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곰

되는대로

by 웃자

눈이 내렸다. 갑판은 백설탕을 뿌린 쑥털털이 같았다. 럭키의 발자국이 토핑처럼 찍혀 있었다. 숨쉴 때마다 얼음이 얼었다. 고드름이 수염에 달렸다. 옷이 서걱거렸다. 바다는 파도가 치는 모양 그대로 얼었다. 끝었는 얼음땅이 펼쳐졌다. 항해는 불가능했다. 눈사람을 만들었다. 모자를 씌우고 망원경을 걸었다. 모자챙에 쌓였던 눈이 떨어졌다. 눈사람이 고개를 들고 망원경의 초점을 조절했다. 저멀리 손짓했다. 썰매를 내렸다. 럭키 가슴에 하네스를 고정했다. 럭키가 질주했다. 눈이 얼굴을 때렸다. 냉기가 온몸을 관통했다. 똑같은 풍경이 계속되었다. 럭키가 멈췄다. 모닥불을 피웠다. 한참동안 둘이서 불을 바라보았다. 나뭇가지를 이어서 불 위에 코펠을 걸었다. 눈을 끓여서 목을 축였다. 정적이 흘렀다. 갑자기 럭키가 털을 곤두세우고 짖기 시작했다. 거대한 북극곰이 다가왔다. 총을 꺼내서 심장을 겨누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Dick Hoskins @ Pexels

"탕탕!"

화약냄새가 진동했다. 곰이 쓰러졌다. 럭키가 달려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Syed Qaarif Andrabi @ Pexels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환청일까. 귀를 쑤시며 일어섰다. 앞으로 쓰러진 곰을 뒤집었다. 얼음 위에는 피웅덩이가 고였다. 붉은 살얼음 표면에 실핏줄 같은 무늬가 생겼다. 심장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피는 길을 잃고 온기를 잃었다. 핏빛 비처럼 쏟아졌다.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귀를 기울였다. 곰이 내는 소리였다. 곰을 끌고 모닥불 근처로 가서 가죽을 벗겼다. 곰 안에 사람이 있었다. 그는 모닥불 앞에 앉아서 사연을 털어놓았다. 탐험대의 선장으로 모험을 떠났다. 기상이 악화되어서 대원들은 철수를 원했다. 그는 혼자서 지도를 챙겨서 썰매를 타고 목적지로 향했다. 보름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떠나라는 지시만 남겼다. 결국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했고 식량이 떨어졌다. 그때 북극곰이 다가왔다. 총을 쐈다. 마지막 총알도 남겨두지 않았다. 배를 가르고 안으로 들어가서 내장을 파먹었다. 가죽을 뒤집어 쓰고 배로 돌아갔다. 동료들은 그를 남겨두고 떠난지 오래였다. 그렇게 그는 홀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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