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경엽부터 허삼영까지. 7년에 거쳐 무명 야구인들에게 열린 감독의 길
삼성 라이온즈가 허삼영 전력분석팀장을 팀의 제15대 감독으로 선임했다. 고교 시절 강속구 투수로 이름을 날렸다고는 하지만 프로 무대에 입문하고 나서 남긴 성적은 통산 4경기 2.1이닝 평균자책점 15.43이 전부다. 짧은 선수 생활을 그만둔 이후 1996년 훈련지원 요원으로 입사했고, 1998년부터 감독 선임 이전까지 프런트에서 일해왔다. 전력분석팀에서 이름을 날렸다고는 하지만,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일체의 현장 경험은 없었다. 이른바 뼛속부터 철저한 무명 출신이다.
무엇보다 삼성 라이온즈가 이러한 인물을 감독으로 선임했다는 점이 굉장히 파격적이다. 삼성이 어떤 팀인가. 당장 올시즌 포함 3년간 사령탑을 맡았던 김한수 감독부터 시작해서 류중일, 선동열, 김응용을 거슬러 올라가 제10대 감독인 김용희(2000년)까지. 20년에 가까운 세월을 스타 출신 인사로 꾸렸던 팀이 아닌가. 제9대 감독 서정환은 선수 시절 성적은 평범했으나 해태 타이거즈에 몸담으며 수많은 우승을 경험한 인물로, 삼성이 우승을 위해 전략적으로 선임했던 것이었다. 그 이전 감독인 백인천은 말할 것도 없다.
홍준학 단장은 이번 감독 선임에 대해 "현재 삼성을 가장 잘 아는 분이다. 각 선수들의 장단점을 잘 안다. 다른 구단에 대해서도 잘 아는 분이다. 그런 점들이 낫고 효율적이고, 이길 수 있는 야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거짓말로 보이지는 않는다. 스포티비 뉴스 박성윤 기자는 트위터를 통해 "라이온즈가 2018시즌부터 라이온즈 파크에 트랙맨 시스템을 도입하고 이후 운용하는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고 전했다. 모 구단 관계자는 "야구의 모든 것을 데이터화하실 분이다. 다른 프런트와의 피드백이 유연하고, 데이터가 야구에 많은 지분이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하시는 분이다"라고 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 전까지만 해도 결코 삼성 구단의 신임 감독 후보로 거론되지 않았을 인물이다. 제아무리 현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던 인물이라고 해도 팬들에게는 결국 무명인일 뿐이다. 스타 플레이어 감독이 실패할 시에는 성적 부진의에 대한 화살이 해당 감독에게 쏠리지만, 이러한 인물이 실패할 시에는 구단이 고스란히 책임을 져야만 한다. 늘 확실한 길을 걸어왔던 삼성 구단이 현역 통산 4경기 2.1이닝 방어율 15.45의 성적을 기록했던 인물을, 감독으로 선발했을 것이라 예상하기는 어렵다. 아니, 당시에는 다른 모든 구단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는 홍준학 단장의 발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홍준학 단장은 "새로운 길을 걸으려면 부담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키움이 좋은 사례를 남겼다"고 이야기했다. 논리를 조금 비약하자면, 장정석 감독이 2018년에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을 시 지금의 허삼영 감독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무명 선수 출신 프런트 인사 장정석 감독의 성공이, '현역 시절 어떠한 선수였나'라는 감독 선임 조건 하나를 사라지게 만든 것이다.
무명 야구인의 감독 시대를 연 혁신적인 인물은 누구일까. 넓게 보면 2013시즌부터 2016시즌까지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의 감독으로서 활약했던 염경엽 현 SK 와이번스 감독을 들 수 있다. 지금이야 어느 팀에 가도 극진한 대우를 받을 스타 감독이지만, 당시에만 해도 넥센의 염경엽 감독 선임은 KBO리그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2012년만 해도 스타 플레이어가 은퇴 후 코치나 감독 자리를 맡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2013시즌 당시 넥센을 제외한 8개 팀은 김진욱(두산), 김시진(롯데), 김응룡(한화), 선동열(KIA), 김기태(LG), 김경문(NC), 이만수(SK)를 감독으로 두고 있었다. 이 중 김경문 감독은 선수 시절 성적이 조금 떨어질지언정 베이징 올림픽 당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을 이끌었던 감독이었고, 나머지 일곱 명은 선수 시절 리그를 평정했던 대스타였다. 반면 염경엽 감독은 선수 시절 통산 타율이 1할대에 불과한 철저한 무명 선수였다.
