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관의 의원면직 기록 (4)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지만 길지 않은 공직생활동안 점차 지쳐갔다. 중앙부처의 중간관리자라는 옷은 반짝거리고 탐나는 옷이긴 하지만 내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커졌다. 행정은 조직 내외의 여러 사람들이 협력해서 퍼즐을 맞추는 것과 비슷하다. 하나의 정책이나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민간 사업체,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소속 지방청 등 다양한 사람들의 논의와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중앙부처 사무관'이라는 퍼즐은 실무자이자 중간 관리자로서 사업이나 정책이 원활히 추진될 수 있도록 통합하고 연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서 빠르게 문제도 해결할 수 있어야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갈등을 조율할 수도 있어야 한다.
나는 이런 것을 잘하지 못했다.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도, 갈등을 조절하는 것도 내가 잘 못하는 분야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지도 못했다. 회사에서 자리 하나는 차지하고 있는데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열심히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으니 매일이 가시방석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회사가 원하는 모양을 가진 퍼즐이 아니었고,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몹시 자괴감이 들었다. 나도 내 모양을 바꾸고 싶어서 이리저리 몸을 틀며 노력했지만 그럴수록 스스로가 더 불행해지기만 했다. 회사 안과 밖에서의 삶 모두 좀먹어갔다.
손에 잡은 것을 놓기 아까웠다. 사무관은 내가 스스로 놓아버리기엔 너무 좋은 조건을 가진 상대였다. 안정적 연봉, 정책을 다룬다는 자부심, 남들의 부러움 섞인 눈빛까지. 그리고 또 내가 이 직업을 갖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네모난 책상 앞에서 보낸 날들만 수 백일이고, PT면접이며 토론면접이며 어느 것 하나 쉬운 단계가 없었다.
부모님의 뒷바라지는 또 어떠했던가. 합격했던 날, 합격 소식을 듣고 행복해하시던 부모님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했다. 내가 지금 포기해 버리면 그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었다. 나만 이 회사에 잘 적응하면 나도, 부모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가 행복한데.
그러나 내 마음속에는 작은 불꽃이 있었다. 사실 나는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고 어딘가에서는 내가 가진 잠재력이 환영받을 거라고 믿었다. 분명한 것은 세상은 내가 살고 있는 네모난 정부청사보다 훨씬 넓다는 것이다. 수 천, 수 만 가지 직업이 있는데 그중에서 이제 난 겨우 한 가지 직업을 경험해 봤을 뿐이다. 이렇게까지 내 직업과 나의 궁합이 맞지 않는다면, 나의 첫 번째 직업 선택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원하는 것을 내 손에 쥐기 위해 아무리 힘들었어도, 그것을 쥔 손에 피와 고름이 가득하다면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내가 끝까지 놓고 싶지 않았던 것, 내 짧은 인생길의 가장 큰 성취였던 그 타이틀을 스스로 놓기로 했다. 의원면직. 원에 의하여 직을 면한다.
"과장님, 저 의원면직 하려고 합니다."
의원면직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과장님께 말씀드린 후에는 절차에 맞게 일이 진행되었다. 당연히 말리는 분들도 계셨고, 나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는 분들도 계셨다. 혼이 나기도 했다. 소식을 들었다며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안 되냐고 전화해 주시는 주무관님들도 계셨다. 그냥 모른 척할 수도 있을 텐데 직접 연락까지 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일하면서 늘 짐만 되었던 것 같은데. 의원면직 하는 과정 속에서 '그래도 내가 조직생활을 아주 엉망으로 한 건 아닌가 보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부족한 나를 받아주고 이해해 준 내 (구)조직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뿐이다. 그리고 내 시행착오를 더 나은 정책 마련을 위한 발판으로 삼지 못하고 조직을 떠나게 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청사에서 짐을 빼던 날은 날씨가 아주 맑았다. 구름 한 점 없었다. 청사 건물을 보며 울렁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짐은 다 싸들고 나왔지만 이후의 삶에 대해 보장된 것이 없었다. 이직할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어느 곳의 합격이 보장된 것도 아니었다. 두 손에 박스를 든 채로 청사 건물을 올려다보니, 방금 인공 파도가 지나간 풀장의 물처럼 가슴이 울렁거렸다. 새로운 세상에 스스로를 내던진 것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했다. 앞으로 어떻게든 내 삶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흰 종이에 써 내려간 사직서는 정부 청사 바깥세상을 향한 도전장이었다. 일종의 출사표이기도 하고 더 이상 울면서 하루를 보내지 않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기도 했다. 궁금해졌다. 내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일지. 먼 훗날 임종을 앞둔 호호백발의 내가 오늘을 후회하지는 않을지.
그러나 어느 유명한 외국인의 말처럼, 주사위는 던져졌다.
사직서는 접수되었다. 그렇게 나는 정부 청사 밖의 세상으로 나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