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반 아니고 신입생인데요.

만학도 한의대생의 좌충우돌 학교생활

by 배키

학생으로 돌아간 덕에 누릴 수 있는 것들은 일일이 나열하는 게 의미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금요일 공강, 나른한 오후, 그리고 공짜 필라테스. 학교에서 1학기 기숙사생들을 대상으로 필라테스, 플래그 풋볼, 아로마 메이킹, 도자기 조형, 피부 관리 등 다양한 RC 프로그램들을 제공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필라테스 수업을 신청했다.


공짜 필라테스라니. 무조건 신청해야만 했다. 게다가 기숙사 상점을 2점이나 주고 나중에 장학금으로 바꿀 수 있는 스마트포인트도 50점이나 준다. 나는 시간도 많으니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씩 3주에 걸쳐 진행된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수업이었다. 6시 수업에 맞춰 조금 일찍 저녁을 먹고 기숙사 룸메이트랑 부지런히 체육관 GX 룸으로 향했다.


사실 살면서 한 번도 필라테스를 한 적이 없어서 고요하고 우아한 운동일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냐면 스포츠 브라도 안 하고 갔다. 그러나 내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기본 동작에도 숨이 턱턱 막히고 다리는 벌벌 떨리고 허벅지는 아려왔다.


분명 막 그렇게 아크로바틱 한 동작이 아닌데 어렵다. 예를 들어, 매트에 누워서 다리를 'ㄱ' 자로 만들고 무릎을 붙인 채로 서서히 발끝을 들어 올리는 동작을 상상해 보라. 상상해 보면 별것도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직접 해보면 다리가 덜덜 떨리고 허벅지가 엄청 아프다.


그동안 나름 운동을 한다고 했는데, 체력도 유연성도 떨어지는 것 같아서 반성을 했다. 지난번 실습 갔을 때도 그렇고, 필라테스를 하면서도 그렇고. 체력의 필요성을 많이 느낀다. 느끼기만 하면 뭐해. 운동을 해야지. 진짜 꼭. 꼭 운동해야지.


만학도이다 보니 재미있는 상황도 있었다. 지난주, 필라테스 선생님 중 한 분이 내 자세를 고쳐주시고는 얼굴을 슥 보시고 이렇게 물으셨다.


"간호학과에요?"


간호학과에도 만학도들이 많이 입학하고, 아무래도 내 액면가가 이십 대는 아니니까 궁금하셨나 보다. 그래서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한의예과에요."


그리고 그 다음 주인 오늘, 이번에는 선생님이 뭔가 확실하다는 눈빛으로 이렇게 물으셨다.


"4학년이죠?"


그래서 나는 또다시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답했다.


"아니요. 1학년이에요."


한 주에 한 가지씩 물으시는 게 뭔가 재미있었다. 뭔가 내 나이나 사정을 궁금해하시는 것 같았는데, 나를 배려해서 직접적으로 나이를 묻지 않으시는 게 감사하기도 했다. 1학년이라는 대답 뒤에 '회사 다니다가 다시 들어왔어요.'라고 덧붙일까 고민하다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배려가 감사해서라도 시원하게 궁금증을 해소해 드리고 싶었는데,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적당한 타이밍을 찾지 못했다.


사실 단순히 나이 질문을 받는 것은 아무렇지 않다. 25학번 신입생은 2006년생이고 나는 그보다도 열 살 이상 많다는 것을 알면서 선택한 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지금 내 선택과 학교생활에 꽤 만족하면서 즐겁게 지내고 있다. 무탈한 하루가 반복되고 있고,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도 만났다. 이보다 복받은 신입생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다음 수업시간에 기회가 된다면 당당하게 내 나이를 말씀 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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