그런데 그런 '무명 출신' 염경엽 감독이 감독 부임 첫해부터 만년 하위권 팀을 창단 첫 포스트시즌 무대에 데려가고, 이듬해에는 4년 연속 통합 우승을 노리던 삼성과 한국시리즈에서 대접전을 벌이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LG에서 정치질하다 쫓겨난 사람', '꽤 괜찮은 주루 코치' 정도의 인식만 있던 남자가 '염갈량'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심지어 2015년에는 삼성을 왕조의 자리에 올려놓은 류중일 감독과 국가대표팀 감독 제의를 받는 경지에 이르렀다.
'멘도사 라인'의 반란은 수십 년째 고착화돼있던 KBO리그의 수뇌부에도 영향을 미치는 듯했다. 두산 베어스는 2014년에 송일수, 2015년에 김태형을 선임하며 프런트 야구를 시도했다. 두 명 모두 현역 시절 스타 플레이어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롯데 자이언츠는 2015시즌 이종운 전 경남고등학교 감독을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했다. 당시 롯데 프런트는 '델파이 기법을 통해 감독을 선발했다'고 이야기했는데, 이는 2년 전 이장석 대표가 면접을 통해 염경엽 감독을 선임했다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는 듯했다.
그렇다면 과연 염경엽 감독의 성공이 KBO리그의 감독 선임 기준을 뒤흔든 역사적인 인물인가.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구단들은 여전히 감독을 선임하는 데 있어 보수적인 모습을 보였다. 2014년 김기태 LG 트윈스 감독이 자진 사퇴하자 LG가 양상문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을 차기 감독으로 낙점하고, 기아는 그 김기태 감독을 2015년 차기 감독으로 선임했으며, 같은 해 한화 이글스는 김응룡 감독의 후임자로 김응룡보다 한 살 더 많은 김성근 감독을 모셔왔다.
10개 구단이 다른 팀에서 활약했던 감독을 데려오는, 이른바 '돌려막기식 감독 선임'은 그칠 줄 몰랐다. 지난 비시즌에는 감독을 교체한 4개팀 중 두 팀이 경력자(염경엽, 양상문)를 지목했다. 결국 염경엽 감독의 성공은 리그에 파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그저 '모두가 알아보지 못했을 뿐, 염경엽이 뛰어난 인물이었다'라는 결론으로 그쳤다.
본격적으로 무명 감독 전성시대를 연 인물은 바로 장정석 감독이다. 염경엽 감독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파격적인 경력을 자랑했는데, 현역 은퇴 후 지도자 경력이 전무했던 것이다. 염경엽 때와 달리 면접을 통해 준비된 인물을 선발한 것도 아니었다. 장정석은 그냥 은퇴 후 현대-넥센을 거쳐 구단 프런트에서 근무하다가 갑작스레 감독이 되었다. 이전의 무명 출신 감독들은 나빠 봐야 '듣도보동(두산 김태형, 듣도보도 못했다는 말에서 유래)' 정도의 별명이 붙었던 반면, 장정석은 감독 커리어 시작과 함께 밪동(바지사장+감독)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시작은 불안했다. 2017시즌 전반적으로 미숙한 모습을 보이며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팀을 1년 만에 하위권으로 추락시켰다. 외인 선수의 부진, 주축 선수들의 트레이드, 구단주의 잡음 등 여러 문제 또한 존재하기는 했다. 하지만 장정석 감독이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선수 기용을 한 것도 사실이었고, 총력전을 펼치겠다던 후반기부터 팀이 침체기에 빠지며 7위로 시즌을 마감한 것 또한 사실이었다. 선수들이 감독을 따르지 않는다는 등의 악소문도 돌았다. 역시 '완전 프런트 인사'를 감독으로 선임하는 것은 무리수인가 싶었다.
