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과생이 가장 두려워하는 그것, 재시험
네이버 뉴스칸이 흥미로워지고, 브런치 창을 평소보다 더 자주 켰다 껐다 하고, 쇼핑 앱을 더 자주 들락날락하고 있다. 그렇다. 기말고사 기간이 도래했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공부를 하기 싫은 마음은 여전하다. 아니, 더 커진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성적 장학금을 받고 싶었다. 나의 두 번째 대학은 소위 '내돈내산'. 나도 염치가 있는 사람인지라 이미 첫 번째 대학을 무탈히 졸업시켜 주시고 서른이 넘는 나이까지 거둬주신 부모님께 더 손을 벌리기 죄송했다. 당연한 것이지만, 생활비와 등록금을 지원받지 않고 나 스스로의 힘으로 졸업하기로 했다. 장학금 없이 대학을 다니면 졸업 후 빚만 6천만 원. 그래서 성적장학금이 필요했다.
슬프게도 우리 학교의 성적 장학금 기준은 꽤나 높다. 등록금의 전액 혹은 일부를 면제받을 수 있는 그 탐스러운 권리는 약 120명의 학생 중 5명에게만 돌아간다. 약 4%의 비율. 학생들의 공부 의욕을 한풀 꺾어버리는 극악무도한 숫자.
그래도 내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런 기회라도 있는 게 어디인가. 실제로 나의 전적대는 성적 장학금이라는 제도가 아예 없었다.
중간고사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만점은 없었지만 전공과목에서는 과목별로 1~2개만 틀린 수준이었고 교양은 그것보다는 많이 틀렸지만 기말고사를 잘 보면 충분히 만회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금. 성적 장학금 포기를 선언한다!
지난주까지 야구, 여행, 동기 모임 등의 활동을 하면서 너무 신나게 놀아버린 나머지 더 이상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내가 5명 안에 들 수 있을까?'
대충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두드려본다. 수업시간에 눈에 불을 켜고 교수님의 말씀을 받아 적는 학생 수를 헤아려보니 얼추 5명은 족히 넘는 것 같다. 그들을 뛰어넘기란 힘들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이번 시험으로 내 인생의 향방이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감사해하며 즐겁게 이번 학기를 마무리하련다.
한의대생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재시험과 유급이다. 졸업 후 기업체에 취업을 하는 경우가 적으니 학점이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유급과 재시험만 면하자는 마음으로 소위 '저공비행'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다행히 우리 학교는 예과생 때에는 유급을 주시는 교수님이 없다. 온갖 시험 제도를 거쳐오느라 지쳐있는 나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예과생들이 너무 놀기만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재시험을 치게 하는 교수님은 있다. 재시험을 본다고 해서 2학년으로 진급을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학기도 다 끝난 마당에 방학에 학교에 나와서 시험을 봐야 하니 꽤나 번거롭고 기분이 나쁘다. 남들이 다 떠나 텅 빈 캠퍼스에서 나 홀로 시험을 보는 상황은 누구나 피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니 모두 재시험이라는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않기 위해 열심이다.
재시험의 기준은 모른다. 전 학년에는 이렇게 했다더라, 기준이 어떻다더라, 출석을 반영한다더라 등등 소문만 나돌 뿐. 그러니 소위 '저공비행' 전략을 택한 친구들은 재시험을 선언한 과목을 가장 열심히 한다. 도서관이나 학교 근처 카페에 가면 1학년생들은 대부분 같은 과목의 PDF 화면을 켜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의대생들 사이에선 그런 농담이 있다.
'재시험 보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 삐빅. 재시험을 안 볼 확률이 높은 사람입니다.
'설마 재시험 보겠어?'라고 생각하는 사람 : 삐빅. 재시험 위험군입니다.
놀랍게도 중간고사 때 나의 마음은 전자, 지금 나의 마음은 후자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도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열심히 뭔가를 보고 있다. 꿋꿋하게 나만의 길을 가기에 나는 너무나 소시민인지라, 시험 전에 조금이라도 활자를 읽어봐야겠다.
흠.
그래도 설마 내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