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관, 무슨 일을 하나요?

by 배키

사무관이었다고 말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이 동그래진다. 하지만 사무관이 무슨 일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다른 사람들은 상관없지만, 적어도 사무관이라는 진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사무관이 어떤 일을 하는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합격까지 들어가는 시간, 노력, 에너지를 생각한다면 당연한 처사다.


나는 표현력이 부족한 인간이니까 비유를 활용해 보도록 하자.



얼죽아 진흥 담당 사무관의 일상


당신이 '커피부처'의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진흥' 담당 사무관이라고 하자. 당신의 임무는 전 국민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기도록 하는 것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당신의 업무는 무엇일까?


얼죽아 진흥을 위한 정책 기획 및 보고, 예산 확보, 지자체 및 민간 대외 협의, 정책 성과 관리, 부처 협의, 상급자 보좌 등의 업무가 있다.


얼죽아 확산과 산업 활성화를 위해 '아이스 아메리카노 100대 카페 인증제' 사업을 실시하기로 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기획 보고서를 써서 윗분들께 보고를 드려야 한다. 당연하게도 한 번에 통과하는 행운은 거의 없다.


겨우 보고서가 통과되면 예산을 따내야 한다. 우리 부처 윗분들의 마음에 든 사업이라고 하더라도 기재부에서 필요 없는 사업이라고 해버리면 모두 헛수고이다. 얼죽아 확산이 얼마나 중요한지, 100대 카페 인증제가 얼마나 필요한 사업인지 기재부 사무관을 설득해 내야 예산을 얻을 수 있다.


예산을 땄다면 사업을 실행할 수 있다. '100대 카페 인증제'라는 제도가 있어도 국민들이 모르면 의미가 없으니 확산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같은 부처에 시너지가 날만한 과가 있다면 협력하기도 하고, 옆동네 '디저트 부처'와 협력하기도 한다.


지자체나 민간기업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애초에 국비 100% 사업은 기재부의 문턱을 통과하기 힘들기 때문에 국가와 지자체, 민간이 적절히 나누어 사업의 비용을 분담하는 식의 사업이 많다. 돈이 오간다는 것은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 지자체 커피 담당자, 민간업체 담당자들 모두 사업 관계자들이므로 중앙 부처 사무관이 원활히 사업을 시행하기 위해 반드시 주기적으로 연락하며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열심히 일을 해나가고 있는 어느 날, 국정감사가 열렸다. 국회의원이 "100대 카페 인증제가 실질적 효과도 없이 예산 낭비가 심한 것 아니냐"라고 우리 부처 장차관에게 질의를 한다. 그렇다면 그 대응자료는 누가? 당연히 내가 작성해야 한다. 예산 낭비가 아니고 사업 효과가 있다는 자료를 여기저기 물어보기도 하고 컴퓨터를 뒤지기도 하면서 어떻게든 만들어낸다.


이 모든 일들은 오로지 사업 '하나'에 필요한 루틴일 뿐. 보통은 사업 여러 개가 빙글빙글 돌아가기 때문에 얼죽아 진흥을 담당하는 사무관인 당신은 제 때 퇴근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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