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2018년의 넥센 히어로즈
주전 야수들이 줄부상을 입으며 거의 백업 선수들로만 경기를 치를 때도 있었다. 감독이 사외이사였음이 밝혀지고 트레이드 뒷돈이 발각되는 등, 구단 운영상으로도 수많은 어두운 점이 알려졌다. 설상가상으로 팀의 주전 포수와 마무리 투수가 성폭행 혐의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겨우 1년 동안, 아니 사실상 반년을 겨우 넘는 기간 동안 몇 년에 걸쳐 일어나도 이상할 일 들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을 겪었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영웅이었다.
주전 선수 모두가 한 시즌 내내 부상을 당하지 않고 시즌을 치르는 팀은 단 한 군데도 없다. 만약 144경기를 모두 베스트 멤버들이 출장해 최상의 컨디션 속에서 경기를 치를 수 있는 팀이 존재한다면, 그 팀은 그 해 리그를 가볍게 석권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2018년의 히어로즈는 유난히 부상의 악재에 시달려 왔다.
시즌 초부터 팀의 주전포수인 박동원이 왼손목 통증 부상으로 인해 1군에서 말소되었다(3월 31일). 이날 경기에서 서건창이 파울 타구에 종아리를 맞는 부상을 당했고, 이후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다가 4월 3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뒤 4달이 넘는 기간동안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서건창이 말소된 이후 넥센 히어로즈는 4월 12일까지 아홉 경기 동안 3승 6패로 부진했고, 13일 두산전에서는 4번타자 박병호가 주루 플레이 도중 종아리에 통증을 느끼고 교체된 뒤 종아리 근육 파열 부상을 진단받아 다음날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이후 넥센 히어로즈는 약 한 달이 넘는 기간동안을 4번타자 없이 치뤄야만 했다.
두 선수의 큰 부상 이후 남은 4월 동안은 이렇다 할 부상이 없었다. 하지만 5월이 되자마자 외인 타자 마이클 초이스가 택시에서 내리던 도중 문에 부딪혀 손가락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고, 김민성도 발 뒤꿈치에 타구가 맞은 후유증으로 결장하며 두 선수가 주전 라인업에서 제외되었다. 5월 4일에는 팀의 주전 외야수 고종욱이 어깨관절와순 파열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면서 사실상 테이블 셰터와 중심 타선 없이 경기를 치르는 셈이 되었다.
고종욱이 말소된 지 약 일주일 후인 5월 13일에는 팀의 리드오프와 주전 유격수가 이탈하였다. 5월 13일 경기에서 1회초에 린드블럼에게 종아리 부분에 사구를 맞은 뒤 교체되었던 이정후가 근섬유 미세손상 진단을 받고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으며, 김하성은 집에서 깨진 화분을 정리하다가 손바닥이 찢어져 일곱 바늘을 꿰메고 말소되고 말았다. 이로써 넥센은 개막한 지 2개월도 안 되어 개막전 스타팅 라인업에 들었던 타자들 중 김태완을 제외한 전원이 부상을 당하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차라리 시즌 초반에 액땜을 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후 가을 야구가 끝날 때까지도 꾸준히 부상 선수가 나오고 말았다. 6월에는 1선발로 활약중이었던 로저스가 타구를 처리하다가 손가락 분쇄골절 부상을 당해 팀을 떠나게 되었으며, 부상을 극복하고 돌아온 이정후가 주루 플레이 도중 어깨 관절 와순 파열 부상을 입어 21일만에 다시 엔트리에서 말소되고 말았다.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최원태는 일본과의 슈퍼 라운드에서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였고, 이후 남은 시즌 동안 마운드 위에서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시즌 최종전에서는 이택근이 갈비뼈 부상을,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는 이정후가 왼쪽 어깨 관절와순 손상을 입으며 전력에서 이탈하였다. 시즌의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지 않은 전력으로 경기를 치뤘던 넥센 히어로즈였다.
경기 외적인 문제들도 영웅들을 계속해서 괴롭혀왔다. 주전 선수들의 지속적인 이탈로 팀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팀의 주전 포수와 마무리투수가 성폭행 혐의로 전력에서 이탈하였다. 이전부터 팬들 사이에서 바지감독이라는 말을 듣고 있던 장정석 감독이 사외이사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충격을 주었고, 이는 이장석의 옥중 경영 의혹과 엮이며 '장정석 감독이 이장석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는 꼭두각시 감독이다'라는 루머를 낳기도 하였다. 트레이드 이면 계약 사건은 8개구단이 넥센 히어로즈와 트레이드를 하며 총 131억 5천만원의 뒷돈을 줬다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리그 전체에 충격을 주기도 하였다.
