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관의 의원면직 기록 (3)
그 이후에는 기획국으로 인사이동을 했다. 정책자문위원회 운영, 정책실명제 등 부처 내 정부 혁신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내 업무는 비유하자면 마케팅 같은 것이었다. 공공사업에 새로운 기술을 도입했다던가, 조직 내 일하는 방식을 효율적으로 개선했다던가 하는 성과들을 유관 부처들과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 평가를 위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행정안전부에서는 매년 각 부처에서 제출한 성과 보고서를 기반으로 각 부처의 업무 성과를 평가하는데 그 보고서의 5가지 부문 중 하나를 담당하게 된 것이다. 이왕 보고서를 담당하게 된 이상, 좋은 평가를 받고 싶었다. 대충은 없다.
보고서는 어디서 '뿅'하고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이 네 도끼냐?'라고 묻던 산신령처럼 누군가 곱게 내 손에 쥐어주지도 않는다. 내가 만드는 것이다. 간부와 mz공무원 간의 간담회도 추진해야 하고, 우리 부처에서 잘한 일이 있으면 다른 부처 담당자분들을 모셔서 성과 공유회도 해야 하고, 전문가분들께 우리 부처의 방향을 묻는 자문회의도 해야 한다. 이런 행사들을 하다 보면 시간이 정말 훅훅 간다.
올해 우리 부처가 한 사업 중에서 어떤 성과를 부각할 것인지 우수사례를 찾아내는 것도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 사실 사업 부서는 기획국과 엮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업 운영만 해도 바빠죽겠는데, 새로운 서식에 맞춰 성과를 작성해달라거나 이 사례가 멋진 것 같으니 간담회 주제로 쓰자고 하면 당연히 반가울 리가 없다. 그래도 얼굴에 철판을 깔고 여기저기 부탁을 많이 드렸다. 그 게 내 일이었으니까. 숫기가 정말 없는데 그 시기에는 노력형 뻔뻔함을 갖췄던 것 같다.
당연하지만, 여전히 초짜 티를 팍팍 냈다. 깔끔하고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계속 허덕였다. 아직 나 스스로가 부족하고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데 계속해서 여러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하다 보니 '저 사람도 내가 바보라고 생각할까'라는 자괴감 섞인 생각이 자주 들었다. 훗날 든 생각인데 애초에 행정이란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알기 어려운 것 같다. 그런데 이제 막 발령을 받은 사무관은 오죽했을까. 그런데 그때는 더 빨리 성장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답답하고 원망스러웠다.
다행히 난 인복은 있다. 이번에도 유능한 주무관님들과 과장님이 곁에 계셨다. 초짜 사무관에게 베테랑 주무관님은 빛과 소금 같은 존재이다. 모르는 게 많아서 주무관님께 이것저것 질문을 많이 했는데 그럴 때마다 주무관님은 싫은 내색도 않으시고 적극적으로 알려주셨다. 초보 사무관이랑 일하는 것이 많이 답답하고 화날 수도 있는데 그런 내색도 않으셨다. 주무관님과 연말 사무실에서 물주머니를 품에 쥐고 함께 보고서를 쓰며 전우애를 다지던 것은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과장님께서도 내가 다른 과와 협업할 일이 있으면 '그 과에 아는 사람은 있어?'라고 물어보시며 먼저 협조 요청을 해주기도 하셨다. 그럴 때면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함께 협업해 주신 부서 내 관계자분들도 겉으로는 이런 걸 왜 해야 하냐면서 투덜거리셨지만, 막상 일을 할 때에는 언제나 적극적이고 꼼꼼하게 임해주셨다. 이렇게 따뜻한 분들의 도움을 받은 덕분에 그 해 우리 부처의 혁신업무 성과는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 결과를 내 눈으로 확인했을 때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것 같은 안도감과 행복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