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었다. 한 줌의 기억과 무질서한 감각만 가득하다. 어둡고 적막한 무의미의 일부가 되었다. 반복되는 기억에서 헤어날 수 없다. 여느 때처럼 출근길에 나섰다. 맑은 새벽 공기를 마시면서 희망을 가슴에 품었다. 오랫동안 함께 울고 웃었던 동료들과 열심히 즐겁게 일했다. 하지만 순간의 부주의로 모든 것이 사라졌다. 조금 귀찮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았다. 여태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았다. 그때가 아닌 다른 시간에 작업을 했다면, 그곳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작업을 했다면, 다른 부서에서 일했다면, 다른 회사에서 일했다면,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다른 시대에 살았다면, 이렇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가족에게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동료들과 즐겁게 일하고 싶다. 새벽 공기를 마시고 싶다. 이제는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 나는 죽었다.
Lucas Pezeta @ Pexels나는 바닷가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곳에서 남자들은 배를 타거나 배를 만들었다. 어머니가 절대 배를 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어릴 때부터 배를 만들면서 생계를 책임졌다. 배들이 출항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바다 넘어 세상이 궁금했다. 퇴근후 지친 몸을 이끌고 근처 단골집에 갔다. 가게는 허름했다. 주방이 있는 일층에는 테이블 두 개가 있고 신발을 벗고 올라가야 하는 이층에는 테이블 네 개가 있었다. 일층은 만석이었고 이층에도 사람이 많았다. 겨우 이층 구석 자리에 앉았다. 낮고 작은 공간은 작업복 차림의 아저씨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수다로 가득했다. 노조에서 파업을 하지 않는 대신에 노사타결금을 받았는데 이런 날에는 조선소 근처 식당은 시끌벅적했다. 그와중에 쓸쓸한 목소리가 들렸다.
"작년에는 폭발로 죽었고 올해는 압착으로 죽었다. 언제 끝날까." 라고 옆자리에서 말했다. 때가 탄 작업복의 명찰을 보아하니 외주인 것 같았다.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직영만 사람 취급하니까." 라고 땀에 절은 사람이 술잔에 소주를 따르며 대답했다.
Torsten Dettlaff @ Pexels메뉴는 없었다. 그날 사장님이 잡은 고기로 회, 구이, 찜, 찌개를 되는대로 차렸다. 맛은 있었다. 일상적인 맛은 아니었다. 소주를 마시면서 이게 무슨 맛인지 계속 생각했다. 술에 취해서 멍하게 왁자지껄한 수다를 들으면서 알게 되었다. 짠한 맛. 아버지가 생각났다. 옆자리 아저씨들이 시끄럽게 술 마셔서 미안하다고 대신 계산했다고 사장님이 말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배를 만들었다. 매일 저녁에 혼자서 배를 만들었다. 피곤해도 아파도 술에 취해도 만들었다. 집을 지나야 들어갈 수 있는 작은 해변이 있었다. 동네 사람들도 잘 모르는 장소였다. 그곳에서 중고 컨테이너를 두고 장비와 부품을 보관했다. 블록을 만들어서 용접했다. 엔진을 탑재한 후에 갑판을 덮었다. 배관설비와 전기설비를 설치했다. 항해장비와 통신장비를 설치했다. 며칠후 일터에서 고향 친구가 낙사했다. 발판에 손잡이가 없었는데 손을 헛짚은 것 같았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께 말했다. '아버지 이제 저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인기척 없는 새벽에 소주를 뿌리며 진수식을 거행했다. 다음날 작은 배를 타고 출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