“주전 선수들이 많이 빠져 나갔지만 이것은 다른 선수들에게는 기회다. 주전 선수들이 돌아온다면 그만큼 우리가 뛸 수 있는 기회는 적다. 이번에 코칭스태프와 팬에게 제대로 실력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 이택근
이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웅 군단은 무너지지 않았다. 성폭행 사건, 구단 운영 논란, 전년도 신인왕의 부상이 있었던 5월에는 오히려 5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하며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 모습을 보였으며, 불펜진의 완전 붕괴로 작년과 같은 노선을 밟나 싶었던 후반기에는 8월 2일 문학 SK전을 시작으로 창단 후 최다 연승인 11연승을 기록하면서 단숨에 가을야구 그 이상을 노리는 강팀이 되었다. 이는 대체 선수들이 주전 선수들의 공백을 완벽히 메우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서건창이 부상으로 이탈한 사이 2루수를 맡게 된 김혜성은, 공수 양면에서 신인 이상의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그야말로 이름 그대로 '혜성처럼 나타난 괴물 신인'으로 부상하였다. 83%의 높은 도루 성공율을 자랑하는 주루 센스와 시즌 도루 3위를 기록한 빠른 발, 그리고 수비에 비해 타격은 한참 멀었다는 평을 들었던 작년과 달리 개인 통산 첫 한 시즌 100안타를 기록할 정도로 발전한 타격. 비록 가을야구에서는 수비에서 아쉬운 모습을 종종 연출하였으나, 올 시즌 김혜성의 퍼포먼스는 1군으로 돌아온 서건창이 2루 자리를 믿고 맡기기에 충분했다.
처음에는 잔부상으로 신음하던 김민성의 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경기에 출전한 송성문은, 시즌이 끝난 현 시점에서는 이제 아예 주전 3루수 자리를 빼앗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였다. 올 시즌 78경기 출장하여 211타석에 들어선 송성문은 3할 타율과 8할대 후반의 OPS를 기록하였고, 7개의 홈런을 쏘아올리며 45타점을 쓸어담았다. 큰 경기에서도 강했다. 준플레이오프에서는 13타수에 나와 7개의 안타를 기록하였으며, 플레이오프에서는 1차전에서 2개의 홈런을 쏘아올리며 팀이 5점차로 뒤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추격할 수 있도록 톡톡히 공헌하였다. 경기 외적으로는 늘 싱글벙글 웃으며 경기에 임하는 모습이 넥센의 젊은 팀컬러를 대변하는 듯했다.
외야에서는 임병욱과 김규민이 이정후, 고종욱 등 외야수들의 빈자리를 대신하였다. 201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넥센 히어로즈에게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한 임병욱은 올 시즌 전까지 잔부상을 달고 살며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였고 작년 말에는 상무 야구단에 지원했다가 떨어지는 수모까지 겪었으나, 막상 시즌이 시작되자 자신의 잠재력을 유감없이 펼쳐 보이며 시즌 중반까지는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외야수 자리의 강력한 다크호스로 거론되기도 하였다. 가을야구에서는 준플레이포에서 연타석 쓰리런을 쳐내며 시리즈 MVP에 선정되고 플레이오프에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며 대활약을 펼쳤다. 1루수를 볼 수 있다는 점 덕분에 1군에 올라와 땜빵으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던 김규민은 시즌 중반 팀의 난세의 영웅으로 대활약하였다.
대체 외인들의 활약 역시 무시무시했다. 기대에 못미치는 성적과 좋지 않은 워크에씩으로 방출된 초이스의 빈 자리를 채우게 된 제리 샌즈는, 당초의 낮은 기대를 깨고 중요한 순간마다 홈런포를 쏘아올리며 박병호가 부진했던 시즌 막판에 사실상 팀 타선의 중심 역할을 해주었다. 에릭 해커는 비록 로저스만큼의 임팩트 있는 활약은 펼치지 못했으나, 13경기에 출전해 5승을 올리는 등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위태로웠던 투수진이 붕괴하지 않는 데 일조하였다.
여기까지 온 우리 후배들이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해준 후배들에게 고맙고, 가슴 찡하다 - 이택근, 플레이오프 5차전 시작 전 인터뷰에서
제아무리 새로운 영웅들이 젊은 혈기를 뽐내며 그라운드를 누비고 다닌다고 해도, 베테랑들과의 신구 조화가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한 번 추락할 때 겉잡을 수 없이 추락할 지도 모른다. 지난 시즌의 넥센 히어로즈가 그러했다. 그러나 올해의 넥센 히어로즈는 달랐다. 작년보다 한층 더 베테랑의 풍미가 느껴지게 된 이택근과 신예 선수들을 다정하게 다독여주는 박병호, 그 외에도 서건창, 김민성 등의 베테랑들이 폭주하는 어린 영웅들의 뒤를 든든히 받쳐 주었다.
