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거북이

되는대로

by 웃자

토끼가 새하얀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집중하는 모습이 비장했다. 비뚤배뚤 엇나갔던 선들이 모여서 거북이로 변했다. 입을 앙 다물고 주황색 크레파스로 정성스럽게 칠했다. 거북이는 초록색이 아닐까 고민하는데 바람이 불었다. 순간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종이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토끼는 종이를 뒤쫓았다. 종이는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날았다. 마치 비닐봉지처럼 목적지 없이 유유히 날았고 내려올 생각 없이 부유했다. 비닐봉지였다면 전봇대가 낚아챘을까. 결국 종이는 바다 한가운데에 떨어졌다. 토끼는 밀려오는 파도를 깡총깡총 피하며 바닷가에서 목놓아 울었다. 눈물은 바다로 흘러갔다. 종이가 떨어진 바다에서 거품이 일었다. 거북이가 종이에서 나와서 바다 위를 둥둥 떠다녔다. 어리둥절한지 움직임이 어색했다. 토끼가 소리쳤다.

"바다를 건너면 안부를 전해줘."

"누구한테?"

"럭키와 함께 있으니까 만나면 바로 알거야."

"그래."

Jeremy Bishop 님의 사진, 출처: Pexels

거북이는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점점 커져서 웬만한 배보다 더 거대하게 자랐다. 숨을 쉬러 수면으로 올라오면 새들이 섬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거북이는 누구보다 오래 살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알았다. 흰긴수염고래는 오랜 친구였다. 언젠가부터 거북이는 뒷모습만 보여주었다.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어느날 고래가 이유를 물었다. 지키지 못한 약속이 있다고 대답했다. 고래는 얼음땅에서 들었던 소식을 전했다. 고래가 알려준대로 바다를 건너서 럭키를 만났다. 오랜 안부를 전했다. 럭키를 쓰다듬으며 추억을 떠올렸다.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모닥불이 탁탁 소리를 내면서 꺼졌고 선장은 말을 잃었다. 하나의 임무를 끝낸 거북이가 새하얀 털가죽 안에서 움직이지 않는 선장을 등에 업고 바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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