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이 설원에 살았다. 거인은 매우 거대해서 그가 움직이면 지진이 일어났다. 세상은 그것이 판의 충돌로 인한 것인지 거인의 움직임으로 인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저 지진으로 죽거나 다치지 않기를 기도했다. 거인은 엄청나게 거대해서 그가 한곳에 멈춰서면 세상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세상은 그것의 원인이 개기일식인지 거인 때문인지 몰랐다. 사람들은 희생양을 제단에 바치며 어둠이 물러가기를 바랬다. 그는 이따금씩 주먹으로 설산을 내리쳤고 동토에 발을 굴렀다. 설인들은 신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서 더많은 희생양을 바쳤다. 피비린내와 고기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그런 날에 설원에는 날카로운 얼음조각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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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피가 발바닥에서 흘러 하얀 설원을 적셨다. 두꺼운 장화를 신고 걸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어떠한 가죽도 그 날카로움을 견딜 수 없었다. 고통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저 어금니를 깨물고 걸었다. 다행히 럭키는 얼음 조각의 날선 곳을 피해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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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닥이 축축했다. 고개를 들어서 주변을 살폈다. 얼음 조각이 녹아서 물웅덩이가 되었다. 물은 서쪽숲에서 흘러나왔다.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숲은 어둡고 적막했다. 길이 없어서 손으로 나무를 헤치고 들어갔다. 손과 얼굴은 나뭇잎에 베였고 가시가 온몸에 박혔다. 숲은 숨이 막힐 정도로 빽빽했고 고개를 들어도 하늘은 보이지 않았다. 럭키 뒤를 따라서 걸었지만 앞으로 가는 것인지 제자리를 도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한참을 숲에서 헤맸다. 어둡고 적막한 숲이 증오와 복수를 속삭였다. 그것들은 온몸에 생채기와 가시를 남기며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정신없이 걸어서 멈춰선 거인의 몸으로 파고 들어가 도륙했다. 다시 돌아가 숲에 불을 질렀다. 거대한 불꽃이 비명을 지르며 타올랐다. 두꺼운 회색 먼지가 하늘을 뒤덮었고 설원은 아무 것도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