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

되는대로

by 웃자

해적이 나타났다. 해골이 그려진 검정색 깃발을 보고 알았다. 누더기 천조각이 바람에 흔들렸다. 해적선은 볼품 없는 오래된 어선이었다. 해적은 몰골이 추했다. 얼굴은 찌들었고 옷은 누렇게 변색되었다. 선수에서 선장은 뒷짐을 지고 서있었다. 위압적으로 보이고 싶었는지 꼿꼿하게 서서 정면을 응시했다. 오히려 역효과만 있었다. 과장된 몸짓으로 연극을 하는 것 같았다. 선원은 없었다. 어렵지 않게 따돌릴 수 있었지만 궁금했다. 망망대해에서 그는 고물 해적선을 타고 무엇을 하는 것일까. 일부러 속도를 늦추었다. 해적선은 다가오는데 한참 걸렸다. 가까이에서 선장이 뭐라고 중얼거렸는데 알아들을 수 없었다. 찌린내와 땀냄새가 진동했다. 그는 야곱의 사다리를 타고 기어올라왔다. 바닥에 엎드려서 가쁜 숨을 내쉬며 말했다.

Laura C @ Pexels

"가진 것을 모두 내놓으시오."

"가진 것이 없소."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구나."

Mark Neal @ Pexels

그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며 꺼내려는 시늉을 했다. 가만히 바라보았다. 정적이 흘렀다. 주머니에서 빈손을 꺼냈다. 그는 손가락으로 권총을 만들었다. 벌벌 떨면서 장전하고 조준했다. 쇳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한쪽 눈을 찡그리며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의도대로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발을 굴렀다. 손가락 권총을 거두어 자신의 관자놀이에 겨누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입으로 격발음을 소리냈다. 총격이 되지 않자 서너번 시도했다. 절망한 표정으로 선측에 다가서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뒤돌아서 죄송하다고 중얼거리며 바다로 뛰어들었다. 순간 거품이 일었고 바다는 다시 잠잠해졌다. 옆에서 럭키가 뛰어들어서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에 럭키는 그를 수면으로 밀어올려서 해적선으로 데리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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