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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거는 어떻게 KBO리그 8푼 타자가 됐나

2025 키움 히어로즈 대체 외국인 타자 - 스톤 개랫

by 채성실

키움 히어로즈가 대체 외국인선수로 영입한 스톤 개랫(Stone Garrett)이 KBO리그에서의 첫 3경기 동안 8푼 3리의 타율을 기록했다. 개랫은 12일 고척 NC전부터 15일 잠실 두산전까지 나흘 동안 14타석에서 단 하나의 안타만을 쳐냈다. 볼넷 두 개를 얻어 나갔지만 OPS(출루율+장타율)은 .226에 불과하다.


개랫은 키움의 기존 외국인 타자 루벤 카디네스가 장기 부상을 당해 영입된 선수다. 6주 동안 한국에서 뛰는 대가로 3만 5천 달러(약 4751만 원)를 받는다. 외국인 선수치고는 저렴한 몸값이다. 풀타임으로 활약한다 해도 2억 원이 채 안 되는 돈을 받는 셈이기 때문이다. 다만 첫 3경기 동안의 모습은 지금 받는 연봉조차 아까운 것 역시 사실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불과 2년 전 이맘때만 해도 개랫이 KBO리그에 결코 올 일이 없던 선수였다는 점이다. 개랫은 2023년 메이저리그(MLB) 워싱턴 내셔널스의 주전 외야수였다. 89경기 동안 9개의 홈런을 치면서 2할 6푼 9리의 타율과 .801의 OPS를 기록했다. 사실상 첫 풀타임 시즌이었기에 더욱 의미 깊은 성적이었다. 과장 좀 보태서 조시아 그레이, 맥켄지 고어, C.J. 에이브람스와 함께 꼴찌 팀의 미래를 받치는 기둥이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개랫은 KBO리그의 최하위 팀에서도 주전 외야수 자리를 보장받기 어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과연 어떤 변화가 빅리그에서도 통하던 타자를 180도 다른 모습으로 뒤바꿔놓은 것일까?




1750082194.jpg 2023년, 발목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의 스톤 개랫은 '라인 드라이브 타구를 양산할 수 있는 타자'였다.(사진 : 워싱턴 포스트, 자료 : 베이스볼 서번트)

개랫이 최고의 한 해를 보냈던 2023시즌의 타격 퍼포먼스를 보다 면밀히 살펴보자.


당시의 개랫은 엄청난 근육을 바탕으로 강한 타구를 양산하는 타자였다. 평균 타구 속도(91.1mph·146.6km/h), 하드힛 비율(95마일 이상의 타구 비율·48.4%) 모두 MLB 기준으로 평균 이상이었다.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도 '힘' 하나만큼은 상위권에 속하는 타자였던 셈이다.


개랫은 강한 타구를 장타로 이어질 수 있는 발사각도로 쏘아 올릴 줄 알았다. 개랫의 2023시즌 타구 평균 발사각도는 17.3도다. 앞서 살펴봤듯 그가 방망이에 맞춘 공은 빠른 속도로 날아갔으니, 라인드라이브 타구의 조건(발사각 10~25도·타구 속도 90~110mph)을 정확히 충족했던 셈이다. 실제로 당시 개랫의 LA Sweet-Spot %(이상적인 각도의 타구를 만들어내는 비율) 또한 37.6%로 리그 평균 이상이었다.


강점이 명확한 만큼 약점도 뚜렷했다. 69.5%의 컨택률은 배트에 공을 맞추는 재능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수준이었다. 컨택이 아쉬우니 유인구에 곧잘 방망이가 따라 나갔고(Chase % 33.6%), 나쁜 공에 방망이가 나가니 헛스윙도 많았다(Whiff % 32.6%). 다만 부족한 컨택은 평균 이상의 선구안으로 어느 정도 만회할 줄 알았다(BB % 9.6%).




GtjsbOUbQAEeQFR.jpg 발목 부상 이후의 스톤 개랫은 '라인 드라이브 타구를 만들 수 없는 타자'로 전락했다. (사진 : Curly W Live, 자료 : 베이스볼 서번트)

2025년, 개랫이 마이너리그 트리플A에서 만들어낸 타구의 일부를 추적한 자료다.


개랫의 강점인 강한 타구가 매우 낮은 발사각도로 날아갔다. 10도 미만의 발사각을 갖는 타구는 전부 땅볼로 이어진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제아무리 강한 힘으로 빠른 타구를 만들어낸다 할지라도, 그 공이 하늘이 아닌 땅을 향해 날아가면 무의미해진다. 개랫이 2025년에 무수히 많이 생산한 '낮은 발사각도의 빠른 타구' 역시 그랬다.


10도 이상의 발사각을 갖는 뜬공 타구의 대부분이 느린 속도로 날아갔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빅리그에서 맹활약을 펼치던 시절의 개랫은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뜬공을 만드는 데 능했다. 하지만 마이너리그에서 방출되기 직전의 개랫은 그렇지 않았다. 마치 뜬공을 치기 위해서는 의식하고 방망이를 퍼 올려야만 하는 선수처럼 스윙했다.


