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겁.나.강.합.니.다!
글쓴이는 김정인, 이재승, 대니 돈을 지지하는 초특급 야알못이다. 그러므로 본 게시물을 너무 신뢰하며 읽지 않기를 바란다.
8회초, 1사 1루의 상황. 점수는 5점차. 설사 만루홈런이 터져 나온다고 해도, 경기를 뒤집기는 커녕 동점도 만들 수 없는 점수차였다. 4번타자 박병호가 루킹 삼진으로 물러나면서 분위기는 더욱 더 가라앉은 상황. 5번타자 고종욱의 타순에서, 장정석 감독은 벤치에서 대기중이던 샌즈를 대타로 내세웠다. AG 브레이크 이전에 샌즈의 모습을 한 번이라도 점검해보겠다는 의미였기 때문에, 안타를 치지 못한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관중석의 넥센 팬들은 우렁차게 '샌즈 홈런'을 외쳐댔다. 여기서 홈런이 나온다면 3점차. 최근 11연승 기간동안 넥센의 타자들이 보여준 놀라운 모습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새들이 지저귀고 꽃이 피어날 것만 같았던 아름다운 날의 저녁. 팬들의 호응에 힘입어 의지가 가득 차오른 샌즈는, 상대팀을 지옥에서 불타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풀카운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샌즈의 첫 타석에서의 결과는 2유간을 강하게 꿰뚫는 중전 안타. 비록 후속 타자 임병욱이 병살타를 치면서 데뷔 첫 득점에는 실패했지만, 올 시즌 후반기에 샌즈가 영웅군단의 큰 힘이 될 것임을 암시하는 타석이었다. 이후 수비 이닝에서 보여준 모습까지 종합해보면, '샌즈는 확실히 기대가 되는 선수'이다.
단순히 첫 타석에서 안타를 때려냈기 때문에 기대를 하는 것이 아니다. 안타를 때려내기까지의 과정히 상당히 좋았다.
제리 샌즈가 KBO 데뷔 첫 타석에서 상대한 투수는 김승회. 올 시즌에는 3점대의 방어율로 두산 베어스의 필승조로 활약하고 있으며, 어제 경기에서도 2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였다. 한 마디로 샌즈의 폼을 시험해볼 수 있는, 기량 좋은 투수. 안정된 제구력을 바탕으로 평균 140km/h대의 빠른 공과 여러가지 변화구를 구사하는, 전형적인 기교파 투수이다. 샌즈의 타석에서도 초구부터 컷 패스트볼, 2구째에 종으로 떨어지는 커브볼을 던지는 등 헛스윙을 유도하였으나, 샌즈는 이를 침착하게 지켜보면서 참아냈다. 3구째는 바깥쪽 구석에 날카롭게 들어오는 142km/h짜리 직구. 이 역시 신중하게 지켜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4구째에 들어온 비슷한 코스의 빠른 공에는 배트를 휘둘러 보았지만 헛스윙이 되었다. 5구째는 제구가 되지 않아서 스트라이크존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날아간 공. 이렇게 풀카운트가 되었고, 6구째에 포수의 요구보다 조금 더 몸쪽으로 들어간 커브를 그대로 받아쳐서 중전 안타를 만들어내었다.
마이너리거 시절에도 장점으로 언급 되었던 좋은 선구안을 그대로 보여준 경기였다. 2구째의 커브를 움찔하며 참아내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안타를 만들어낼 때의 타구는 미국에 있던 시절 거포 유망주라고 불리던 모습이 어디 안 갔다는 것인지, 상당히 빠른 속도로 굴러가며 2유간을 가볍게 빠져나갔다. 한 타석밖에 보지 못했기 때문에 섵부른 판단은 금물이지만, 그래도 좋은 투수를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준수한 데뷔 무대라고 생각할 만했다.
개인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던 것이 수비였다. 9회초 두산 베어스의 공격 때 우익수로 들어가 1이닝을 소화한 샌즈는, 선두 타자 조수행의 파울라인을 따라 날아간 타구를 재빠르게 달려가서 원바운드로 처리한 후 중계 플레이를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100kg의 거구라고 믿기 어려운 민첩함과, 코너 외야수를 보기에 적합한 강견을 보여준 퍼포먼스였다.
제리 샌즈는 마이너 리그에서 뛰던 시절부터 수비에서 높은 점수를 받던 선수였다. 이번 시즌에는 주로 좌익수나 1루수로 출장하면서 수비 능력이 많이 떨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을 사기도 했으나, 적어도 어제 경기에서 보여준 모습만 봤을 때에는 안심하고 코너 외야수 자리를 맡겨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어깨만 좋을 뿐, 극악의 수비 기본기로 인해 넥센 팬들의 속을 썩이곤 했던 브래드 스나이더, 대니 돈, 마이클 초이스와는 다른 편안함을 누리게 해줄 선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지난 시즌 후반기에만 17홈런을 몰아치며 올 해 박병호와 함께 중심타선에서 활약해주기를 기대 받았던 마이클 초이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인성 부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년차를 맞이하면서 자신의 기량만으로 KBO 리그를 정복하기에는 뚜렷한 한계를 보였고, 다린 러프처럼 코칭 스태프의 조언을 수용해 타격 폼을 수정할 기회 또한 있었으나 본인이 메이저리거 출신이라는 이유로 자신은 슬로우스타터라는 되도 않는 변명을 하며 코치들의 조언을 거부하여 실망을 안겨주었다. 아름다운 이별을 했던 여타 다른 외인 선수들과는 달리, 자신이 방출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아무런 작별 인사 없이 훌쩍 떠나버리면서 마지막까지 아쉬움을 남긴 것은 덤이었다.
제리 샌즈는 인성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던 선수이다. 메이저&마이너 리그 시절부터 친화력, 인성 면에 있어서는 좋은 점수를 받았고, 본인 역시 KBO 리그에서 오래 야구를 할 생각이 가득하다. 넥센 구단 역사상 역대급 외인 타자가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쉽게 방출당한 마이클 초이스와는 달리,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오래오래 뛰는 선수가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