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의 머리에서 어떻게 나왔을까 궁금한 제도
과연 선수들이 특정 금액 이상을 받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FA 거품을 막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일까.
오늘 오후, KBO가 프리 에이전트(이하 FA) 제도 변경을 검토중이라는 기사가 올라왔다. OSEN의 취재 결과에 따르면 최근 KBO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에게 선수들의 FA 계약 총액을 4년간 최대 80억으로 제한하며, 계약금은 계약 총액의 30% 이내로 제한하자는 제안서를 보내왔다. 이 밖에도 FA 자격 취득 기간을 1년씩 단축시키고 FA 등급제를 시행하는 등 여러가지 제도를 올 시즌 종료 후부터 시행하려 한다는 내용이 제안서에 적혀 있었다.
현 KBO의 FA 제도에는 수많은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상당히 긍정적인 시도로 볼 수 있다. FA 등급제는 다른 구단들로부터 수요가 존재하나 보상 선수를 내주며 영입하기에는 망설여지는 선수들에게 있어 큰 도움이 될 제도이다. 당장 지난 시즌에만 해도 채태인, 최준석 등의 선수들이 보상선수 문제 등의 이유로 인해 계약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들은 소속 구단이 'FA 보상선수를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이적을 위해 노력했을 정도였다. 이번에 KBO가 시행하려는 FA 등급제에는 'C등급 선수의 경우 영입 구단이 보상선수를 내주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있어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해줄 것이다.
FA 취득 기간 단축 역시 희소식이다. 현재 KBO 리그의 FA 자격은 고졸선수의 경우 9년, 대졸 선수는 8년을 뛰어야만 얻을 수 있다. 여기에다가 대한민국의 남성으로 태어난 이상 면제를 받지 않는 이상 군 복무를 해야만 하기 때문에, 사실상 규정에 명시되어 있는 기간보다 더욱 오랜 시간이 걸린다. FA 취득 기간 단축 실시가 실제로 이뤄진다면, 선수 공급이 기존보다 원활해짐으로써 과열된 FA 시장을 어느 정도 안정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FA 상한제이다. 최대 4년 150억원까지 치솟은 S급 선수들의 몸값을 아무리 많아도 80억 이상 주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도이다. 이는 선수협이 받아들일 리도 없거니와, 실제로 도입된다고 해도 제대로 지켜질 가능성이 희박한 제도이다.
우선 가장 큰 의문점은, 본 FA 상한제가 실제로 도입된다 한들 제대로 지켜지겠냐는 것이다. 시간을 되돌려 2014년까지의 한국 프로야구를 보자. 당시에만 해도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던 외인 선수들은 최대 30만 달러 이상의 연봉을 받을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으나, 이는 제대로 지켜진 적이 없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외인 선수 연봉 제한이 폐지되기 직전 시즌에 SK 와이번스가 영입하였던 루크 스캇이다. 당시 루크 스캇은 직전 해인 2013년에 템파베이 레이스에서 275만 달러를 받던 현역 메이저리거였다. 메이저 리그에서 말도 안 될 정도로 처참한 성적을 기록해 재기 불가의 상태가 된 것이면 모를까, 13년에 253타수에 들어서서 아홉 개의 홈런을 쳐낼 정도로 실력이 살아 있는 선수였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계약이었다.
