)다. 즉, 자유시장에서 받을 수 있는 연봉의 고작 12%와 30%만을 지급받았다는 의미다. 전체적으로 FA 이전 착취율은 45~91% 사이다.
FA 시즌인 1977년에도 보류권에 묶인 선수의 착취율은 최고 85%에서 최저 39%로 큰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FA 선수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총 11개 항목에서 다섯 개에서 착취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메도프의 방식으론 중급 투수는 –81%, 상급 투수는 –72%였다. 실력에 비해 'FA 대박'을 터뜨린 선수가 많다는 의미다. 이쯤되면 ‘(FA) 선수에 의한 (비FA 선수) 착취’다.
- 최민규, 「‘선수에 의한 선수 착취’ 야구 FA 제도의 역설」, 『뉴스톱』, 2018년 12월 7일.
즉 특정 경제모델로 FA 제도 출범 전후의 메이저리그를 분석했을 때, FA 제도가 생기기 이전의 메이저리그는 선수들이 구단에 의해 착취를 당하는 정도가 매우 높았으며 이는 구단이 연봉협상에 있어 절대적으로 우위를 점하는 제도가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해석이 가능하다. 이에 반해 FA 제도가 출범한 이후에는 선수들이 구단에 의해 착취를 당하는 정도는 매우 줄어들었음을 알 수가 있다. FA 제도는 구단에 제대로 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던 선수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했음을 가장 직관적으로 나타내는, 상징적이기도 한 제도인 것이다.
이는 한국 프로야구에도 적용된다. 처음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 FA 제도가 도입되기 전까지 약 20년 간, 프로야구는 고교야구의 인기를 그대로 이어받아 출범 초기부터 전국적인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이러한 흥행은 선수들의 수익 상승으로 전혀 이어지지 않았다. 출범 초기의 한국 프로야구는 연봉상승 25% 상한제로 인해 선수들의 연봉상승과 연봉삭감률이 25%를 넘기지 못했으며, 관중의 대다수를 형성할 노동자 계층은 꿈도 꾸지 못할 고액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존재했던 것 또한 사실이나 그러한 화려함의 이면에는 자신의 가치에 비해 터무니없는 금액을 받던 선수들 또한 수없이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장명부 씨가 1983년 한 시즌에 30승이라는 대기록을 거두게 된 것은 당시 삼미그룹 고위층과의 약속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장 씨가 일본에서 건너오면서 구단 고위층과 내기를 하게 됐고, 고위 인사는 “30승을 하면 1억 원을 준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당시 중형 아파트 한 채가 약 4000만 원이었다.하지만 장 씨가 진짜 30승을 해내자 구단 고위 인사는 슬그머니 발을 뺐고 1억 원의 반도 안 되는 돈을 주고 무마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아무튼 장명부 시는 이 사건으로 배신감을 느끼기 시작했으며, 빙그레 시절엔 세금 문제로 사기를 당한 적도 있다고 한다.
- 고석태, 『야구의 뒷모습』, 일리, 2012, 37쪽.
1960~70년대에 메이저리그에서 너클볼 투수로 이름을 날렸던 짐 바우튼은, “구단주들은 보류권이라는 사슬로 100년 동안 선수를 착취했다. 선수가 구단주를 착취한 것은 이제 25년밖에 되지 않았다. 앞으로 75년은 선수가 더 큰 소리를 내야 공평하다”고 말했다. 이는 다소 과격한 발언임은 사실이나, FA 제도가 선수들이 구단으로부터 자신들의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고스란히 평가받을 수 있는 대표적인 제도임은 사실이다. 이러한 제도에 금액적인 제약을 거는 것은, 다시 구단에게 착취권을 쥐어주겠다고 말하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한국 프로야구는 이미 과거에도 연봉 상한제를 실시했던 전적이 있다. 프로야구 출범 초기에는 전 선수들을 대상으로 25%의 상한선을 뒀으며 FA 계약금과 다년 계약을 금지했고, 외국인선수 연봉에도 최대 3억원의 상한선을 설정하였다. 그러나 제대로 지켜졌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대표적인 예가 외인선수 연봉 상한선 제도였다. 2009년 당시 KBO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외국인 선수 연봉은 37만 5000달러였으나, 국세청의 자료에 따르면 이 해의 외인 선수 최대 소득은 12억 1600만원에 달했다.
한 스포츠 전공 대학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프로야구에는 두 가지 공공연한 거짓말이 있다. 하나는 넥센 히어로즈의 현금 트레이드 문제, 두 번째는 외국인 선수 몸값이다". 일간스포츠가 8개 구단의 2008~2010년 국세청 제출한 신고 자료를 단독 입수, 외국인 선수의 실제 소득금액을 파악했다.
외국인 선수가 국내에서 벌어들인 수입의 20%는 소득세로 원천징수된다. 이에 따르면 2009년 외국인 선수 최고 소득은 한국야구위원회(KBO) 신고액인 4억8680만원의 2.5배인 12억1600만원이었다. "100만 달러를 받는 외국인 선수가 있다"는 소문은 소문만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 최민규, 「[단독] 프로야구 1년 12억 외국인 선수 존재한다」, 『일간스포츠』, 2011년 8월 8일.