지난 시즌에 차마 코너 외야수라고 믿기는 끔찍한 성적을 기록하며 완전히 노쇠화가 온 게 아니냐는 우려를 샀던 이택근은, 올 시즌에는 자신이 언제나 그랬냐는 듯 이택근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다. 풍부한 경험이 만들어주었을 노련한 플레이와 적절한 팀배팅. 그리고 부상으로 인해 경기에 출장할 수 없음에도 꾸준히 경기장에 출근해 선수들을 응원해주는 모습은, 모두가 알고 있었던 이택근이었다.
박병호와 서건창은 비록 부상으로 인해 각각 약 한 달과 네 달 가량을 쉬었으나, 돌아온 뒤에는 부상 전보다 뜨거운 모습을 보여주며 팀 타선의 중심축 역할을 하였다. 30경기 가량을 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초 3시즌 연속 40홈런의 대기록을 세우며 장타율 및 OPS 1위, 그리고 리그 홈런 공동 2위를 기록한 박병호는 자신이 어째서 국민 거포인지, 리그를 대표하는 4번타자인지를 증명해보였다. 서건창은 130일이라는 1군 공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복귀 후 맹타를 휘둘러 3할 4푼의 타율로 시즌을 마무리하였으며, 플레이오프에서 4할 타율을 기록하는 등 가을야구에서 선봉장의 역할을 다하였다.
“언제가 마지막 경기일지 모르니까. 후회 없이 최선을 다 하고 싶어요.” - 송성문
"전혀 아쉽지 않고, 아쉬운 순간도 없다. 선수들에게 큰 절을 해야 할 판이다. 내게도, 선수들에게도 정말 좋은 시간(PS)이었다" - 장정석 감독, 플레이오프 종료 후
턱없이 부족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영웅들은 가장 높은 곳을 꿈꿨다. 매 경기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임해왔다. 결국 한국시리즈까지 단 한 걸음이 모자라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하지만, 그 누가 그들에게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지난 몇 주 간, 팬들이 보았던 선수들의 모습은 영웅들 그 자체였다.
어찌 보면, 와일드 카드는 '운이 좋았다'라고 할 수도 있었다. KIA의 좌완 에이스 양현종이 4회까지 넥센의 타선을 완벽히 틀어막았고, 5회초 넥센 킬러 최형우가 선취 2타점 적시타를 쳐냈다. 어쩌면 경기 끝까지 KIA 타이거즈에게 끌려다니는 흐름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5회말 기아의 주전 포수 김민식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실책을 모두 저지르고 유격수와 2루수마저 실책을 하는 등 센터라인이 붕괴되며 역전에 성공했고, 7회초 다시 동점이 된 상황에서 이정후가 최형우의 장타성 타구를 슈퍼 캐치로 잡아내면서 승기를 완전히 넥센 히어로즈 쪽으로 가져왔다. 이 직후 공격에서 넥센의 타선이 4점을 뽑아내면서, 와일드카드는 단 한 경기만에 끝났다.
준플레이오프에서는 젊은 영웅들의 진가가 빛이 났다. 11년만에 가을야구에 진출한 한화가 긴장한 모습을 보여준 덕에 1차전을 비교적 쉽게 가져간 넥센은, 2차전에서 임병욱의 연타석 쓰리런과 안우진의 3.1이닝 무실점 괴력투로 승기를 가져갔다. 이후에도 젊은 영웅들이 시리즈를 지배했다. 3차전에서 답답한 경기력으로 패배하며 한화의 기세를 살려준 넥센은, 4차전에서 99년생 이승호와 안우진이 9이닝 2실점 쾌투를 합작하고 임병욱이 쐐기 2타점 적시타를 쳐내며 시리즈를 가져갔다.
준플레이오프까지 합하여 가을야구 다섯 경기를 치른 넥센은, 2주간 휴식을 취하며 문학에서 영웅들을 기다리고 있던 SK 와이번스에게 1차전과 2차전을 내리 패배한다. 1차전은 5점차로 끌려가던 경기를 7회초 샌즈와 송성문에 힘입어 동점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는 등 분투하였으나 9회말 박정권에게 끝내기 투런포를 허용하며 허무하게 패배했고, 2차전은 1차전의 후유증인지 SK의 투타 전력에게 완벽히 공략당하고 만다.