한국인 선수들의 몸값 역시 마찬가지로 높은 상황이다. 당장 지난 해 비시즌에 있었던 FA 계약 사례만 살펴봐도 김현수가 4년 115억, 손아섭이 4년 98억, 그리고 황재균이 4년 88억이라는 금액에 계약했다. 이렇듯 S급 선수들이 100억 내외의 금액을 받고 있는 것이 현 KBO의 FA 시장이다. 올 시즌이 끝난 뒤 FA 시장에 나올 양의지는 포수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한국 프로야구에서 수비는 물론이요, 타격 면에서도 1에 가까운 OPS를 기록하는 등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주고 있는 선수이다. 이런 선수가, 그리고 이후에 FA 시장에 나올 선수들이, 다른 S급 선수들이 100억 내외의 금액을 챙겨가는 것을 보고도, 과연 4년 80억이라는 금액에 만족하고 계약할 것인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물론 표면상으로만 4년 80억에 계약했다 발표하고 뒷돈이 오갈 가능성을 대비해서, KBO는 FA 규정을 위반할 시 해당 계약을 무요로 하고 해당 선수는 1년간 참가 활동을 정지하며 해당 구단에는 1차 지명권 박탈 및 제재금 10억원을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정운찬 체제의 행보를 보면 이러한 제재가 제대로 이뤄질지 역시 의문이다. 당장 올 시즌 중순에 있었던 트레이드 이면 계약 파문 때에도 KBO는 엄중 처벌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으나, 막상 SK 와이번스를 제외한 KBO의 전 구단들이 넥센 히어로즈와 총 131억 5천만 원의 뒷돈을 거래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넥센 구단에는 5천만원, 나머지 8개 구단에는 2천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데 그쳤다.
사실 KBS가 넥센 구단의 내부 문서를 단독으로 입수해 이에 대해서 보도하기 전까지 KBO에서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도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또한 정운찬이 KBO 총재로 부임한 이후 발생한 채태인의 사인 앤 트레이드에 대해서도 뒷돈이 낀 것을 알아내지 못한 것을 보면, 과연 KBO가 구단과 선수 간의 FA 계약이 규정에 위반된 것인지를 자발적으로 조사할 것이며 으름장을 놓은 대로 무거운 처벌을 내릴지도 의문이다.
백보 양보해서 FA 상한제가 도입이 되고 계약 위반 시 KBO의 강경 대응도 제대로 이루어진다고 해보자. 모든 구단이 같은 금액(4년 80억)을 제시한다고 가정한다면, 과연 선수는 무엇을 보고 FA 계약을 체결할 것인가? 더 좋은 환경의 구단으로 이적하려 할 것이다. 때문에 지방 구단이나 비인기 구단은 돈이 있어도 선수 영입에 번번히 실패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야구 커뮤니티에서는 '환경 보고 이적하겠네', '특정 구단에만 선수 공급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냐' 등등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그 때 KBO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몇 년 전 FA 계약 금액에 상한을 둠으로써 거품 문제를 해결(?)했던 것처럼, '00 구단은 올 해 A급 선수와 FA 계약을 할 수 없다'등의 규정을 만들어 이를 막아낼 것인가?
2018년부터 KBO 총재자리에 앉게 된 정운찬 前 국무총리는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 마이애미 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그리고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따낸 분이시다. 이러한 위인께서 어떻게 'FA 몸값 폭등을 막기 위해서 선수들이 특정 금액 이상을 벌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생각을 현실로 만드려 하는가.
FA 상한제가 과연 제대로 이뤄질 것인지, 그리고 제대로 이뤄질 경우의 부작용은 어찌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 제쳐두자. 애초에 FA 상한제는 모 기사에서 입장을 밝힌 한 관계자의 "시장경제 논리와 맞지 않는 탁상 공론에 가깝다. 선수들의 정당한 경제 활동을 막는 처사"라고 지적한 만큼 말이 안 되는 것이다. 현재 한국 프로야구의 FA 시장이 과열된 양상을 띠는 이유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몇 년 사이에 1군 리그에 참여하는 프로 구단이 둘이나 늘어난 반면, 아마야구 인프라는 이에 비례하는 폭발적인 발전이 없었다. 결국 선수의 수급이 부족해져서 1군급의 기량을 갖지 않은 선수들이 1군 경기에 나오고, 구단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들 구단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해당 포지션의 FA 선수나 외인 선수에게 많은 금액을 주고 데려온다. 이러한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 공급을 조금이라도 증가시키고자 KBO에서도 FA 취득 조건을 완화하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무작정 FA 최대 금액을 80억으로 제한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오죽하면 '정운찬 총재가 그저 대기업 눈치를 보며 구단 좋은 일만 하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그만큼 이질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정책이다.
비시즌까지 시간은 아직 여유롭게 남아 있다.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인 정운찬 총재님이시라면, FA 상한제같은 말도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깨달음에 이마를 탁 치게끔 만드는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으시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