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능 前 총재의 뒤를 이어 제 22대째로 취임한 정운찬 신임 총재가 내세웠던 것은 '클린 베이스볼'이었다. 당장 정식 취임식을 갖기도 전이었던 1월 1일에 신년사를 통해 "지난해에 발생한 불미스러운 사건들을 냉정히 돌아보고, 상벌제도를 보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개선해 시행하고자 한다"고 밝힌 바 있었다.
이러한 발언은 겉으로 봤을 때에는 실제로도 잘 지켜지는 것처럼 보였다. 시범경기가 시작되기 전 스토브 리그 때부터 대표이사가 횡령 건 관련 소송에서 패배하는 등 불안불안한 조짐이 보이던 넥센 히어로즈를 주의 깊게 주시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고, 이후 넥센 히어로즈 관련한 사건사고에 대해 신속히 대응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이외에도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었던 넥센 히어로즈의 현금 트레이드에 대해 파해치기 위해 노력하고(아이러니하게도 KBO의 부정부패 또한 드러나고 말았지만), 시즌 초에는 심판의 스트라이크 판정에 항의하다가 퇴장당한 선수들에게 킹중갓고 징계를 내리는 등, 2018시즌 전반기가 끝나기 전까지만 해도 정말 숱한 일을 해왔다. 필자처럼 정운찬 총재를 달갑지 않게 보는 이들도 있었겠지만, 어쨌든간에 자신이 내뱉은 말을 지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지난 21일에 보도된 엠스플 뉴스의 기사를 통해, KBO는 여전히 '클린'과는 거리가 멀고, 겉으로만 클린 베이스볼을 외치는 이였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기사를 요약하자면 그렇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 입단한 프로야구선수가 지난 1월 훈련소에 있을 때 두 여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며 피소되었고, 군 검찰의 조사까지 받았다.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한 이 선수는 현재까지도 퓨쳐스리그에 정상적으로 출전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 넥센 히어로즈 소속의 야구선수인 박동원과 조상우가 성폭햄 혐의로 신고를 당했다. 이 두 선수는 신고받은 당일날 오전에 소속 구단과 실명이 모두 밝혀졌고, KBO에서 즉시 '사실관계가 명확히 소명될 때까지 KBO 리그 참가 자격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피해 여성들에 대한 2차 피해를 우려"한다는 이유였다. 만약 무혐의가 인정된다 할지라도 팀의 분위기를 해쳤으며 KBO의 품위를 추가 징계를 받을 확률이 높다. 박동원과 조상우에게 강한 징계를 내렸다고 징징대는 것이 아니다. 당시 KBO의 대응은 신속했으며, 아직 사실관계가 명확히 밝혀진 게 없지 않느냐는 입장 또한 존재하지만 개인적으로 합당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상무 피닉스에서 활동중인 '그 선수'에게는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정금조 KBO 클린베이스볼센터 사무차장보는) A 선수가 계속 퓨처스리그에 출전하는 것에 대해선 "A 선수가 군에 있어 '구단 소속 선수'로 보기 어렵다. 군 보류 선수다. 출전 여부에 대해선 상무에 물어봐야할 거 같다. 상무 같은 곳이 이런 사안에 대해 더 엄격하지 않나. 군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출전 여부와 제재는) 상무에서 판단할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KBO는 아직 사실파악이 100%가 된 게 아니라 대기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 '성폭행 혐의' 선수, 2군 활약중... 박동원, 조상우와 형평성 논란 中
이에 대해서 KBO 측은 상무 야구단 소속의 '그 선수'가 성폭행 혐의로 군 검찰 조사를 받는 것은 맞으나, 현재는 프로구단 소속이 아닌 상무야구단 소속이기 때문에 출전 여부는 상무 야구단이 결정할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는 과거 사례를 들춰보면 설득력이 떨어지는 말이다. 2016년 승부 조작 사태가 터졌을 때, 상무 야구단 소속이었던 문우람은 KBO로부터 '리그 참가활동 정지'라는 징계를 받았다. '군 보류 선수 신분이지만 퓨쳐스리그도 KBO 담당인 만큼, 참가활동 여부를 판단할 권한은 KBO에 있다'는 이유였다. 결국, 현재 KBO가 하고 있는 변명은 당연하게도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상무 야구단 관계자 역시 "퓨쳐스리그 운영자가 KBO다. 퓨쳐스리그 선수의 제재를 결정하는 것도 KBO고, 지금까지 KBO 처분을 따랐는데 지금 와서 '상무 책임' 운운한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발끈했다.
이러한 사태가 일어나는 이유는 명백하다. 크보가 말하는 '클린 베이스볼'이라는 것은 결국 "범죄 없는 깨끗한 KBO"가 아닌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일이 없는, 구설수 없는 KBO"이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비슷한 수위의 문제를 일으킨 선수가 여럿 있어도, 일이 유야무야 잘 덮어진 선수는 징계 하나 없이 넘어가지만 언론에 일파만파 퍼지는 등 논란이 일어나면 중징계를 내리는 등의 이중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이러한 KBO 리그가, '야 일 잘하네~'라는 말을 듣는 꼴은 죽어도 못 보겠다.
더불어서 넥센 히어로즈 관련 사건사고가 일어나면 삼일밤낮을 기사를 써대면서, 이번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사건도 없었다는 듯이 입 닫고 있는 스포츠 언론사들도 참 치졸하고 더럽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이들이 '어느 구단' 소속의 '어느 선수'인지 몰라서 기사를 안 내는 것일까? 최초 보도를 한 엠스플 뉴스야 '인권보도준칙 성폭력 범죄보도 세부기준을 준수'한답시고 어디인지 직접 밝히지는 않았지만, 야구 관련 방송만 봐도 '아! 야구 관계자들은 다 알고 있구나!'하고 느끼고 팬들도 알음알음 알게 되는 이 일에 대해서? 조 모 선수와 박 모 선수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다만 구단에 따라 가려서 기사를 내겠다는 건지, 거짓말처럼 잠잠한 국내야구 뉴스란의 현 상황은 웃기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