그러나 고척으로 돌아온 뒤 기적이 일어났다. 한현희의 의외의 호투 속에서 주효상이 역전 2타점 적시타를 쳐내며 역전에 성공했고, 송성문의 결승 희생 플라이로 3차전을 승리했다. 4차전에서는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 이어 또다시 안우진&이승호의 99년생 듀오가 상대팀 강타선을 꽁꽁 틀어막았고, 4회말 샌즈의 선취 투런포와 6회말 나주환의 실책 등으로 4점을 뽑아내 승리하였다. 리버스 스윕이 눈 앞에 보이는 듯했다.
5일만에 문학으로 돌아온 영웅들은 6회초, 임병욱의 선취 2타점 적시타와 상대 배터리의 실책을 틈탄 홈 쇄도로 단숨에 3점을 뽑아낸다. 그러나 6회말 김혜성의 실책이 빌미가 된 로맥의 동점 쓰리런을 시작으로 기세를 탄 SK가 단숨에 6점을 뽑아내고, 이후에도 3점을 추가로 뽑아내며 점수차가 너무나도 크게 벌어지고 말았다. 마무리투수 김상수마저도 추가점을 내주며 9 : 4가 된 상황에서 마지막 정규이닝 공격에 들어선 히어로즈. 모든 것이 끝난 듯했다. 하지만 영웅들은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조금도 포기하지 않았다.
선두타자 김민성이 안타를 쳐내 출루에 성공했다. 8번타자 김혜성의 대타로 나온 고종욱이 기세를 이어나가지 못하고 초구를 건드려 플라이로 물러나고 말았다. 허정협이 3루수 앞 땅볼을 쳐내, 2사 1루의 상황이 되어버렸다. 5점차의 점수를 뒤집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워 보였다. 그러나 김하성과 송성문이 연이어 2루타를 쳐내며 2득점을 하였고, 3번타자 서건창이 2루수의 실책으로 출루하는 데 성공하며 단숨에 2점차로 좁혀졌다. 이제 타석에는 이 날 경기 전까지 6푼의 시리즈 타율로 부진했던 4번타자 박병호. 초구를 참나낸 박병호는 신재웅의 빠른 공에 연이어 헛스윙을 하였다. 이 때부터 박병호가 빠른 공에 전혀 타이밍을 못 맞추고 있다 판단한 신재웅은, 계속해서 140km/h 중후반대의 빠른 공을 던졌다. 4구는 파울, 5구는 스트라이크 존에서 많이 벗어나며 볼. 6구째의 빠른 공이 조금 높은 코스로 날아갔다. 박병호는 마치 억지로 희생 플라이를 만들어내는 듯한 스윙으로 공을 밀어쳤고, 뛸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은 채 한동안 타구를 지켜봤다. 그리고 그 공은, 계속해서 쭉쭉 뻗어나간 끝에 우측 담장을 훌쩍 넘어가버렸다. 팀 타선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박병호의 시리즈 첫 홈런은, 그를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에 터졌다.
이후 넥센은 10회초 임병욱과 김민성의 연이은 2루타로 기어이 역전을 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10회말 마운드에 올라온 신재영이 김강민과 한동민에게 백투백 홈런을 맞으며 허무하게 경기를 내주고 말았다. 구단 창단 후 첫 가을야구 업셋, 역대 한 시즌 최대 포스트 시즌 경기 소화(10경기) 등의 기록을 세우는 등 한계를 모르고 달려왔던 영웅들의 파란만장한 가을야구는, 결국 한국시리즈로 가는 문턱 앞에서 좌절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누가 영웅들을 욕할 수 있을 것인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명언이 어떤 의미인지를 약 다섯 시간에 걸친 경기로 모두에게 보여준 그들에게 누가 화를 내며 침을 뱉을 것인가.
"지금 분위기에 성적까지 떨어지면 선수들이 더 힘들어지기 때문에 경기는 꼭 이겨야 한다. 모두 한 마음일텐데 잘해주고 있는 후배들에게 고맙다" - 이택근, 5월 30일 경기 승리 후 소감에서
이로써 2018년에 치를 모든 경기가 끝났지만, 히어로즈의 2018년은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넥센 타이어와의 길었던 인연을 청산할 히어로즈가 어떤 기업과 다음 메인 스폰서 관계를 맺을 것인지, KBO에 의해 이장석 대표가 영구제명 당한 상황에서 앞으로 구단이 어떤 길을 걷게 될 것인지 등등... 경기 외적인 지켜볼 요소들이 너무나도 많다.
적어도 선수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올 시즌 그라운드 위에서 펼쳤다. 이제 남은 것은 팬들이나 선수들이나 히어로즈가 겨울 동안 좋은 소식만 가득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위기를 극복하고 비상하는 영웅처럼, 히어로즈도 겨울이 아니라 여름인 걸까 착각할 정도로 좋은 소식만 가득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