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친구와 보낸 즐거운 시간
지난 주말, 친구를 보러 대전역에 다녀왔다. 친구는 세종시에 살고 있는 공무원, 나는 대구 옆 소도시에 살고 있는 대학생이다. 한쪽이 가기에는 부담이 크니 타협점인 대전에서 보는 게 적당했다.
대전 정부 청사를 제 발로 뛰쳐나온 후에 대전에 방문한 것은 세 번째였다. 그런데 아직도 대전역에 내리면 마음 한구석이 저릿하다. 안정과 정착을 꿈꿨던 곳, 그러나 실패를 인정하고 떠나야만 했던 곳, 살면서 가장 많이 울었던 곳.
나는 시간은 많고 돈이 없는 학생이기 때문에 무궁화호를 탔다. 두 시간 십 분. 목소리가 낭랑한 기관사님과 함께하는 꽤 즐거운 여정이었다. 그래도 중간 지점이 대전이면 양호한 편이다. 곧 친구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 우리의 중간지점은 태평양 어디쯤이 될 것이다. 그곳에는 쾌활한 기관사님도, 무궁화호도 없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청바지에 연두색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브이넥에 허리선이 드러나는 깔끔하고 어른스러운 분위기의 오피스룩. 요즘 관심 있는 스타일인데 '이걸 입고 어딜 가겠나'싶어서 매번 장바구니에서 지웠던 스타일이었다. 제 나이에 맞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며 살아가는 친구의 모습이 멋져 보였다.
"ㅇㅇ이 오랜만에 보니까 어른스러워졌다."
이런. 멋지다는 의도를 전달하고 싶었는데, 피차 삼십 대가 된 사람들끼리 해선 안 될 말을 해버렸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건네는 첫인사 치고는 완전 바보 같은 발언. 다행히 친구는 웃으면서 받아주었다.
"너는 완전 대학생 같아."
간단한 인사가 오갔지만 약간의 정적이 흘렀다. 물만 호로록 마셨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친구와 나의 삶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와의 인연은 꽤 깊다. 이십 대 초반, 열 평 남짓되는 고시반에서 함께 행정고시 기술직을 준비한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이후 비슷한 시기에 합격의 기쁨을 맛보고 우리는 함께 배낭을 메고 남미 대륙을 쏘다녔다. 대학 졸업식 때도, 연수원에서도 함께였다. 이후 부처 배치를 받고 나서 친구는 세종, 나는 대전에 살게 되었음에도 종종 만나 속마음을 털어놓곤 했다.
이제 둘 다 사무관이 되었으니 분명 비슷한 삶을 살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의원면직을 하고 나서 '우리'의 삶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예전에 당연하게 하던 회사 얘기를 친구는 나한테 마음껏 하기 힘들 테고, 나도 친구에게 학교생활을 부담 없이 털어놓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물만 호로록.
그래도 하나둘씩 근황을 전하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다 보니 어색함이 사라졌다. 우리는 '복'이라는 글자가 거꾸로 붙어있는 중국집에서 식사를 한 뒤 옛날 가옥을 리모델링한 카페에서 수플레 팬케이크를 먹었다. 세종시에는 이런 맛집이 없다면서 만족해하는 친구를 보며 꽤나 뿌듯했다. 팬케이크까지 먹고 나니 어느새 해가 저물었다. 우리는 부른 배를 통통 두드리며 하얀 들꽃이 핀 하천변을 따라 걸었다. 대전의 바람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네가 세종에 살았으면 안 그만뒀을 수도 있는데."
친구의 말에 "그런가?"하고 그냥 웃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하천에서 물고기를 낚아채는 왜가리를 보았다. 사냥을 하는 왜가리의 모습을 그렇게 가까이서 보는 게 처음이었다. 회색빛의 깃털, 뾰족한 부리, 긴 목. "너무 귀엽지 않아?"라고 물었더니 친구가 나를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그리고 한 번 더 이렇게 말했다.
"네가 우리 부처였으면 안 그만뒀을 수도 있는데."
이번에도 "그런가?"하고 웃었다. 친구는 내가 공직사회를 떠난 것이 아직도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우리의 삶은 이제 비슷할 수 없다. 묘한 거리감이 생긴 것 같아서 나도 어쩐지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서로 그런 감정을 느낄까 봐 걱정이 되었는지 우리는 "근데 나 지금 진짜 즐거워. 진심이야."라는 말을 앞다투어했다. 그 상황이 웃겨서 또 한참 웃었다.
친구와 한바탕 웃은 덕분에 저릿한 감정이 조금은 연해졌다. 앞으로도 대전에서 행복한 추억을 더 많이 쌓아야겠다. 그래서 씁쓸한 마음을 지워버려야겠다. 비록 대전역까지 가기 위해 늘 KTX가 아닌 무궁화호를 타야 하겠지만. 그리고 내가 입은 옷은 친구의 것보다 조금 조악하겠지만.
헤어질 때쯤, 친구는 미국에 가게 되면 꼭 놀러 오라고 말했다. 그 말에는 정확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 있게 "꼭 갈게!"라고 말하기엔 내 주머니 사정은 너무 가벼웠다. 그리고 앞으로 6년 동안 가벼울 예정이었다.
미국까지는 못 가도 오늘 우리가 대전에서 만난 것처럼 대한민국과 미국의 중간인 태평양 어딘가에서 만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친구는 비행기를 타고 오고, 나는 무궁화호를 타고 가는 것이다.
새파란 태평양 한가운데서 만난 우리는 또 한바탕 크게 웃겠지. 그러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워서 괜히 툴툴대본다.
왜 태평양까지 가는 무궁화호는 없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