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것의 힘
"할많하않"
하고픈 말을 아낀단 은어인데 심심치 않게 본다.
이처럼 말하고 싶어 미치겠는 상황에서
그 충동을 꾸욱 눌러담아보려는 시도는 값지다.
온라인 메신저는 즉시성의 힘을 가졌다.
상대에 대한 내 의도를 빠르게 전달할 수 있고
그에 대한 상대의 피드백도 신속히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이 그것을 기대한다.
1이 사라지지 않으면 답답해 하는 심리는,
바로 그러한 기대를 설명한다.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 멈출 수 없는 세상에 산다.
이러한 세태 속에 돋보이기 위해 빨라야 한다.
빠름이 미덕인 스타트업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의견이 범람한다.
소통이 꽉 채운 세상에 과묵함은,
특별한 색을 갖는다
주관적 기준에서 과묵의 힘은,
즉시 발언하기 보다 경청하고
의견을 관철하기 보다 관찰하고
단견에 그치기 보다 곱씹어 숙고하는 것이다.
이따금 난 주변에서 오랜 시간 숙성한 생각을,
농밀하게 전달하는 이들을 볼 기회가 있다.
난 그들을 존경한다.
말하고픈 욕망을 견딘 것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엄격하게 자신 소견을 검열하는 건 참 멋진 행위다.
한 회사에서 뭇사람을 이끄는 장(將)이자,
의사결정자로 역할하며
적잖은 동료를 마주하고 사연을 듣는다.
어찌할 수 없이 다채로운 기질의 사람과 마주한다.
관리인으로서 경험이 전무했던 초창기에는
내 생각을 상대에 전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고
다양한 채널에서 많은 언어를 전달했다.
이러한 방식은 조직을 특정한 한 방향으로
속력을 낼 수 있게끔 하는 데 유용했다.
지시받는 동료 입장에서도 큰 고민 없이
일을 수행한다는 측면에 만족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방식에 익숙해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상대의 도전이 귀찮아졌다.
때론 성장 속력을 지연시키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물론 대응하지 않고 묵살로 일관한 적은 없지만
상대는 나와 위치 차로 혹은,
전해졌을 내 부담스러운 열정 때문에
한두 번의 주고받음 이후
이윽고 '할많하않'을 시전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조직의 역동성은 줄어든다.
다른 의견은 없어지고 공기에 '침묵'만이 흐른다.
분명 앞서 말한 과묵의 힘에서 나오는
질 높은 의견을 가진 이가 있을 수 있음에도.
올해 초 새 조직을 맡으며
협업 경험과 감정 교류가 비교적 적은
여러 동료와 차례대로 면담을 진행했다.
몇몇은 내가 예상한 반응을 그대로 보이며
순탄히 의견 합치에 이르렀지만
몇몇은 너무나 당연하게 내뱉은 말에
당혹감을 드러내는 모습도 보였다.
나 스스로가 큰 착각에 빠져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 착각 중 하나가, 그간 내 지도 방식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란 생각이었다.
나중에야 그 착각을 더 정확히 정의했는데,
이는 그 방식이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기 보다는,
문제를 만들어 낼 줄 몰랐던 것이었다.
이는 진부하게 느껴질 법한
사내 MBTI 검사를 통해 깨달은 것이다.
검사 전 사전교육에 따르면 누구나 기질에 따라
마치 왼손, 오른손잡이가 있듯
옳고 그름과 무관하게
자신이 더 편하게 사용하는 행동양식이 있는데
그것에 대한 고민이나 이해 없이 상대와 교류하면
서로에 불편함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이다.
검사결과상 외향성(E)을 지닌 나는,
내향성(I)을 지닌 이와 마주할 때
더 신경써야 할 것이 있었다.
바로 그것은,
상대가 더 많은 정보를 스스로 이야기하도록
시간을 주고 유도하며 더 듣는 것이다.
그 행동의 진정성을 상대에 전달하면
비로소 그때서야 사실을 알 수 있다.
상대가 생각이 없는 사람인 것인지?
아니면, 단지 과묵한 사람인 것인지?
회의 때 아이디어가 없는 것인지?
더 깊게 고민 중인 것인지?
그러한 문제가 슬프게도
개인의 실력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지만
단지, 보지 않으려 피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나씩 아로새기며 듣다 보면,
단서가 차곡 차곡 모여 조금 더
질 높은 의사결정에 이르게 한다.
참 실천이 어렵고 시간이 소요되는 행동이지만
이는 공학적 사고만으로는 풀 수 없는
조직 경영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되어준다.
경영이 퍼즐처럼 끼워 맞추기만 하면
잘 작동하는 것이라면
한 조직에서 창의적 시도를 지속하며
혁신하는 것은 꽤나 쉬운 숙제일 것이다.
미래를 내다 본 경영자가 짠 공식대로
인적 자원을 수식처럼 배치하면 될 테니까.
특히 비즈니스가 단순한 형태이고
초기 단계라면 이 방식은 보통 장점을 가진다.
하지만 조직이 비대해지고 복잡성을 띨수록
이상하리만치 1+1=2가 되지 않는 상황을 마주한다.
분명 목표를 이루기 위한 충분한 자원을 가졌는데
이루는 데까지 시련을 겪는 현상 같은 것 말이다.
이는 개인의 이기심, 동기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맘에 맞는 열쇠는 제각각 다르다.
이는 수학 수식처럼 일률적으로 풀 수 없다.
이쯤 단계에서 조직에는,
한두 명의 천재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좋은 리더십을 가진 관리인이 필요하고 중해진다.
'지덕용(智德勇)' 어느 것도 60점 이하 과락을 면한.
과묵과 침묵을 가려내고
열정과 섣부름을 가려내는 것.
분명 쉽지 않지만 이는
상대 생각을 극진히 듣는 것에서 시작될 것이다.
수평적 문화에 대한 흔한 오해처럼,
모든 이의 의견을 전부 다 수용하고
떠받들자는 이야기로 해석되면 안 될 것이다.
단지 좋은 리더십은,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의견의 적절성을 여실히 판단할 수 있는 때가 오면
과감한 용단을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수평 문화는 수단이 될 뿐이다.
면담 업무를 형식적이고 행정적 절차로
생각하는 이가 참 많을 것이다.
나 또한 사수와 면담하며 그리 느낀 적이 많고
직접 면담을 진행하며 스스로와 상대에게
그런 기분을 들게 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관리자에게 이 업무는
권장 사항이 아닌 의무가 되어야만 한다.
글로만 접하다 얼마 전
구글 매니저로 일한 당사자분께 들은 이야기다.
하루 업무 중 20%는인적자원관리(HR)에
의무적으로 썼다고 했고, 이는 사규라 했다.
보통 관리자는 일하고 남는 시간,
그제서야 동료와 사담을 시작하거나
업무를 논하는 경우를 많이 목격한다.
정말 시간이 없어서기도 하다.
하지만, 자투리 시간에 면담과 같은
인적자원관리 업무를 할당한다면
조직원과 명확한 어젠다를 갖고 만날 수 없다.
이 둘에게 시간은 똑같이 값진 것이다.
이 둘에게 주어진 역할이 다를 뿐이다.