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

되는대로

by 웃자

서쪽으로 항로를 정하고 서풍을 맞으며 항해했다. 서쪽 끝으로 가고 싶었다. 처음으로 배를 탔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느 여름날이었다. 태풍이 지나가서 날씨는 화창했고 바다는 잔잔했다. 바닷가에서 김밥을 먹고 오렌지 주스를 마셨다. 아버지를 따라서 작은 배에 올랐다. 시커먼 매연, 정제되지 않은 소음과 진동, 진동하는 짠내, 등이 감각을 자극했다. 설레임이 부풀었다. 데크에서 새우깡을 던지면 갈매기들이 공중에서 낚아챘다. 배는 미끄러지듯이 바다를 갈랐다. 바다는 변덕스러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파도가 일었고 배는 요동쳤다. 천장과 바닥이 뒤바뀌고 신음이 새어나왔다. 귀밑에 붙이는 멀미약은 소용이 없었다. 사람들은 화장실 앞에 줄서서 구토할 차례를 기다렸다. 내장을 쏟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토냄새와 땀냄새가 진동했다. 하선 후에도 여전히 멀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육지에서 파도가 치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그후로는 두 번 다시 배를 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버지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Kseniya Kopna @ Pexels

'그래도 그때 함께 수영했던 서쪽 물결은 부드러웠고 꽃도 바다도 아름다웠죠?'

Viktoria Alipatova @ Pexels

배는 50톤, 길이 20미터, 폭 5미터, 프로펠러 추진 방식으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연근해 낚시배 정도를 구상했다. 건조 과정에서 조금씩 수정했다. 아주 멀리 떠날 것 같았다. 오랜 여행이 힘들지 않도록 쾌적하고 안전하게 만들고 싶었다. 일터에서 출도했던 도면들을 공부해서 직접 설계했다. 원하는 중고 장비를 구할 때까지 작업이 지연되었다. 시운전 중에 번번이 침수되고 고장났다. 실패는 익숙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조타실은 오랜 시간 항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자동조타장치와 전자해도를 설치했다. 선장실은 답답하지 않도록 넓은 공간을 확보했고 화장실과 샤워실을 구비했다. 하층 갑판에는 주기관, 조수기, 하수처리기를 설치했다. 창고에는 돌미역, 엄나무순, 소고기, 잣, 메론, 옥수수 통조림, 라면, 콘칩, 삼다수, 커피, 콜라, 등 다양한 부식을 실었다. 터줏대감 럭키를 데리고 갔다. 갑판에서 자유롭게 먹고 자고 놀았다. 덩치가 크고 목청이 우렁찼다. 망망대해에서 든든했다.

매거진의 이전글출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