그런데 이듬해부터 달라진 모습을 보이며 자신에 대한 평가를 뒤집는 데 성공했다. 주축 선수들이 모조리 부상으로 이탈한 상황에서 오히려 선전하며 팀을 1년 만에 다시 가을야구로 보냈다. 지도자 인생 첫 포스트시즌 때는 염경엽 감독 당시 한 번도 해내지 못했던 창단 첫 업셋(준플레이오프, 상대팀 한화 이글스)에 성공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우승팀 SK와 명승부를 펼쳐 야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올해는 두산, SK와 마지막까지 1위 싸움을 벌였다. 비록 마지막 순간 뒷심 발휘에 실패하며 한끗 모자란 3위에 그치고 말았지만, 팬들은 작년 가을에 보여준 저력을 떠올리며 창단 첫 우승을 기대하고 있다.
무명 선수 출신 감독의 성공에 이어, 지도자 경력이 전무한 인물까지 성공했다. 두 번의 성공은 본격적인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2018년 시즌 도중 김경문 감독이 사퇴하는 바람에 감독 대행을 구하고, 이듬해 신임 감독을 선임해야 했던 NC 다이노스가 그 예시이다.
18시즌 중반부터 감독 역할을 수행했던 유영준 전 감독 대행은 아예 프로 경력이 없었던 인물이다.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해 실업 야구계에 몸을 담았지만, 그곳에서도 별다른 활약은 없었다. 현역 은퇴 후 약 20년 동안 아마야구계에 몸담았고, 이후에는 NC에서 프런트 생활을 해왔다. 이동욱 현 NC 다이노스 감독은 장정석 감독보다 현역 시절 경기 출장 수가 적은 인물이다. 은퇴 후 다양한 구단을 거쳐 가며 수비 코치로 활약했지만, 못하는 코치는 욕먹고 잘하는 코치는 묻히는 수비 코치 보직상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유영준 감독 대행이 창단 첫 꼴찌에 대한 모든 책임을 떠안으며 여러 문제가 한꺼번에 터진 팀을 추스렸고, 이동욱 감독이 재정비된 팀을 이끌어 1년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시즌 중반에는 초보 감독으로서의 한계를 보이며 팬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적극적인 데이터 활용과 신예 코치들의 도움 속에 성공적인 첫 해를 보냈다. 이는 무명 출신 감독이 성공하는 일이 히어로즈 구단만의 마술은 아님을 보여준 것이기도 했다.
10년이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감독의 조건'에 대한 많은 인식이 달라졌다. 팬들은 더 이상 스타 야구인의 감독 선임을 무작정 반기지 않는다. 오히려 이종범, 이승엽 같은 레전드들이 차기 감독으로 언급되면 이들의 이미지가 손상될 것을 우려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외야수 출신 감독은 망한다', '그래도 현장에서 오래 일해온 사람이 감독을 맡아야 하지 않겠느냐' 같은 통념도 깨졌다.
염경엽, 장정석, 김태형, 이동욱 같은 인물들의 성공은 '선수 시절 어땠나'라는 감독 선임 조건 하나를 아예 없애버리기도 했다. 프로 커리어라고는 통산 네 경기 출장이 전부인 허삼영 팀장이 감독으로 선임된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에 프로 커리어가 전무한 젊은 감독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겉으로만 명장이고 속은 올드스쿨 그 자체인 감독들이 아닌, 팬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을지언정 선진 야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인물들이 감독을 맡는 시대가 왔다. 어쨌든 2020년대의 한국 프로야구는 '낭만'이라는 키워드로 대표됐던, 혹사가 투혼이라는 단어로 자연스레 포장됐던 2000년대~2010년대의 프로야구와는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다. 앞으로의 KBO리그가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