개랫의 KBO리그에서의 첫 3경기를 복기해보자. 개랫은 데뷔전에서 무시무시한 속보의 땅볼 타구 두 개, 그리고 느릿하게 날아가는 우익수 뜬공을 만들어냈다. 두 번재 경기에서도는 빠른 땅볼과 내야수 뜬공을, 세 번째 경기에서는 중견수 뜬공과 내야수 뜬공, 그리고 빠른 땅볼 타구 2개를 쳐냈다. KBO리그는 마이너리그 트리플A보다 한 계단 낮은 수준의 리그로 평가 받는다. 그러나 개랫은 트리플A에서와 동일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만일 개랫이 내셔널스 산하 마이너 트리플A 구단에서 방출되는 대신 더블A로 강등됐더라도, 혹은 그의 찬란했던 커리어에 혹한 일본이나 대만이 러브콜을 보냈더라도, 그는 같은 모습을 보여줬을 가능성이 높다. 개랫의 부진은 '리그 수준'이 아니라 '선수 본인의 타격 매커니즘'에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Honeycam 2025-06-16 19-54-34.gif 스톤 개랫의 2023년 타격폼. (이미지 출처 : MLB.COM)

그렇다면 개랫은 어째서 180도 다른 타자로 변모한 것일까? 2023년 개랫의 타격폼을 살펴보자. 개랫은 임팩트 순간 왼발로 땅을 툭 치는 토탭을 하며 임팩트를 주고, 동시에 허리를 회전하면서 파워를 극대화하는 방식의 타격을 보이고 있다. 여기서 핵심은 '왼쪽 다리'다. 살짝 띄워 놓았던 왼쪽 다리로 지면을 박차는 타이밍과 몸통을 회전하는 타이밍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NYPICHPDPICT000026675970.png 펜스 플레이 도중 왼쪽 발목이 꺾이는 부상을 당했던 스톤 개랫. (사진 출처 : AP통신)

공교롭게도 2023년 최고의 한 해를 보내던 개랫의 발걸음을 멈춰세웠던 것은 '한 달을 병실에서 꼬박 쉬어야 할 정도로 심각한 다리 부상'이었다.


2023년 8월 23일 수요일, 뉴욕 양키스와의 경기에서 우익수로 선발 출장한 개랫은 7회말 D.J. 르메이휴의 타구를 잡기 위해 외야 펜스를 올라탔다. 이 과정에서 스파이크의 징이 펜스에 박혀 착지에 실패하는 바람에 발목이 바깥 방향으로 돌아가는 부상을 당했다. 구급 차량에 실려 나간 개랫은 MRI 검사 후 발목과 종아리를 통째로 수술받으면서 시즌아웃 됐다.


개랫은 2023년 8월의 부상 이후에도 동일한 스탠스로 타격에 임하고 있다. 개랫은 여전히 근육질의 몸으로 '힘이 실린 타구'를 만들어낼 줄 안다. 하지만 이전처럼 '힘이 실린 타구'를 '10~25도 사이의 발사각'으로 날려 보내지는 못하고 있다.


신체적 문제가 아니라면 생체 리듬 등 밸런스가 흐트러졌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사소한 부상을 계기로 타격 밸런스가 흐트러져 수년 간 고생하는 타자는 의외로 적지 않다. 다만 개랫은 운이 없었을 뿐이다. 빅리그 구단이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기에는 메이저리그에서 충분한 성과를 쌓아올리지 못했다. 곧 서른이 되는 20대 후반의 많은 나이 또한 걸림돌이 됐을 테다(사실 내셔널스는 이미 2년에 가까운 시간을 기다려주기는 했다).




929ce95c-c82e-45a2-9f3c-f392ec55a4d3.jfif 개랫의 군살 하나 없는 근육질의 몸은 그가 한국에서의 시간을 단 1초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으려 함을 보여준다.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어떤 점에서 볼 때, 개랫은 매우 긍정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는 애디슨 러셀처럼 이른 나이에 에이징 커브가 찾아와서 부진한 것이 아니다. 야시엘 푸이그처럼 부상에 신음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왼쪽 다리를 부상당하기 전의 타격 밸런스만 되찾으면, 그가 KBO리그에서의 첫 3경기 동안 만들어낸 무수한 땅볼은 모조리 장타로 둔갑할 것이다. 마이너리그 8푼 타자는 빅리그 주전 외야수의 기량을 되찾을 것이다.


유일한 문제는 시간이다. 대체 외국인선수인 개랫이 KBO리그에서 뛸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5주일이다. 8월 이전에 구단이 부상 명단에 있는 카디네스를 방출하고 싶어 할 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이지 못한다면, 그의 잃어버린 타격 밸런스 되찾기는 멕시코에서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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