2018년 시즌 중에 발각된 넥센 히어로즈와 8개 구단 간의 트레이드 이면 계약 역시 한국 프로야구단의 불투명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KBO는 약 125억 5천만 원의 미신고금액이 구단과 구단 사이에 오가는 것을 전혀 포착해내지 못함으로써 무능함을 확인시켰으며, 비단 뒷돈을 받은 넥센 히어로즈 뿐만이 아니라 선수단 전력 보강을 위해 뒷돈을 주고 이를 숨긴 8개 구단 역시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이후 구단들은 앞으로는 규약을 준수하는 계약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으나, 지난 10년 간 끊임없이 규약을 미준수하는 트레이드 계약을 성사시켰던 전력과 단 한 번도 제대로 연봉 규정을 지킨 적이 없다고 해도 무방한 과거 프로야구사를 봤을 때 이 다짐이 언제까지 유효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현재 한국 프로야구계에서 뜨거운 FA 거품 논란은, 결국 다른 구단들보다 더 높은 금액을 지불해서라도 선수를 데려오겠다는 구단들이 있기 때문에 초래된 결과이다. 그리고 그 구단들이 다른 구단들보다 더 높은 금액을 지불해야만 선수를 데려올 수 있는 것은, 구단이 위치한 지역의 환경 등 여러 요인들이 존재한다. 이왕 같은 금액이라면, 더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더 많은 팬을 보유했으며 좋은 지리적 환경에 위치한 프로야구단으로 이적하는 것이 당연하다. FA 상한제는 ‘돈을 쓰겠다’는 시장 참가자를 규제함으로써 각 구단으로 하여금 편법과 일탈에 대한 유인을 유도할 가능성이 높은 제도이다. 그리고 만약 제도가 실제로 실시될 경우의 각 구단들의 일탈 가능성은 여태까지의 사례를 통해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다.
현재 한국 프로야구의 FA 시장이 과열된 현상은 분명 우려해야할 부분이며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야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KBO에서 이에 대한 해답으로 내놓은 FA 상한제는, 현 FA 시장 상황의 원인에 대해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정책이며 근본적은 그저 구단에게 있어 FA 협상을 유리하게 만들어주는 카드의 이상으로도 이하로도 작용하지 못할 정책이다. 또한 여태껏 프로야구단들이 연봉 상한제나 계약 관련 규정을 제대로 지킨 적이 없었음을 고려하면, 앞의 문제점들에 대해 걱정하기에 앞서 제대로 이행이 될 것인지에 대한 의문점부터 드는 정책이다.
지난 10월 1일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를 통해 KBO가 제시한 연봉 상한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 날 김선웅 선수협 사무총장의 일부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 지적하며 ‘달면 삼키고 쓰면 뱉으려 든다’고 비판하는 팬들도 존재했으나, 선수협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선택이었다. KBO가 1차적인 사고에서 그치지 않고 현 FA 거품 현상의 원인에 대해 정확히 파악한 뒤,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시켜줄 제도를 시행할 것을 기대한다.
FA 상한제는 이후에도 KBO와 선수협 사이에서 여러 번 논의되었으나,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신 2023년부터 선수들의 연봉 총액을 상한선을 설정하는 샐러리캡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2021·2022년의 외국인선수와 신인선수를 제외한 각 구단의 연봉 상위 40명의 평균금액의 120%에 해당하는 금액을 상한액으로 설정하고, 이를 넘을 경우 제재를 가하기로 한 것이다.
또한 KBO는 FA 시장 과열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오는 스토브리그부터 'FA 등급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최근 3년간 연봉(+옵션)을 기준으로 FA를 A, B, C등급으로 나누고 등급에 따라 보상 규모를 달리 하는 내용이다.
※ 참고&인용
고석태, 『야구의 뒷모습』, 일리, 2012.
손성진, 「한국프로야구 선수의 FA 계약 전후 경기력 비교 연구」, 명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7.
신성민,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의 장기계약(FA제도)과 근무태만 가설에 관한 실증분석」, 부산대 석사학위논문, 2006.
김승현, 「한국프로야구 자유계약선수(FREE AGENT)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동의대 석사학위논문, 2007.
최민규, 「‘선수에 의한 선수 착취’ 야구 FA 제도의 역설」, 『뉴스톱』, 2018년 12월 7일.
최민규, 「[단독] 프로야구 1년 12억 외국인 선수 존재한다」, 『일간스포츠』, 2011년 8월 8일.
고재완, 「NC, 창단 후 유일한 대형FA… 참사로 끝나나」, 『스포츠동아』, 2018년 12월 9일.
Simon Rottenberg, 「The Baseball Players' Labor Market」,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제64권 제3호, 시카고대학교, 1956:p. 24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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