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학도 예과생의 첫 실습, 갑자기 등짝을 까라고요?

첫 실습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by 배키

과연 삼십 대 신입생이 동아리에 들어가도 괜찮은가. 3월 한 달간 전국의 신입생들 사이에서 가장 큰 화두는 단연 동아리일 것이다.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친해지고 얘기를 나눠보고 싶은 마음은 나이를 가리지 않지만, 만학도가 그걸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조금 더 큰 용기와 탐색, 그리고 약간의 충동성이 필요하다.


다행히 과 특성상 나처럼 사회생활을 하다가 온 사람들이 여럿 있어서 나이 많은 사람들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하지만 동아리 내에서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행동할 권리가 있는 스무 살 언저리의 새내기들이 나 때문에 불편을 겪을까봐 관심 분야가 있어도 지원하기가 망설여졌다. 그렇다고 내가 넉살 좋게 먼저 다가가서 분위기를 풀어주는 친화력 좋은 성격도 아니니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괜히 지원했다가 "나이가 너무 많으셔서 부원들이 불편해할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이런 말을 듣는 건 아닌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렇게 답 없는 고민을 지속하며 만나는 사람마다 "너 무슨 동아리 할 거야?"라는 질문만 십수 번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만학도들도 관심 있는 분야를 찾아 하나둘씩 지원하는 것 같아서 나도 용기를 내서 지원을 하기로 했다. 원하는 동아리의 조건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내 관심 분야의 학술 동아리일 것, 둘째는 술을 많이 마시지 않을 것.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엽기 떡볶이를 시켜 먹으며 무슨 동아리를 할 것인지 꽤나 진지한 토론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한 친구의 강력한 설득에 넘어가서 척추정렬회복술을 배우는 학술 동아리로 마음이 급격히 기울었고, 약간의 충동성을 발휘하여 그 자리에서 바로 지원서를 넣었다.


감사하게도 동아리에서는 나이를 문제 삼지도, 면접을 통해 날 걸러내지도 않고 바로 합격시켜주었다. 동아리 활동은 간단했다. 대구에서 척추정렬회복술을 기반으로 치료를 하고 계시는 원장님께 강의를 듣고 우리도 직접 한의원에서 실습을 해보는 것이다. 동아리원 모두 함께 실습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설마 우리도 해볼 수 있는 건가?'하는 기대감과 설렘이 들었다. 보통 예과생들은 아직 배운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실습할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당일,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한의원에 들어섰다. 혹시나 '예과생들은 아직 무리니까 보기만 하세요'라고 하셔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까지 끝냈다. 병원 의자에 앉아 조금 기다리자, 진료가 모두 끝난 원장님이 나오셨고 간단한 설명과 함께 실습을 시작해 보자고 말씀하셨다. 야호. 나도 실습할 수 있다. 정말 귀중한 기회였다.


분홍색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조를 나눠 이동했다. 감사하게도 원장님 세 분 모두 동아리 실습 지도를 위해 시간을 내어주셨다. 실습의 첫 단계는 진단이었다. 진단을 잘못하면 치료가 진행될수록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정확한 진단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해 주셨다. 지금껏 동아리에서 들었던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서로의 척추 상태를 진단해 보기로 했다. 나를 이 동아리로 이끌어 준 친구가 용감하게 매트 위에 엎드렸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예기치 못하게 친구의 등을 보니까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이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신나게 훠궈를 먹다가 갑자기 진지하게 다 같이 친구의 등을 보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 웃겼다. 결국 원장님께 "앞으로 의료인이 될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렇게 장난스럽게 행동하면 안 돼요."라는 따끔한 주의를 들어야 했다.


먼저 시범을 본 뒤 나도 따라서 진단을 해보았다. '이건 친구의 등이 아니라 환자의 등이다'라고 최선을 다해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원장님의 지도에 따라 골반의 뒤틀림, 척추 모양 등을 짚어볼 수 있었다.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손끝의 감각에 집중해야 하니, 굉장한 집중력과 섬세함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장님께서 "자, 다음 사람"이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한 명씩 다 엎드려야 하는 거구나'라는 생각에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심정으로 내 등을 내보이며 엎드렸다. 이렇게 갑자기 친구들 앞에서 등을 까다니. 내 기준에서는 굉장히 큰 용기를 낸 행위였다. 친구들이 손으로 직접 내 척추를 쓸어내리며 진단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친구의 손가락이 내 목부분에 닿는 순간 '때 나오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복잡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 등짝을 앞에 두고 친구들과 원장님 사이에 진지한 대화가 오갔다. 한 시간 같은 십분이 흘렀다. 진단 실습에 할당된 시간이 다 되어 다음 진료실로 이동해야 했고, 그 덕분에 다른 친구들은 자신의 등짝을 비밀로 유지할 수 있었다. 대체 나는 왜 쓸데없이 이럴 때만 자발성을 발휘하는 것일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진료실을 나오며 친구들에게 물었다. 내내 머릿속을 빙빙 돌며 나를 괴롭혔던 그 걱정.


"혹시 때 안 나왔어?"


그다음으로는 골반과 목, 어깨, 척추 치료 방법을 배웠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원장님께서 시범을 보여주시면 서로 환자 역할, 한의사 역할을 맡아 따라 해보는 식이었다. 진단할 때에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으나 실습이 진행될수록 점점 몰입하여 사뭇 진지해졌다.


다리를 잡고 골반을 빼는 실습을 할 때에는 친구한테 "진짜 안 아파?"라고 몇 번을 물었다. 전혀 아프지 않다는 친구의 말에 자신감을 얻어 힘껏 무게중심을 뒤로하며 다리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뭔가 슥 빠졌다가 내 몸이 앞으로 딸려가며 다시 들어가는 느낌이 났다. 친구가 "헐 언니 뭔가 효과가 있는 것 같아"라고 해줬고, 원장님께 여쭤보니 그런 느낌이 들었다면 골반이 제대로 빠졌다가 들어간 것이 맞다고 하셨다. 이럴 수가. 내 첫 (무면허) 의료 행위(?)였다. 거리낌 없이 자신의 왼쪽 골반을 내어준 내 첫 환자, 룸메이트에게 감사를.


예기치 못하게 등짝을 공개하는 일이 발생하긴 했지만 첫 실습은 무탈히 끝났다. 아직 해부학도 제대로 배우지 않은 예과 1학년을 대상으로 실습을 지도해 주신 원장님들께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비록 아직 아는 것은 많지 않지만, 귀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기에 진지한 배움의 자세로 임했다. 앞으로 어떤 한의사가 될지는 모르지만 친구들과 함께 환자복을 입고 서로의 척추를 쓸어본 그날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첫 실습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